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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가로수

도시의 가로수 아스팔트 밑을 두더지처럼 쑤시는 뿌리매연과 번잡한 바퀴 소리를 들으며목마른 입술을 열어 온갖 먼지를 삼키는 나무푸른 잎사귀마다 말없이 흔들리는이 나무를 누가 길가에 죄수처럼 형벌을 내렸나. 마천루 거대한 빌딩의 그늘태양을 잃어버린 지 오래된 길모퉁이철제 울타리에 갇힌 기형의 발목으로 비틀대며대형트럭이 지나갈 때마다 흔들리는 진동에도너는 가지를 뻗어 하늘을 겨누는구나. 웃자란 가지마다 참수를 당할 때면잘려 나간 가지마다 흘러내리는 눈물말없이 잘린 팔다리를 품고삭막한 보도블록 위에 서서죽은 듯 살아야 하는 서글픈 파수꾼이 된다. 갈기갈기 찢긴 잎에 가을 서리가 내릴 때황갈색 병든 잎을 맥없이 떨구며비로소 가슴을 열어 시퍼런 가시를 드러낸다.콘크리트 심장을 끝내 뚫지 못해도도시의 화려함 속에서 ..

나의 창작시 04:25:14

초가을

초가을 거실 바닥에 앉아 놀던 햇빛이말도 없이 베란다 창틀을 넘어가고 있다.누군가 두고 간 우산처럼계절은 문 앞에서 서성일 뿐좀처럼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나는 아주 오래된 여름 추억을버리지 못한 채 주머니 속에 넣어두었다.멀리서 산비둘기가 울고고층 아파트 그림자가 학교 운동장 위로아주 기다랗게 몸을 눕혔다. 삶을 포기한 아로니아잎들은하나둘 아스팔트로 뛰어내리고나는 애써 못 본 척 고개를 돌려 유리창에 내 이마를 대고건너편 가로 등불을 세고 있었다. 가을은 언제나 편지처럼 왔다가읽기도 전에 낡아버리는 소식처럼사라지기에 나는 문을 닫았다.9월은 이렇게 아무 말 없이내 방에 잠시 머물다 어디론가 사라진다. 2026.9.2

나의 창작시 2026.09.03

구월(九月)

구월(九月) 그 따갑던 햇살이 바람결에 스러지고산들거리던 풀잎마다 숨결이 잦아들며머뭇거리던 계절이 고개를 숙일 때어느덧 이른 아침에 서늘한 기운이 번진다. 비워낸 자리마다 가을이 내리고농익은 그리움은 소리 없이 영글어지나온 날들의 기쁨과 아픔까지도붉게 젖어 드는 계절의 빛깔이 된다. 앞산은 노을빛에 긴 그림자를 늘이고저무는 언덕 너머를 바라보며너와 내가 나눈 수많은 이야기가가벼이 스러지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토록 푸르던 추억은 침묵 속에 묻히고낮게 들려오는 바람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며저무는 저 가을의 첫 페이지를 향해지그시 눈을 감고 네 이름을 불러본다. 2028.9.1

나의 창작시 2026.09.02

자연 파괴에 대한 히말라야의 복수

자연 파괴에 대한 히말라야의 복수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히말라야 산맥이 핏빛 눈물을 흘리고 있다. 최근 네팔을 덮친 거대한 기후 재앙과 대규모 홍수는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 파괴가 어떤 비극적 결과를 초래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빙하가 붕괴하여 형성된 거대한 흙더미와 폭우가 순식간에 마을과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세상은 이를 히말라야의 복수라고 부른다. 화석 연료의 과도한 사용, 무분별한 산림 훼손, 이윤만을 추구한 자연 수탈에 대해 대자연이 마침내 무서운 응징의 칼끝을 겨누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이 사태를 바라볼 때, 이것은 단순한 자연의 사사로운 보복이나 분노가 아니다. 성경은 피조물이 인간의 죄와 탐욕으로 인해 지금 이 순간에도 깊은 고통에 신음하고 있음을 증..

박인걸 컬럼 2026.09.01

기나긴 여로(旅路)

기나긴 여로(旅路) 내가 거기서 첫출발하던 날작은 마을은 텅텅 비어 있었고 살짝 드러누운 비탈 밭이랑에는흰 눈이 광목처럼 널려있었다.빗살처럼 뻗어 내린 산맥은숫한 이야기들을 골짜기에 채웠고그 속에서 자라온 나는자연이 준 심장으로 계절을 노래하였다. 꽃비 내리던 오솔길과단풍잎 쏟아지던 오르막길을아무 목적 없이 걸어도 행복했다.눈이 퍼붓던 벌판을 움츠리고 걷던 날에는여름 소낙비를 그토록 그리워했다.느릅나무에서 속잎이 돋아나던 계절에내 꿈을 백 척 가지 위에 걸었고늦가을 달이 호수에서 목욕하던 날에콜럼버스의 후예가 될 것을 결심했다. 지독한 탐험의 세월은 낡은 일기장에 갇혔고아슬아슬한 삶의 곡예들은언제나 나를 새로운 세상에 내세웠다.기나긴 여로에 이제는 기운이 빠졌지만아직은 가득한 비경을 따라마음에 작정한 그..

나의 창작시 2026.09.01

심장(心腸)

심장(心腸) 信士(신사)/박인걸내 명치 부위에서 울리는 심음내가 살아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그날까지 달려가야 할 말 발굽 소리갈비뼈 속에 숨어 있는 보물혈류로 생명을 실어 보내는 샘물깊은 곳에 숨어 있는 내 얼굴희로애락을 조절하는 리모컨하늘과 맞닿은 신(神)의 숨결한 번도 멈추지 않고 뛰는 기적끝없이 사랑을 만들어내는 불가사의설렐 때면 한없이 두근거리다가속이 상할 때면 칼로 벤 듯 저며 오는 가슴누가 내 속에 붉은 주머니를 매달아붉은 피를 가득 담아 주었는가.한 번도 지치지 않는 내 호흡주먹만 한 염통 하나에 일생을 건다.2021.8.14

나의 창작시 2026.08.31

봉숭아 꽃

봉숭아 꽃 붉은 꽃잎 찧어 손톱에 꽃물 들이던 소녀여백반 한 조각 손톱에 녹아들고햇빛은 풀잎에 앉아 온종일 놀던 날사춘기도 오기 전무슨 마음인지도 모르면서첫사랑보다 먼 빛깔이 내 가슴에 스며들었네. 꽃물 들이던 소녀의 하얀 손이밤새도록 소년의 작은 가슴을 흔들었고잠 못 이루며 떠올리던 다소곳한 얼굴다가서면 혹시 도망칠지 몰라 멀찍이 바라보면서그 손톱 위에 실 한 올 찬찬히 감아주고 싶었네. 고향 언덕을 스쳐 가던 바람 소리 들으면풀잎 사이 숨었던 그 오후가 돌아오고싸리나무 울타리 아래 봉숭아꽃 몇 송이아직도 붉은빛을 품고 있을 것만 같네.꽃물 대신 네일아트가 손끝을 밝히는 세상그날의 빛은 손톱에서 지워졌어도내 안에서는 해마다 더 붉어졌네. 이제는 먼 시간 속에 묻혀빛바랜 사진처럼 가장자리가 닳았지만..

나의 창작시 2026.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