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빈(家貧) 가빈(家貧) 연골(軟骨)의 소년(少年)은 여린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보드란 손에 낫을 들고 거친 억세 풀을 베어야 했다. 오른 손에 책(冊)을 들고 왼 손에는 쟁기를 잡았어도 머릿속에는 지워지지 않는 영롱(玲瓏)한 꿈이 구슬처럼 빛났다. 가난의 중량(重量)이 만근(萬斤)바위처럼 짓눌.. 나의 창작시 2019.03.06
미세(微細) 먼지 미세(微細) 먼지 연막탄을 터트린 듯 삼월 하늘에는 태양이 빛을 잃고 굴뚝 속을 걸어가는 군상(群像)들은 가슴속까지 시커멓게 그은다. 최루탄이 터진 길거리처럼 매캐한 냄새에 콧물이 줄을 잇고 묵은 후추 가루를 뿌린 듯 하루 종일 재채기에 가슴이 멍하다. 호흡을 할 때 마다 독약(毒.. 나의 창작시 2019.03.04
조국(祖國) 조국(祖國) 저 먼 옛날에 조상들이 밟은 이 땅이 수수만년을 흘러오면서 우리의 영토가 되고 조국이 되었네라. 밤하늘에 촘촘한 별들과 대낮에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 비와 눈을 뿌리는 구름까지 이 땅위에 있는 동안은 우리 것이니 초목들은 마음껏 자라나고 시절을 따라 풍성한 열매를 .. 나의 창작시 2019.03.02
참새 참새 길고 추운 겨울밤을 섶이나 낯선 처마에서 보내고 시뻘건 정강이를 드러낸 채 이른 아침 도시 골목을 배회한다. 천적(天敵)의 위험을 알아 떼 지어 협동(協同)하며 먹이 정보(情報)를 신속히 얻어 재빠르게 움직이니 지혜롭다. 그 조상(祖上)이 살던 대로 다갈색 고운 점퍼와 속에는 잿빛 카디건을 입어 일생 한 벌 옷이지만 곱다. 한꺼번에 몰려왔다. 쉴 틈도 없이 훌쩍 떠나지만 잇따라 조절거리는 노래에 자연(自然)의 생명력을 느낀다. 어릴 적 삼태기 덫을 놓고 너희 조상 몇 마리를 내가 잡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몹쓸 짓을 해서 참회한다. 2019.2.14 나의 창작시 2019.02.14
봄이여 오거라 봄이여 오거라. 얼어붙은 산하(山河)는 해빙(解氷)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차가운 강(江)바람만 마른 갈대를 휘젓는다. 얼음장은 강 뿌리에 닿고 시냇물 소리는 꿈속에서나 들린다. 버들강아지는 잔뜩 움츠렸고 겨울 햇살은 냉기(冷氣)에 도망친다. 놀던 고기떼는 어디로 갔을까. 개구리들.. 나의 창작시 2019.02.11
여우를 잡아라 여우를 잡아라. 담장을 허물고 침입(侵入)하여 심혼(心魂)을 휘젓는 옛 여우야 평온함을 파괴(破壞)하며 불안을 또 조성(造成)하느냐 후미(後尾) 음지(陰地)에 숨어 호시탐탐 주시(注視)하다 호기(好期)로 판단되면 궤사(詭詐)를 단행하는도다. 교활(狡猾)로 어지럽히고 간사함으로 사이를 .. 나의 창작시 2019.02.08
개살구꽃 개살구꽃 소년(少年)적 고향 집 뒤뜰에는 무성하게 뻗은 개살구나무가 연년(年年)이 짙은 분홍빛 꽃을 율법(律法)을 지키듯 피웠고 겹겹이 둘러 싼 작은 언덕마다 진달래 개 복숭아꽃이 지천(至賤)으로 피어날 때면 일 년 일회(一回) 별천지가 된다. 어느 해 이월(二月) 코린토스에서 살구(아몬드)꽃 풍경에 소스라쳤다. 이게 해(海)기슭에 이상향(理想鄕)처럼 몽환적 꽃 대궐(大闕)이 웬 말이던가. 그 맑고 환한 소녀의 웃음처럼 수줍은 그녀의 꽃 댕기처럼 동서양을 뛰어넘어 황홀히 피는 행화(杏花)꽃 마을은 고향 같더라. 춘풍(春風)이 살랑살랑 옷 솔기를 어루만질 때면 불현 듯이 떠오르는 살구꽃 추억 금년(今年)에도 그곳에는 꽃이 피겠지 2019.2.7 나의 창작시 2019.02.07
입춘(立春) 입춘(立春) 양력(陽曆)이월 사일경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입춘에는 남촌(南村)에서부터 융풍(融風)이 분다. 춘(春)은 현해(懸解)를 넘어오느라 막다른 절정(絶頂)에서 급박(急迫)한 혈전(血戰)을 치루고 드디어 춘화(春花)를 불붙이며 광활(廣闊)한 대지를 밟았다. 전승자처럼 의기(意氣).. 나의 창작시 2019.02.06
설날 설날 거기에 누가 살기에 설이면 사람들은 달려가는가. 차(車)길이 사방으로 막혀도 기어이 가고야 마는가. 무엇에 홀린 듯이 하나같이 들뜬 기분으로 바리바리 싸들고 빨려들 듯이 그곳으로 가는가. 봉친(奉親) 효은(孝恩)때문일까 귀소본능(歸巢本能)때문일까 휴계(休溪)나 안식(安息).. 나의 창작시 2019.02.04
홍해 앞에서 홍해 앞에서 가끔은 홍해(紅海)가 내 길을 막는다. 안면(顔面)은 실색(失色)하고 정신은 혼미(昏迷)하며 직립(直立) 보행이 뒤틀린다. 뫼 뿌리까지 뻗은 신심(信心)과 반석(盤石)같다던 의지도 허술한 돌무더기처럼 한꺼번에 뭉그러져 내린다. 자신(自身)이 쌓은 믿음이 응고(凝固)되지 못.. 나의 창작시 2019.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