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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아침

가을 아침 信士/박인걸 해가 떴어도 어두운 목구멍처럼 아침 안개는마을 어귀에서 제 가슴을 찢고낡은 자전거 페달 위에는 찬 이슬이 내린다.누군가 버린 이름 위에는 침묵이 맴돌고각자는 주머니에서 식은 손을 덥힐 때계절은 차가운 계단을 무겁게 내려간다. 주인 잃은 개는 자꾸 뒤돌아보다 멀리 달아나고살아온 날들은 흙 위에 남겨진 바퀴 자국처럼 흐려진다.지켜지지 않은 약속들은 밤새 낮은 목소리로 울고바람은 빈 우체통에 붉은 혀를 밀어 넣다가녹슨 난간에 묻은 시간의 손때만 만지고 간다. 기운 지붕 위에 가을 햇살의 파편이 떨어지고우리가 치러야 할 슬픔은 늘 가불이었다.허기진 비둘기의 눈동자처럼 굳어버린 아침에나는 아무도 내리지 않는 간이역의 시계를 바라본다.생의 상처는 안개 속에서만 푸..

나의 창작시 06:01:56

모월(某月) 모일(某日)

모월(某月) 모일(某日) 하늘은 잔뜩 흐렸지만비는 아직 구름에 갇혀있다.바람은 나뭇잎 위에서 잠들고봄 가뭄에 말라죽은 회향목이 서럽다.어디론가 가고 있는 사람들의 행렬과목적 없이 배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나는 어디쯤 왔는지 알지 못한다. 배롱나무꽃이 마지막 잎을 떨어트리던 날불자동차는 사이렌을 울리며 달렸고검은 연기가 기둥처럼 일어서서무너지려는 구름을 떠받친다.순간순간 일어나는 삶의 장면들이어릴 적 의미 없게 관람하던 활동사진처럼 펼쳐지고이유도 없이 치미는 부아를 참으며바람에 꺾인 오동나무 아래 나는 잠시 머문다. 못생긴 달팽이 한 마리촉각을 곤두세우고 이사를 한다.스무 번 넘게 이삿짐을 싣고부스러기를 흘리며 다닌 내가 가엽다.아직은 코스모스가 곱게 피어 위로가 된다.긴 목을 빼 들고 하늘거릴 때어머니의 ..

나의 창작시 2026.09.19

무제(無題

무제(無題) 信士(신사)손가락을 꼽으며 세월을 세어보면어디쯤 세다가 숫자를 잊어버린다.손가락 하나를 일 년으로 셀 때면스쳐 지나가는 기억들이 나를 붙잡아서다.아름다운 추억 못지않게아픈 기억들도 지폐처럼 넘어간다.갈피갈피 끼워 둔 기억의 엽서가하도 많아 몇 해를 세어도 끝이 안 날 것만 같다.나의 저녁 거리에는 그림자가 왕래하고가물거리는 가로등에는 내 눈동자가 걸려있다.빼곡하던 밤하늘 별들이저 하늘가 어디론가 달아나 버렸다.내가 걸어온 길은 언제나 낯선 땅이었고가파른 사다리 마지막 칸을 디딜 때면미끄러지는 꿈을 꾸면서아직도 어느 파도 위를 걷고 있다.여러 갈림길에 서서길을 물을 사람을 찾아보지만아무도 그 길을 지나가지 않는다.휴대전화에 번호를 입력하지만아무리 숫자를 눌러도 ..

나의 창작시 2026.09.18

슬픈 가을

슬픈 가을 길을 걷다가 나는 무엇을 잃었는지 생각한다.바람은 여름의 이름을 지우며 지나가고낙엽은 누군가 읽다 만 편지처럼 구겨졌다.저녁 그림자가 내 옆에 길게 서 있을 때가을은 슬픔을 데리고 온다는 것을 나는 안다. 한 계절 뜨거웠던 것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불빛 꺼진 창문마다 사람들의 하루가 접혀 있고나는 창문을 세다가 내 것은 몇 번째인지 잊어버린다.길은 점점 어둡고 걸어온 발자국은 보이지 않고가을은 언제나 뒤에서 부르는 목소리로 온다. 이맘때면 고독은 습관처럼 내 어깨에 내려앉고나는 일부러 그것을 밀어내지 않는다.무표정한 사람들이 내 얼굴을 스쳐 지나가고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않는 거리에서나는 나 자신에게조차 낯선 사람이 된다. 삶은 결국 지워지는 목록이 아니었을까.젊음도 사랑도 계절처럼 왔다가 소..

나의 창작시 2026.09.16

피터팬 콤플렉스 (Peter Pan Complex)

피터팬 콤플렉스 (Peter Pan Complex) 성인이 되었음에도 사회적 책임과 현실을 거부한 채 마음속에 어린아이로 머물고자 하는 심리적 상태를 '피터팬 콤플렉스'라 부른다. 어른이라는 무게감, 선택에 따르는 책임, 그리고 실패의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쳐 환상의 세계에 안주하려는 이 현상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들과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깊은 영적 앓이로 나타나고 있다. 신앙의 영역에서 이 콤플렉스는 단순한 성격적 결함을 넘어, 하나님이 허락하신 성장의 여정을 거부하는 영적 정체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성경은 끊임없이 성장을 말한다. 고린도전서 13장 11절은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

박인걸 컬럼 2026.09.15

들길을 걸으며

들길을 걸으며 빛바랜 풀잎이 서글피 눕고계양산 산그림자가 길게 드리운 김포 들녘사라져간 것들의 자리를 더듬으며고개 숙인 벼 이삭에 눈을 맞출 때바람이 돌아와 내 발걸음을 붙잡는다. 황금벌판에 번져가는 노을빛잡으려 하면 손가락 사이로 흐트러지고내가 겪은 세월의 무게는 잡초처럼흔들리지만 부러지지 않는 법을 배우며나는 이방인처럼 어디론가 흘러간다. 비운 가슴으로 바라보는 하늘은늙은 아버지가 바라보시던 그때처럼 시린 가을머물 수 없기에 아름다운 생의 순간들이서러운 별빛처럼 가슴에 고여 오고바람은 길 잃은 구름을 어디론가 데려간다. 아득하게 펼쳐진 황혼의 길목에서내가 걸어온 발자국마저 지워지는 것을 보며홀로 걷는 것이 삶의 길일지라도흩어지는 풍경 속에서 나는 문득 눈을 감고찬란한 고독의 품에 조용히 안긴다. 2..

나의 창작시 2026.09.15

가을 고독

가을 고독 내 낡은 주머니 속에 만져지는버리지 못한 과거의 빛바랜 명함들처럼마로니에 나무는 벌써 병든 잎을 매달고누구나 한번은 건너야 할 늙음의 길목에서무거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골목을 돌아다니는 노쇠한 바람이빛바랜 벽보처럼 지워져 가는 생의 기억들우리는 각자 이별을 가슴에 품은 채아무도 도달하지 못할 섬을 향해 걸으며 서로의 눈빛 속에서 침묵의 바다를 읽어낸다. 깊은 슬픔은 언제나 소리 없이 찾아오고빈 의자 하나 놓인 방안의 그늘처럼어떤 느낌에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창밖으로 지는 마른 잎사귀의 뒷모습처럼죽음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숨 쉬고 있다. 길 잃은 나그네처럼 노을을 바라보노라면살아있는 존재는 하나같이 혼자가 되고눈부시도록 쓸쓸한 진실 앞에 멈춰 서서우리는 저마다 저무는 계절이 되어한 송이 고..

나의 창작시 2026.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