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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무는 가을

저무는 가을 미루나무를 타넘은 햇살은어느덧 계양산성 고개를 넘어간다.앞산의 그림자는 뒷산 봉우리를 기어오르고서늘한 바람은 오동나무 잎을 떨군다. 황달 든 산은 하루가 다르게온 산으로 번져가고마지막 노래를 부르는 국화의 빛깔은나를 홀렸던 소녀의 피부 빛 같다. 말없이 흘러가는 저 강물에애끓는 그리움이 강둑까지 차오르고줄지어 날아가는 기러기의 울음은강변에 나부끼는 갈대숲으로 쏟아진다. 내가 부르던 그리운 이름은아스라한 기억 속을 헤매고수줍음 타던 소녀의 고운 미소만저녁노을에 길게 걸려있다. 저무는 가을 들녘이 퍽 허허롭지만곱게 익은 나뭇잎에서 행복을 줍는다.2020. 10. 20.

나의 창작시 07:24:30

가을로 가는 길

가을로 가는 길 그토록 푸르던 젊음은 떠났다.싱그럽고 풋풋했던 시절도 빛이 바랬다.꿈, 낭만, 패기, 열정도 뒤안길로 사라지고찢어진 깃발처럼 빛바랜 잎들만텅 빈 가지에 매달려 펄럭인다. 활화산처럼 타오르며찬란한 색채를 자랑하던 단풍잎들은살아온 삶의 이력서를 자랑했는데,찬바람 몇 번 사정없이 훑고 간 뒤감찰관의 눈에 띄어 쫓겨난 벼슬아치처럼잎들은 속절없이 떨어졌다. 내가 오래도록 꿈꾸어 온 마지막은곱게 짠 비단에 한 마리 학(鶴)을 수놓아붉은 노을 속에 깊이 물들이는 일이었다.지나온 길은 삭막한 황야였으며가도 가도 끝을 모를 안갯길이었다. 때로는 길 잃은 한 마리 따오기가 되어별빛마저 사라진 밤하늘을 쳐다보며처량한 곡조로 목이 메도록 울었었다.그래도 가슴에는 희망의 불씨를 담아 놓고갯벌에 정박한 한 척의 ..

나의 창작시 2026.10.25

슬픔

슬픔 낙엽이 발에 밟힌다.사라져버린 젊은날의 영광이여짙푸르던 빛깔의 과시여별처럼 빛나던 형형이여어찌하여 곤두박질쳐진 채로돌아갈 수 없는 미아가 되었는고해는 이미 저물고 허무만 길 위에 뒹굴고텅 빈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이 샌다. 무서운 시간에 생명을 갉아 먹히고마지막 한 잎까지 잃어버렸다.감추었던 속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발밑에서 숨을 거두는 생명을 슬퍼한다.일제히 잎의 죽음을 맞는목본식물의 이파리들이 너부러진황금길에는 슬픔이 출렁인다. 해마다 그 일이 반복되는 길목에서나의 기억은 또렷하다.언젠가 나 또한 한 닢 낙엽으로그 길 위에 누우리.2023,10,23

나의 창작시 2026.10.24

횡단보도에서

횡단보도에서 구름 몇 점 떠 있는 하늘 아래그토록 아름답던 능소화는 모두 졌다.아무도 심지 않은 나팔꽃이전봇대를 타고 오르다제풀에 꺾여 스러지고,이름 모를 희끄무레한 꽃 하나희미한 미소로 길손을 바라본다. 스러져 가는 계절에는안타까운 사연들이 사방에 널려있다.허리 굽은 노인은 신호등 앞에 서서자신의 허리를 휘게 한 시간을 바라보고,폐지를 줍는 할머니는자신의 무게를 손수레에 싣고힘겹게 길을 끌고 간다. 약봉지를 손에 들고 지팡이를 짚은우수에 잠긴 노객의 뒷모습이 가엾다.시간에 쫓기는 귀뚜라미는대낮인데도 건물 귀퉁이에서 운다.이제 태양의 빛마저 짙은 그늘에 밀려아파트 지붕 위에 모여 앉았고이성을 잃은 기계들만 붕붕거리며미친 짐승처럼 도시를 활보한다. 경계석에 발을 얹고 잠시 바라본 가을은기침 소리와 앓는 소..

나의 창작시 2026.10.23

안개

안개 해마다 시월 말이면 심곡천에는 안개가 올라온다.출근하는 사람들은 총총걸음으로 걷고정류장에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이서로의 이름을 모른 채 서 있다.인도교 아래로 물은 느리게 흐른다. 산책로 벤치가 조용히 지워지고청둥오리 몇 마리는 길을 잃고 운다.점점 짙어지는 물안개를 보며나는 물의 입김이라고 믿는다.성모병원의 초록 십자가가 밤새 빛나던 밤구급차의 사이렌이 잠든 골목을 흔들었다.옆집 아주머니가 그 차에 실려 갔다는 이야기는아침 안개 속에서 지워졌다. 해가 뜨면 도시는 더욱 분주하다.무표정한 얼굴들 뒤편에서는 생각들이 부딪히고뒤엉킨 회로처럼 마음의 불꽃이 튀지만밤이 오면 모두 이불 속에서 입을 다문다.물안개는 물에서만 올라오는 것이 아니다.차마 누구에게도 말 못 할 슬픔이도시인의 가슴에 깊이 고..

나의 창작시 2026.10.22

하나님을 찬양하라(민10:1-10).

하나님을 찬양하라(민10:1-10).(성가대 헌신예배 설교) (서론)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신(막3:14~15)후 그들에게 세 가지 헌신의 방향을 알려 주셨습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헌신입니다. 주님은 사역 이전에 “자기와 함께 있게” 하셨습니다. 즉, 행위보다 주님을 사랑하는 관계를 우선으로 보십니다. 묵상, 주일성수, 새벽기도와 성경 통독 성가대 봉사, 각종 직분 감당 등으로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켜내야 합니다. 둘째, 맡겨주신 (사역)에 대한 헌신입니다. 주님은 “전도도 하며”라며 제자들에게 사역을 명하셨습니다. 성가대 등의 사역은 내가 봉사해 주는 것이 아니라, 부르심에 마땅히 응답하는 제물 된 삶입니다. 작고 사소한 일에서부터 충성하며 소명에 헌신..

프랑스의 그늘

프랑스의 그늘 한때 인류 문명의 중심이자 자유와 번영의 상징이었던 프랑스가 심각한 혼란과 도전에 직면해 있다. 끊이지 않는 폭력 시위와 소요 사태, 사회적 갈등은 단지 일시적인 정치적 진통이 아니다. 이는 수십 년간 누적되어 온 국가적 체질 약화와 정신적 몰락이 표출된 결과이자, 인류 전체에 전하는 엄중한 경고다. 프랑스의 위기는 지나친 복지제도와 장기간의 채무에 의존한 국가 운영에서 시작되었다. 과도한 사회적 비용 지출은 국가 재정을 압박했고, 노동시간 단축(주 35시간제)은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동시에 사회 전반에 일보다는 권리만을 요구하는 해이함을 확산시켰다. 국가의 미래를 내다보는 단호한 리더십의 부재 속에서 정치 지도자들은 포퓰리즘적 정책으로 국민의 눈을 가렸고, 이에 길들여진 대중은 ..

박인걸 컬럼 2026.10.21

기독교인과 언어

기독교인과 언어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수단을 넘어 한 사람의 영성과 인격을 비추는 거울이다. 성경은 구약의 시작부터 언어의 막강한 권세를 증언한다. 하나님께서는 세상과 만물을 창조하실 때 ‘말씀’을 도구로 사용하셨다. 무에서 유를 불러내신 하나님의 말씀처럼, 그분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의 말 역시 세상을 구성하고 누군가의 삶을 새로이 일구어 내는 강력한 창조적 에너지를 지닌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언어생활은 단순한 처세술이나 교양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닮은 삶을 실천하는 신앙의 본질이다. 그리스도인의 입술에서는 마땅히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언어가 흘러나와야 한다. 세상의 기준과 상황은 끊임없이 절망과 한계를 이야기하지만, 신앙인은 그 너머를 바라보며 선포하는 ‘믿음의 언어’를 소..

박인걸 컬럼 2026.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