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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부치는 편지

가을에 부치는 편지 여보게!마을이 단풍 속에 묻히니내 마음도 그 속에 파묻히네.물감으로 칠할 수 없는 색깔들이가을 나무들을 휘감을 때면작년 가을에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이두근거리는 내 심장을 세차게 두드리네. 아직 된서리가 내리기 전청초한 들국화가 높은 하늘을 쓸어 담고고즈넉한 석양 무렵 고개를 숙일 때면늦가을 저녁 바람마저 그 앞에서발걸음을 멈춘 채 서성이고붉은 노을은 꽃잎에 입을 맞춘다네. 진노랑 은행잎이 뚝뚝 떨어질 때까마득히 잊었던 삶의 뒤안길을 돌아보며곱게 늙어가리라 다짐했던 말을다시 한번 되새기고아직 덜 여문 내 마음을 꺼내어붉게 물든 단풍나무에 걸어 놓는다네. 여보게!이 가을마저 머물 날이 얼마 남지 않아쫓기는 듯한 아쉬움이 주위를 서성거리네.어둑한 하늘을 나는 철새의 울음이애절한 듯 간절한 ..

나의 창작시 05:47:55

About Loneliness(고독에 관하여

About Loneliness(고독에 관하여) 이제 꽃들은 사라졌습니다.뒷산 나뭇잎의 절반이 비탈에 나뒹굴고도시 정원의 나무들도 수의를 걸쳤습니다.사나운 바람이 휘저을 때면암을 앓는 여인의 머리카락처럼잎들이 속절없이 쏟아집니다. 도시의 기러기들은 하늘 높이 떠서서글픈 울음을 허공에 뿌리며 북으로 갑니다.앞마당의 병든 마로니에는그 곱던 옷을 강제로 벗기우고가자미 가시처럼 하늘에 내걸렸습니다.내가 겪은 가을이 한두 번이랴마는간담상조하던 벗을 떠나보낸 때보다오늘의 가을은 더욱 쓸쓸합니다. 늦가을 비라도 내린다면내 마음은 낡은 담장처럼 무너질 것입니다.저녁의 태양이 산너머로 스러지고사납던 바람도 빌딩 뒤로 숨었습니다.새벽처럼 고요해진 거리에서고독은 밀물처럼 다시 차오릅니다. 해외 객창(客窓)에서 병을 얻은 나그..

나의 창작시 2026.10.17

나무 한 그루

나무 한 그루 발과 다리가 있어야 걷는 것만은 아니다.세월 위를 걸어가는 나무는 수족이 없다.한 알의 씨앗이 떨어진 자리가운명의 뿌리가 되어죽는 날까지 그 자리에 서 있지만시간과 함께 부지런히 걸어간다. 여린 두 잎이 땅을 헤집고 나오던 날아마도 거목을 꿈꾸었으리.만고풍상을 겪느라 등은 굽고껍질에는 이끼와 상처가 쌓였어도우람한 가지를 하늘로 뻗어우러러볼 만한 연륜을 쌓았다.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라무엇을 향해 가는 존재는 아름답다.쏟아지는 폭우와 가지에 깃든 노을가지를 밟으며 부르는 새의 노래하얗게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나무는 오직 한자리에서 걸었다. 세월을 밟고 가는 존재들이모두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깊이 사유하고 자신을 돌아볼 때비로소 내면의 나이테가 두꺼워진다.가을의 길목에 한 그루 거목흰 구름이 그..

나의 창작시 2026.10.16

외눈박이 플리페모스

외눈박이 폴리페모스 얼마 전, 절찬리에 상영되어 누적 관객 1,200만명을 넘긴 그리스 로마 신화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에는 오디세우스 일행을 위협하는 무서운 괴물,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가 등장한다. 이 거인은 이마 한가운데에 커다란 눈 하나만을 가지고 있다. 단 하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 괴물의 특징은 압도적인 물리적 힘을 자랑하면서도, 동시에 비극적인 파멸을 자초하는 원인이 된다. 신화 속 키클롭스 족의 폴리페모스는 외눈으로 세상을 보기에 입체성과 깊이감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오직 눈앞에 보이는 자기중심적 욕망과 편협한 시각에만 갇혀 살아가며, 결국 오디세우스의 지혜 앞에 처참히 무너지고 만다. 이 신화적 상징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깊은 영적 성찰을 건네..

박인걸 컬럼 2026.10.15

가을 편지

가을 편지 마른 잎들이 바람결에 몸을 맡기고오래 접어 둔 안부처럼 내 발끝에 내려앉는다.다듬지 못한 문장들이 저녁 하늘에 번져고운 노을로 겨우 제 이름을 얻을 때나는 아직 그이에게 보낼 말을 고르고 있다. 강물은 깊은 침묵 속에 제 그림자를 지우고강가의 잡초는 비워 낸 만큼 가볍게 흔들린다.채우려 몸부림치던 날들이 너무 쉽게 흩어질 때나는 무엇을 붙들려고 이토록 오래 서 있었나 가을은 대답 대신 서늘한 숨결만 건넨다. 기다림을 오래 두면 빛이 바래는 것을가을 들녘에서 나는 조용히 깨닫는다.사라지는 것들은 하나같이 아름다운지지는 일은 왜 이토록 쓸쓸하고 아쉬운지 나는 끝내 두 질물은 던지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이 편지를 부치지 않기로 한다.주소 없는 계절의 우체통에 마음만 넣어두고낙엽 위에 남은 온기로 ..

나의 창작시 2026.10.14

가을비 오던 날

가을비 오던 날 오후 다섯 시 반, 도시는 천천히 낯빛을 잃어가고젖은 나뭇잎은 버스 정류장 바닥에 낮게 눌어붙고우산을 접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름을 잊은듯했다.나는 오래 비어 있는 의자에 앉아떠나간 것들이 남긴 무게를 재어보았다. 빗소리는 깊이 접어 둔 편지 속에서 번졌다.읽히지 않은 활자들이 발코니 끝으로 떨어졌다.형광등은 아직도 희미하게 떨리고나는 희미한 불빛 아래 늙은 얼굴로 서 있었다.사랑이라 부르던 것들이 젖은 채 식어갔다. 아파트단지 가로등 아래 그림자가 지워지는 동안저무는 것들이 그토록 아름다운지 나는 묻지 않았다.손바닥을 펴 빗방울의 짧은 생애를 받아볼 때빗물은 닿자마자 나의 일부가 되었고나는 조금씩 사라지는 사람이 되었다. 밤이 왔을 때 비는 그쳤고 나는 그치지 않았다.고인 빗물 속에 ..

나의 창작시 2026.10.13

시월 오후(午後)

시월 오후(午後) 50층 리첸시아 아파트는제 그림자를 아래로 던지고낮은 아파트들은 그 그림자 아래서 늙어간다.마로니에는 수의로 갈아입는 중이고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얼굴이 창백하다. 가을은 이파리마다 붉은 울음을 토하고벽에 부딪힌 햇살이 깨진 유리처럼 이마로 쏟아진다.풀벌레들은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묻지 않고벌레들 울음 빠져나간 공원에는 공허함만 맴돈다.배롱나무는 그 곱던 꽃을 모두 잃고기억만 몇 장 가지에 걸어둔 채 서 있다.긴소매를 입은 사람들이 지나간다.그들의 주머니에는 한 계절이 벌써 식어 있다.노란 유치원 차는 계절을 읽지 않고우체통은 오래전부터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는다. 씨방마저 비워버린 잡초들이제 이름이 지워질 시간을 천천히 읽는다.책가방을 멘 소녀가 건널목을 건넌다.그 뒤를 가을이 따라간..

나의 창작시 2026.10.12

그리운 어머니

그리운 어머니 초여름이면 산 아래 쉬땅나무꽃이 먼저 시들었고나는 그 냄새를 오래 맡지 않았다.냇물은 밤낮 낮은 소리로 흘렀고그 소리가 기도였는지 끝내 묻지 않았다.어머니의 손은 목련꽃보다 희었으나밭이랑에 엎드려 김매느라 붉게 터 있었다. 제비꽃에 나비가 잠시 앉았다가 떠났지만나는 그것을 입맞춤이라 부르지 않았다.어머니는 불 꺼진 부엌에 혼자 오래 서 있을 뿐가슴에 난 구멍을 끝내 말하지 않았다.별빛 몇알을 쓸어 담아식은 강냉이밥에 섞어 올려놓던 어머니는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중얼거리셨다. 숲을 지나가던 실바람 소리를나는 어머니의 자장가였다고 믿기로 했다.믿지 않으면 저녁이 너무 길었다.어머니가 좋아하던 배추 국화꽃을 한 아름 들고풀 덮인 봉분 앞에 서 있는 나를 본다.돌아오는 길이 하도 어두워봄은 해마다..

나의 창작시 2026.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