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 44

불면증

불면증 옻칠한 듯한 밤은 산릉선마저 지우고별들은 말없이 숫자를 세고 있다.나는 눈에 수면 안대를 쓰고도 깨어 있고생각은 끝없는 미로를 걷는다. 베개의 오른쪽엔 어제가 눕고다른 한쪽 끝엔 내일과 모래가 웅크린다.밤새워 뒤척이며 만리장성을 쌓고 충혈된 눈동자로 흐릿한 새벽을 바라본다. 깊은 침묵 속에 흐르는 세월의 굴곡밤의 고요함보다 더 큰 외로움늙은 몸은 길게 눕고기억조차 사라지는 듯한 어둠만 나를 덮는다. 내가 잠들지 못한 이유는시간이 나를 따라와서가 아니다.시계의 초침이 날카로워서도 아니다.늙는 병이 밤의 평온을 훔쳐 꿈조차 가로채서다. 마침내 기다리던 새벽이 문을 두드리면나는 잠이 든 척 고개를 돌린다.창문을 뚫고 들어 온 빛이 어둠을 삼킬 때 또다시 흔들리는 하루가 시작된다.2025,1,31

나의 창작시 2025.01.31

지금(只今)

지금(只今) 바람이 내 앞을 지나간다.지금 나는 어디쯤 서 있는가?멈춘 듯 보이는 이 자리에서도내 안의 나침판은 떨고 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다.길은 익숙하고 발자국은 겹쳐지지만돋보기 없이도 깊이 들여다보면달라진 숨결이 나를 깨운다. 저물어 가는 빛을 바라본다.어둠이 내리면 사라질 것들을 떠올리며남아 있는 빛마저 애달파하지만시간은 야속하게 흘러갈 뿐이다. 귓불에 와 닿는 차가운 온도어디선가 들려오는 이름모를 새소리손에 쥐려했던건 모래처럼 흘러내렸고남은 건 가슴에 작은 불빛 하나 나는 나에게 다시 묻는다.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이 한 조각의 시간이 내 전부라면두렵고 흔들린다 해도 가던 길을 가야 한다.2025,1,30

나의 창작시 2025.01.30

설날 아침의 기도

설날 아침의 기도 주님! 설날 첫 아침이 밝았습니다.낯선 시간의 문턱에 서서기대와 두려움이 교차하는 이 마음을고요히 내려놓습니다.  지난해 저는 참 많이도 흔들렸습니다.서투른 사랑 부족한 믿음지키지 못한 약속들 앞에서고개 숙이며 용서를 구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소망합니다.넘어졌어도 다시 일어날 용기와내 아웃을 따뜻하게 감쌀 마음을저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새해에는 더 많이 웃고 싶습니다.작은 것에도 감사하고남의 아픔을 절대 외면하지 않고보듬어 주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새해 이 아침 밝은 햇살 속에제 기도를 조용히 띄웁니다.주님 저와 함께 매일 동행하소서흔들리는 순간마다 저를 붙들어 주소서.21025,1,29

신앙시 2025.01.29

섣달 그믐 날

섣달 그믐 날 한 해를 마무리 짓는 그믐날눈 쌓인 설경 고요한 거리한해의 얼룩진 잘못을 지우고 발자국마다 남은 추억까지 덮는다.끝이란 항상 시작과 손을 잡고삶은 끝없는 쳇바퀴 속에 흐른다.지난해의 기쁨과 아픔의 모든 순간이그믐날 하나로 녹아 의미를 이룬다.매 순간 쌓아 올린 벽돌 같은 시간무너짐도 때론 축복임을 알게 된다.빈자리로 남은 것조차 소중하고그리움은 마음에 새로운 길을 낸다.인생은 앞서간 발자국을 더듬는 마음아직 남은 길은 어떤 빛일까.실패는 배움이 되고 아픔은 깊어져내일의 내가 또 자랄 터이다.섣달 그믐날 시간은 쉼 없이 흘러도우리 마음엔 쉼표를 찍을 뿐이다.끝에서 비로소 보이는 진실처럼오늘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아야 한다.2025,1,28

나의 창작시 2025.01.28

겨울 비

겨울비 겨울비 차갑게 내리는 날이면눈 섞인 빗방울이 내 마음을 두드리고,그 소리에 나는 먼 옛날을 떠올린다.찬비 내리는 던 고요한 그 거리에하얗게 눈물 흘리며 걷던내 작은 발걸음이 생각난다.그해 그곳의 겨울은별처럼 신비한 곳에 있는 듯했고,하나의 하늘 아래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우리만의 고운 시간을 쌓아갔다.겨울비 우산 속에서설렘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던그리움이 오늘도 내 가슴을 적신다.얼음처럼 굳어버린 순간들이 비처럼 내려와아직도 내게 닿지 못한 채로빗물처럼 사라지는 그 사람의 모습겨울비는 그리움 속에 스며들고추억은 더욱 선명해진다.하얀 눈처럼 고요한 그대의 미소그 맑은 웃음소리까지여전히 내 귓가에 맴돌고겨울비 속에 나의 마음은조용히 그리움으로 가득 찬다.2025,1,27

나의 창작시 2025.01.27

초여름 비

초여름 비 이틀 째 비가 내린다.초여름 비가 내리는 날이면나는 학동(學童)의 마을을 서성인다.짝꿍이던 고운 피부의 소녀가파란 우산을 들고 내 곁에 다가와아무 말 없이 받쳐주던 추억이 그립다.너무나 먼 세월의 강을 건넜다.그 강물은 몇 번을 윤회하여 바다로 갔고지금도 강물은 계속 차오른다.떠밀리어 온 삶은 참 멀리도 왔고지나온 시간들이 모두 귀하다.기대한 만큼 갖지 못했어도아무도 탓하지 않는다.가슴에 묻어둔 그리움들을 불러오며초여름 비는 여전히 내린다.아직 들춰내지 못한 모든 기억들을오늘은 몽땅 파헤치려나보다.그 소녀도 지금 나처럼 익었겠지생각보다 매우 그립다.2019.6.10

나의 창작시 2025.01.26

설에 대한 기억

설에 대한 기억 가파른 언덕 너머로흙먼지 바람 사정없이 지나가면초가집 굴뚝 위로 연기가 피어오르고가난은 무겁게 내려앉았으나설은 언제나 새 나이를 데려왔다. 어머니는 손끝으로 만두를 빚고작은 손들엔 갈라진 겨울이 스며들었다.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떡찌는 향우리는 배고픔을 꿈으로 달래며해어진 옷을 입고 설날을 기다렸다. 속내의 한 벌 없는 추운 설날이지만우리의 눈동자는 맑게 빛났고새 신발 대신 맨발로 밟은 눈길발가락이 얼어붙는 차가움 속에서조차우리는 웃음으로 발자국을 남겼다. 섣달 그믐 등잔불이 가물거리는 방에는날밤을 새며 설날을 기다리던낡은 집 흙벽에 비친 또렷한 그림자 하나깊은 가난 속에서도 잃지 않았던우리가 가진 가장 따스한 유산이었다. 이제는 모두 떠나버린 그 시간그 가난했던 설날의 풍경은낡은 꿈처럼 희..

나의 창작시 2025.01.26

재판관(裁判官)

재판관(裁判官) 법정의 방에는 날카로운 침묵이 흐르고재판관은 의자의 그림자로 앉는다.정의의 무게를 저울이 달지만내면의 어두움은 누구의 저울로 달까?증거와 증언이 불꽃처럼 튀나인간의 진실은 바닷속처럼 가려져 있다.켜켜이 쌓인 서류뭉치와비장한 각오의 증인 선서와 맹세하지만 인간 내면은 깊이 감춰진 숲선과 악의 갈림길엔 잡초만 우거져눈앞의 판결은 구름 속 달처럼 희미하다.죄란 무엇이며 선이란 무엇인가.날카로운 법전의 칼이 도려내려 하지만숨겨진 죄는 손에 닿지 않는 별처럼잡으려 하면 더 멀어지고바라보려 하면 더욱 숨을 뿐이다.재판관도 인간이 아닌가.그 판단은 의심과 편견의 그림자 안에서 춤추고그 손에 들린 망치는 무겁고도 허망하여진실을 두드리기엔 쇳소리만 공허하다.누가 보았는가 심연 속의 고백을누가 들었는가 눈..

나의 창작시 2025.01.25

사냥꾼

사냥꾼 강철 눈빛 무거운 발걸음 속에몰려드는 사냥꾼, 그 이름은 Adjudicator쫓기는 자는 이제 더는 권력의 상징이 아닌한 마리 사슴처럼 떨며 숲길을 헤맨다. 회색 궁전 그곳에 남은 그림자 하나권좌의 영광은 물거품 되어 사라지고날카로운 질문과 칼 같은 서류들만이사냥꾼의 손에서 춤을 춘다. 사슴의 눈망울에 담긴 두려움은한때 천하를 품었던 야망의 잔해들숲은 깊은 적막에 잠기고화살은 이미 시위를 떠나 심장을 겨눈다. 누가 악인이고 누가 피해자인가?사냥꾼도 사슴도 연약한 인간일 뿐정의라는 이름의 숲 속에서역사의 심판이 무겁게 내려앉는다.2025,1,24

나의 창작시 2025.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