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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에서

횡단보도에서 구름 몇 점 떠 있는 하늘 아래그토록 아름답던 능소화는 모두 졌다.아무도 심지 않은 나팔꽃이전봇대를 타고 오르다제풀에 꺾여 스러지고,이름 모를 희끄무레한 꽃 하나희미한 미소로 길손을 바라본다. 스러져 가는 계절에는안타까운 사연들이 사방에 널려있다.허리 굽은 노인은 신호등 앞에 서서자신의 허리를 휘게 한 시간을 바라보고,폐지를 줍는 할머니는자신의 무게를 손수레에 싣고힘겹게 길을 끌고 간다. 약봉지를 손에 들고 지팡이를 짚은우수에 잠긴 노객의 뒷모습이 가엾다.시간에 쫓기는 귀뚜라미는대낮인데도 건물 귀퉁이에서 운다.이제 태양의 빛마저 짙은 그늘에 밀려아파트 지붕 위에 모여 앉았고이성을 잃은 기계들만 붕붕거리며미친 짐승처럼 도시를 활보한다. 경계석에 발을 얹고 잠시 바라본 가을은기침 소리와 앓는 소..

나의 창작시 08:29:20

안개

안개 해마다 시월 말이면 심곡천에는 안개가 올라온다.출근하는 사람들은 총총걸음으로 걷고정류장에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이서로의 이름을 모른 채 서 있다.인도교 아래로 물은 느리게 흐른다. 산책로 벤치가 조용히 지워지고청둥오리 몇 마리는 길을 잃고 운다.점점 짙어지는 물안개를 보며나는 물의 입김이라고 믿는다.성모병원의 초록 십자가가 밤새 빛나던 밤구급차의 사이렌이 잠든 골목을 흔들었다.옆집 아주머니가 그 차에 실려 갔다는 이야기는아침 안개 속에서 지워졌다. 해가 뜨면 도시는 더욱 분주하다.무표정한 얼굴들 뒤편에서는 생각들이 부딪히고뒤엉킨 회로처럼 마음의 불꽃이 튀지만밤이 오면 모두 이불 속에서 입을 다문다.물안개는 물에서만 올라오는 것이 아니다.차마 누구에게도 말 못 할 슬픔이도시인의 가슴에 깊이 고..

나의 창작시 2026.10.22

하나님을 찬양하라(민10:1-10).

하나님을 찬양하라(민10:1-10).(성가대 헌신예배 설교) (서론)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신(막3:14~15)후 그들에게 세 가지 헌신의 방향을 알려 주셨습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헌신입니다. 주님은 사역 이전에 “자기와 함께 있게” 하셨습니다. 즉, 행위보다 주님을 사랑하는 관계를 우선으로 보십니다. 묵상, 주일성수, 새벽기도와 성경 통독 성가대 봉사, 각종 직분 감당 등으로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켜내야 합니다. 둘째, 맡겨주신 (사역)에 대한 헌신입니다. 주님은 “전도도 하며”라며 제자들에게 사역을 명하셨습니다. 성가대 등의 사역은 내가 봉사해 주는 것이 아니라, 부르심에 마땅히 응답하는 제물 된 삶입니다. 작고 사소한 일에서부터 충성하며 소명에 헌신..

프랑스의 그늘

프랑스의 그늘 한때 인류 문명의 중심이자 자유와 번영의 상징이었던 프랑스가 심각한 혼란과 도전에 직면해 있다. 끊이지 않는 폭력 시위와 소요 사태, 사회적 갈등은 단지 일시적인 정치적 진통이 아니다. 이는 수십 년간 누적되어 온 국가적 체질 약화와 정신적 몰락이 표출된 결과이자, 인류 전체에 전하는 엄중한 경고다. 프랑스의 위기는 지나친 복지제도와 장기간의 채무에 의존한 국가 운영에서 시작되었다. 과도한 사회적 비용 지출은 국가 재정을 압박했고, 노동시간 단축(주 35시간제)은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동시에 사회 전반에 일보다는 권리만을 요구하는 해이함을 확산시켰다. 국가의 미래를 내다보는 단호한 리더십의 부재 속에서 정치 지도자들은 포퓰리즘적 정책으로 국민의 눈을 가렸고, 이에 길들여진 대중은 ..

박인걸 컬럼 2026.10.21

기독교인과 언어

기독교인과 언어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수단을 넘어 한 사람의 영성과 인격을 비추는 거울이다. 성경은 구약의 시작부터 언어의 막강한 권세를 증언한다. 하나님께서는 세상과 만물을 창조하실 때 ‘말씀’을 도구로 사용하셨다. 무에서 유를 불러내신 하나님의 말씀처럼, 그분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의 말 역시 세상을 구성하고 누군가의 삶을 새로이 일구어 내는 강력한 창조적 에너지를 지닌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언어생활은 단순한 처세술이나 교양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닮은 삶을 실천하는 신앙의 본질이다. 그리스도인의 입술에서는 마땅히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언어가 흘러나와야 한다. 세상의 기준과 상황은 끊임없이 절망과 한계를 이야기하지만, 신앙인은 그 너머를 바라보며 선포하는 ‘믿음의 언어’를 소..

박인걸 컬럼 2026.10.20

코스모스 서러움

코스모스의 서러움 가느다란 목을 길게 빼고바람이 지날 때마다 고개 숙이는 꽃무심한 발걸음만 스쳐 가는 길목에서제 그림자만 조용히 흔들다가가을은 늘 먼저 와서 저문다. 피었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지고 있는 존재들고운 색채마저 계절이 잠시 내어준 옷일 뿐누가 심었는지 묻지 않아도 피고누가 보지 않아도 꽃은 지며이름을 불러주는 이 없어도 이름은 남는다. 나 역시 흔들리는 꽃처럼 길 위에 서서스쳐 지나가는 가을빛을 가만히 담아둔다.손 내밀어도 잡히지 않는 지난 계절의 조각들저물어 가는 저 꽃잎의 흔들림 속에서슬픔이란 결국 혼자서 견디는 것임을 안다. 우주라는 이름의 먼 어둠 아래작은 떨림 하나가 피었다 지는 동안무엇이 남았는지조차 알 수 없어흔들리는 것이 사는 일이라 믿으며빈자리에는 바람만 오래 머물다 간다.20..

나의 창작시 2026.10.20

비 오는 날의 그리움

비 오는 날의 그리움 쏟아지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아직 잊지 못한 이름 하나가 젖어 돌아온다.나는 그 이름을 차마 부르지 못하고어떤 부재는 소리보다 더 선명해서나뭇잎에 떨어지는 빗방울만 바라본다. 우산을 들고 나란히 걷던 그 길은 아직도 있을까.가지 끝에서 떨어지는 시간의 방울들그날의 행복은 빗물에 씻겨 어디로 흘러갔을까.추억은 젖은 채 내 안에 남아오래도록 마르지 않는다. 비는 하늘이 땅에 보내는 편지라는데나는 무엇을 두고 이토록 먼 길을 걸어왔는지지나간 것들은 사라지지 않고다른 모습으로 내 안에 살아 있다고젖은 어깨를 털어내면서 중얼거린다. 그리움은 부재의 강을 건너는 사다리이기에나는 오늘도 그 위에 서서 비를 맞는다.나는 무엇을 잃고서야 이토록 깊어질 수 있었을까.빗줄기 너머 희미한 얼굴 하나를 ..

나의 창작시 2026.10.19

가을에 부치는 편지

가을에 부치는 편지 여보게!마을이 단풍 속에 묻히니내 마음도 그 속에 파묻히네.물감으로 칠할 수 없는 색깔들이가을 나무들을 휘감을 때면작년 가을에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이두근거리는 내 심장을 세차게 두드리네. 아직 된서리가 내리기 전청초한 들국화가 높은 하늘을 쓸어 담고고즈넉한 석양 무렵 고개를 숙일 때면늦가을 저녁 바람마저 그 앞에서발걸음을 멈춘 채 서성이고붉은 노을은 꽃잎에 입을 맞춘다네. 진노랑 은행잎이 뚝뚝 떨어질 때까마득히 잊었던 삶의 뒤안길을 돌아보며곱게 늙어가리라 다짐했던 말을다시 한번 되새기고아직 덜 여문 내 마음을 꺼내어붉게 물든 단풍나무에 걸어 놓는다네. 여보게!이 가을마저 머물 날이 얼마 남지 않아쫓기는 듯한 아쉬움이 주위를 서성거리네.어둑한 하늘을 나는 철새의 울음이애절한 듯 간절한 ..

나의 창작시 2026.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