나그네 나그네 눈송이 내리지 않는 벌판을 나그네는 홀로 걷지만 외롭지 않아 비바람이 때로는 휘몰아쳐도 주저앉지 않고 힘 있게 걸어가리. 들새 소리 귀에 들리지 않아도 나그네는 아무렇지도 않아 스스로 흥얼거리며 걷다보면 발걸음은 한층 더 가벼우니까 하늘과 맞닿는 어디에선가 힘 있게.. 나의 창작시 2018.12.14
새 새 섣달 동지(冬至)무렵은 칠흑(漆黑)빛 어둠이 장막을 치고 견디기 힘든 극한(極寒)이 머릿결에 상고대를 세운다. 만유(萬有)가 깊이 잠든 가로등 가물거리는 포장도로에 불쌍한 정강이의 새 한 마리 느린 걸음을 걷는다. 굶주린 배를 견디다 못해 미명(微明)에 위험한 거리에 서러움을 .. 나의 창작시 2018.12.13
겨울 이맘 때 겨울 이맘 때 전깃불 없는 시골의 겨울밤은 태초의 흑암과 깊음의 시간에 머물고 가물거리는 호롱불 아래 부친(父親)은 얘기책을 읽으며 밤을 쫓고 찬바람이 창호지 문을 두들겨도 허접스런 옷을 걸친 어머니는 식구들의 구멍 난 양말짝에 밤새 낡은 천 조각을 갖다 붙였다. 칠흑으로 덮.. 나의 창작시 2018.12.12
12월 논거(論據) 12월 논거(論據) 비장(悲壯)한 다짐으로 송구영신(送舊迎新)을 출발한 후 열두 달의 고지(高地)가 힘겨웠으나 뒤돌아보니 가슴이 뿌듯하다. 무사무려(無思無慮)하기란 궁수(弓手)가 과녁을 맞추듯 힘들지만 이런저런 일들을 비켜가며 결승선(決勝線)에 서니 안심이다. 인생이란 심히 까다.. 나의 창작시 2018.12.10
첫 추위 첫 추위 살을 베는 듯 한 바람이 그 해 한강교를 건너던 사내의 양 볼을 쉼 없이 후려치던 새벽바람은 내 생애에 가장 혹독한 시련이었다. 소총을 들고 전선을 누비는 어느 병사의 비장함처럼 생존(生存)을 위한 현실의 벽을 넘는 일은 악몽(惡夢)이었다. 악착같이 헤쳐 나가야 할 숲은 길 .. 나의 창작시 2018.12.07
행복(幸福) 행복(幸福) 홀쭉한 배가 채워질 때와 가볍던 지갑이 묵직할 때도 행복하지만 나에게는 사랑하는 네가 있기에 기쁨을 느끼어 흐뭇하니라. 어깨를 짓누르는 천근 등짐이 중량으로 신경(神經)을 자극할지라도 너의 다정한 눈빛만 바라보면 두 날개를 단 듯 감정은 날아오느니라. 우리가 함.. 나의 창작시 2018.12.05
그리움 그리움 하늘은 가깝게 내려 안고 바람은 전선(電線)에서 울고 있다. 낙엽마저 사라진 계절에 내 가슴에는 눈물이 고인다. 나의 언 가슴을 녹여주고 한숨을 눈빛으로 연민(憐愍)하며 푸념을 핀잔 없이 받아주던 열두 폭 치마를 두른 당신이여 낡은 사진첩마저 사라져 기억마저 가물거리는 .. 나의 창작시 2018.11.30
저녁노을 저녁노을 툇마루에 앉아 불쑥 솟은 앞산으로 지던 까무러치리만큼 황홀한 노을을 아직도 잊지못해하는 까닭은 너를 척애(隻愛)했던 애련(哀戀)의 가슴 깊은 상처(傷處)가 아직까지 아물지 않은 탓이리. 채색되지 않은 백지(白紙)에 처음 그려진 너의 초상이 도나우 강줄기만큼이나 긴 세.. 나의 창작시 2018.11.26
첫 눈 오는 날 첫 눈 오는 날 잿빛 구름은 산을 넘어오고 아침은 저 멀리서 서성이더니 뜻밖에 금년(今年) 첫 눈은 쌓인 감정(感情)을 밀어낸다. 세상의 지저분한 논제(論題)들이 감정억제의 한계에 이르러 건드리면 폭발할까 두렵더니 흰 눈이 앙심(怏心)을 잠재운다. 형언(形言)불가의 눈발이 추동의 .. 나의 창작시 2018.11.24
겨울 입구에서 겨울 입구에서 가을의 끝자락이 몇 잎 남은 단풍잎에 걸려있다. 벚꽃 소복하게 피던 가지에 앉아 놀던 멧새들 어디론가 떠나 없고 한 여름 짙푸르던 숲에서 자지러지던 풀벌레 소리도 사라져 적막이다. 얼기설기 엮인 나뭇가지들 사이로 싸늘한 바람이 술술 빠져나가고 자리 잡지 못한 .. 나의 창작시 2018.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