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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강

붉게 타는 강 저녁은 오늘도 같은 모습으로 왔다.서러운 노을이 강물에 길게 누울 때나는 승용차를 자유로 갓길에 세운 채한강 하구를 넋 나간 모습으로 바라보았다.나는 오늘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아목구멍에서는 식지 않은 화덕 냄새가 났다. 우리는 서로를 껴안으면서도송곳 같은 이빨을 감추지 못할까.기쁨은 날아가지 못하는 병든 기러기였고아픔은 아무 데나 뒹구는 연탄재 같았다.세월은 아픈 기억 위에 먼지를 뿌리며 흘러가고 색깔 없는 물결 속에서 불타는 것은 강이 아니다. 강 끝에서 밀려오는 어두움은 언제나 내 가난한 마음이고불 꺼진 방처럼 내 안에도 깊은 그늘이 있다. 내 안에 깊이 고인 서러움은 강이 되고바다에 닿으면 침묵이 될 것을 나는 안다. 밤이 검은 물감처럼 번져온다.이제 더는 이 자리에 머물 필요가 없다..

나의 창작시 08:18:16

가을 소묘(素描)

가을 소묘(素描) 잎새들 저마다 병든 노인처럼 초라하고녹슨 가로등 아래 낙엽 누울 때그토록 푸르던 계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상처 입은 바람만 골목을 헤맨다.가을은 해마다 이렇게한 장의 부고(訃告)처럼 찾아온다. 깨진 거울 속에 고인 저녁노을은지나간 기억의 잔해를 비추고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차가운 뒤안길에서존재한다는 것은 이토록 쓸쓸한 일인지우리는 저마다 홀로 서는 법을 배운다. 허리 굽은 노인의 마른기침 소리와주름진 이마에는 얼룩진 고독이 묻어있고저녁노을을 바라보는 슬픈 눈망울은빛바랜 낙엽을 닮아 가여운지소멸은 이토록 고요하게 완성되는 것인가.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그림자만 남고계절의 끝자락에서 나는 홀로 묻는다.결국 우리도 사라질 운명의 존재들우리는 각자 무엇을 남기고 가는가.낙엽이 쌓인 거리에 어둠..

나의 창작시 2026.10.05

기억의 한

기억의 한계 계절이 바뀌는 거리에 불빛이 한 겹씩 벗겨지는 시간오래 비워 둔 문고리를 나는 만져보았다. 차가운 손이 닿을 때 두고 온 얼굴은 모두 식어 있었고누구의 이름이었는지 입술만 잠시 움직였다.나의 기억은 가장자리부터 하얗게 닳고 있었다. 세월의 강에 깊이 가라앉은 것들은 끝내 말하지 않았고나는 그 자리에 서서 지난날들의 궤적을 세어보았다.하나는 빈 의자였고 하나는 그림자였고나머지는 세다가 어두워져서 잊었다.잊는 일은 손을 놓는 일보다 조용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천천히 계절 속으로 들어갔다.자세히 살펴보니 재였고 아무도 그 이유를 묻지 않기에나는 내 몫의 연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그토록 사랑했던 것들이 어디서 사라졌는지끝내 알지 못한 채 나는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그래서 내가..

나의 창작시 2026.10.04

시간의 성화(聖化)

시간의 성화(聖化) 까마득한 시간의 기억들이아직은 공백 건망증에 갇히지는 않았다.산 도토리들이 우박처럼 쏟아지던질맷재 길을 걸어 넘을 때무릎 연골이 여물지 않아 보폭이 좁아도늙은 자작나무 굽어보는 정상을 향해작은 아이는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그 후 보폭이 길어진 나는 아주 오랜 세월의 풍상을 밟으며황사 바람 부는 세상을 쫓아다니는 동안반반하던 이마에 주름은 깊고청아하던 발음에 바람이 새는 소리가 난다. 두 손에 움켜쥐었던 시간들이 지금은내 영역을 벗어나 따라잡을 수 없다. 꽃잎에서 풀잎으로 그리고 단풍잎으로잔나비처럼 뛰어다니는 시간은알맹이는 몽땅 쓸어가고온갖 죽쩡이 들만 내 발 앞에 던졌다.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삶의 껍데기들만차곡차곡 시간의 무대에 쌓였다. 시간을 성화시키지 못한 나는결국 시간의 포..

나의 창작시 2026.10.03

기독교인과 대중문화

기독교인과 대중문화 오늘날 우리 사회는 대중문화 콘텐츠 하나를 두고도 거센 갈등과 분열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최근 큰 화제가 된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사회적 공방은 그 대표적인 단면이다. 역사 왜곡과 실존 인물의 유가족이 겪을 아픔을 외면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한편, 반대편에서는 예술적 표현의 자유와 창작의 자율성을 옹호하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정치적 이해관계와 진영 논리가 예술을 소비하는 주요 잣대가 되면서, 문화는 소통과 감동의 장이 아니라 또 다른 싸움터로 변질된 모습이다. 이처럼 대중문화가 상업적 논리와 정치적 대립의 도구로 전락할 때, 세상을 향해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기독교인들은 과연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이와 같은 혼란 속에서 ..

박인걸 컬럼 2026.10.02

가을

가을 한가위 들녘에는못다 핀 꽃들이 일제히 일어선다.쑥부쟁이, 용담초, 산국꽃, 향유, 투구꽃,찬바람 저 멀리서 걸어오고 있음을예리한 촉으로 알아차려서다. 그래선지 길가에 늘어선 코스모스는가을 하늘 아래 유난히 애잔하다.이제 곧 나뭇잎마저 붉은 꽃이 되면지나치게 익어가는 나는작년보다 더 여윈 뺨에 서럽고시월 찬 서리 무참히 짓밟을 때면그 곱던 흰 국화마저 쓰러지면 어쩌나. 아! 이렇게 또 한 번의 가을이시간의 징검다리를 건너가면늦게 핀 꽃들마저 어디론가 사라지고아지랑이 붉은 꽃 피는 봄날을맞이하리라는 나의 꿈은바람에 가물거리는 등잔불이 된다.떨리는 눈빛으로 바라본 저녁노을이오늘은 더더욱 서글프다. 2021.9.19

나의 창작시 2026.09.28

영혼의 자궁

영혼의 자궁 마을 어귀 노송은 백발이 된 나를 기억 못 했다.주춧돌만 앙상한 집터에는 낯선 바람이 드나들고아이들 재잘대며 뛰놀던 언덕에는 야생화가 겸연쩍게 노을을 묻히고 있었다.어린 날의 내가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 같아서차마 말을 잊은 채 이상한 침묵이 흘렀다. 그곳에는 뜨겁던 생명들이 모두 어디론가 증발했다.집으로 가던 길은 지워졌고 시간의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길 없는 들판을 한없이 서성이며한때 내 삶의 전부였던 하늘을 쳐다보았다.그러나 하늘마저도 흘러간 세월을 잊은 눈치였다. 그러나 바위에 걸터앉은 내몸은 거짓말처럼 반응했다.아득한 세월을 건너온 흙냄새가마치 오래된 피처럼 혈관을 타고 스며들 때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뜨거운 슬픔이 치밀어 올랐다.사람은 태어난 곳을 등지고 살 수 있다고 믿지만..

나의 창작시 2026.09.27

사랑으로 성도를 품는 권사(행9:36~42)

사랑으로 성도를 품는 권사(행9:36~42)(서론)크리스챤 투데이 신문에서 읽은 기사 내용입니다. 34년 동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한결같이 강단을 지켜온 한 권사님의 이야기는, 오늘 하나님 앞에 헌신을 다짐하는 우리 모두의 가슴에 깊은 도전과 울림을 줍니다.김은혁 권사님은 이화여대(梨花女大) 약학과를 졸업하고 남편을 따라 미국에 이민을 갔습니다. 미국에 정착하는 과정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미국에서 자리를 잡고 살만해질 그때, 그의 남편이 흑인 강도를 만나 그만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어렵고 고통스러운 과정에 권사님은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의 기도는 절박했습니다. 그는 매일 기도로 삶을 살았습니다. 그 기도의 자리에서 목회자의 부탁으로 강단에 물 한 잔을 올려놓은 것이 계기(契機)가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