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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작시 1393

고통의 소리

고통의 소리 어릴 적 어머니의 지시를 따라 암탉의 목을 사정없이 비틀 때 질식의 고통에 몸부림치며 죽어가던 닭의 신음은 지금도 귓가에 울린다. 그때는 거부할 핑계도 없이 소년의 호기와 사춘기 영웅심에서 생명체의 귀중함을 간과했다. 살생의 죄의식 하나 없이 적의 목을 친 삼국지의 여포처럼 걸음걸이까지 보무당당했다. 머나먼 세월의 사막을 건너오며 불에 타는 듯한 화열의 고통들을 필생의 의지와 강인한 생존 욕구로 하나 둘 치환해 가며 살아 갈 때 그 때 날갯죽지를 내 손에 잡힌 암탉의 애절한 눈동자는 늘 괴롭힌다. 몹시 애처롭고 슬픈 눈망울을 외면하거나 노적담불에 싸여 살면서도 궁핍자의 호소에 귀를 막을 때 양심의 고통은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2021.7.15

나의 창작시 2021.07.15

수국옆에서

수국 옆에서 보랏빛 종이 꽃 보다 더 복스럽게 수국(水菊) 한 무리 암팡지다. 쏟아지는 여름 햇살에도 오롯이 푸른 하늘만 바라본다. 내가 늘 흠모하던 빛깔로 비길 데 없는 고고한 자태는 성녀 클라라의 향기 가득한 깊은 수련으로 형성된 맵시여! 겹겹이 쌓인 그리움을 더 이상 감출 수 없어 풀어놓을 때 용광로에서 녹아내린 쇳물처럼 걷잡을 수 없이 가슴으로 번진다. 내 가슴속에 깊이 묻어 두었던 당신을 향한 기나긴 그리움도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던 심연에서 수국 꽃향기에 폭발한다. 2021.7.9

나의 창작시 2021.07.09

향몽(鄕夢)일기

향몽(鄕夢)일기 어젯밤에 내가 또 그곳에 와 있었다.낡은 신작로에는 차 바퀴문양 하나 없고바위틈 해당화가 그때처럼 초라했다. 어머니가 심은 강냉이 밭에는옥수수 개꼬리가 화분을 토하고꽃가루 뒤집어 쓴 벌들이 나를 반긴다.산과 산이 마주 일어 선 비탈 밭에는독일제 붉은 감자 꽃이 파도치고수수꽃 피려고 비를 기다렸지만냇가 모래밭에는 여전히 가뭄이 들었다.서낭당 신목(神木)은 속이 썩어문드러졌고털뿌리까지 쭈뼛거렸던 기억은꿈속에서도 왕거미처럼 따라붙었다.내가 딛고 올라선 인(人)바위는숲에 가리어 두 눈을 잃었고낡은 갓 바위 터에는 무서운 사람들이 왕래했다.아름다운 기억을 되찾기 위해그 집 앞을 온 종일 서성였지만얼굴과 이름을 잊어버려 쓸쓸히 돌아섰다.향몽 속 향가(鄕家)는 불속에 휩싸였고내 비밀을 아는 애강 나무..

나의 창작시 2021.07.06

고통의 계절

고통의 계절 오늘도 텔레비전 화면에는확진 자 칠백십일 명이라는 자막이 떴다.일 년 반째 쏟아지는 코로나는일억 팔천사백만 명을 독방에 가두고사백만 명 목숨을 앗아갔단다.지구촌 무죄한 생명들이꽃잎처럼 떨어지는 비보를 들을 때면아침 햇살 찬란히 빛나는 하늘을차마 눈을 뜨고 쳐다보기가 미안하다.붉은 접시꽃 작년처럼 피고 지고뻐꾹새 아무 일없이 저렇게 노래하는데직립보행자들만 찾아다니며멧갓에서 나무 쏙아 내듯 넘어트리는가.잔인한 독사보다 더 악랄한 코로나가콩쥐 계모처럼 등허리를 밟고 돌아 칠 때 고통의 계절 한 복판에 갇힌 사람들은지갑 잃어버린 눈빛으로 서 있을 뿐이다.2021.7.5

나의 창작시 2021.07.05

회상

회상 그때는 아버지 마음을 읽지 못했다. 가끔씩 먼 산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다가 봉지담배를 신문지에 말아 싯누런 연기를 하늘로 내 뿜으며 아버지는 슬픈 표정을 짓곤 하였다. 저녁노을이 황토벽에 잠시 앉아 쉴 때면 댓돌에 앉아 한숨을 쉬었고 떼 지어 날던 토종 새 떼들은 잠자리를 찾아 떠나 버렸고 빈 허공에는 아버지 눈빛만 출렁거렸다. 아버지보다 더 늙은 나는 빌딩 서창(西窓)에 걸린 노을빛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이제야 읽는다. 삶의 무게가 두 어깨를 짓누르지만 짊어진 짐을 내려놓을 수 없어서 웃음기 사라진 얼굴로 마음의 비명을 저녁노을에 섞어 서산 너머로 던졌던 것이다. 오늘처럼 짐이 무거운 날에는 입술을 깨물며 눈을 감아야 할 뿐이다. 2021.7.3

나의 창작시 2021.07.04

나의 노래

나의 노래 곡조 없는 노래를 매일 부르며 새벽 어두움을 음성으로 몰아냈다. 소년이 되기 이전부터 내 가슴에 지계 표 하나 심어놓고 지금껏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며 남의 영토를 침범하지 않았다. 복수초 노란 꽃망울이 언 땅을 헤집고 고개를 내 밀던 날 그 강한 의지에 말을 잃었고 노란 민들레꽃이 물감처럼 번져가던 날 나는 꽃밭에 주저앉아 가사 없는 노래를 가슴으로 불렀다. 내 마음에서 피어나야 할 꽃잎이 푸른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 때 내가 부른 노래는 햇살에 실려 하늘 끝까지 퍼지고 있었다. 소낙비 쏟아지던 언덕에서 우산을 쓰지 않은 채로 당신을 기다렸고 샛노란 은행잎이 눈물처럼 쏟아질 때 눈시울을 붉히며 길게 소리쳤다. 흰 눈이 폭포수처럼 떨어지던 날 나는 눈송이가 당신의 가슴 조각인걸 알았다. 지금껏..

나의 창작시 2021.07.01

어떤 의문

어떤 의문 사대육신 멀쩡한데 밥벌이를 못하는 성인(成人)이 있고 배울 만큼 배운 식자(識者)가 헛소리만 지껄이기도 한다. 열흘 피고 지는 들꽃도 꿀과 화분을 토하고 사라지고 한 해살이 가여운 식물들도 맑은 산소를 내뿜어 유익을 주건만 칠십 평생 살다간 사람 중에는 목석(木石)만도 못한 자 있으니 어찌할까. 귀는 있으나 듣지 못하고 눈을 멀쩡하게 떴으나 보지 못하며 고개를 쳐들고 살지만 생각이 없으니 그 사람을 사람이라 부를 수 있으랴 밟으면 죽는 개미 한 마리도 제 역할을 다하느라 빨빨대며 쏘다니는데 어떤 멀쩡한 허우대 그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지 항상 의문이 든다. 2021.6.29

나의 창작시 2021.06.29

역행 추론법

역행 추론법 지금 내가 디딘 어귀여 유원(悠遠)히 떠내려 온 세월이여 부딪치고 깨어지며 달려온 가슴이여 흘린 눈물로 쌓아올린 강물이여 꿈은 구름 위에 사다리를 걸쳐놓고 의지는 정해진 운명을 거스르며 달렸어도 바람은 내 방향을 번번이 비틀고 그럴 때마다 나는 아래로 미끄러졌다. 통발이 쳐져 있는 여울목을 가을 물고기처럼 힘없이 떠내려 오다 검은 소용돌이에 순식간에 빨려 들어간 애석하기 짝이 없는 주인공이여 역(逆)으로 살아 온 애석한 목숨 속죄자의 공로도 회복 못할 실낙원 스러지지 않는 갈대숲에 갇혀 긴 한숨만 토해내는 바보인생이여 2021.6.27

나의 창작시 2021.06.27

치자나무 꽃

치자나무 꽃 너는 처음부터 농염하지 않았고 현란한 색채를 빚어내지도 않았지만 내가 한눈에 반해 일손을 놓고 네 곁을 그림자처럼 서성였다. 살짝 웃는 보조개가 내 마음을 끌었고 새하얀 덧니가 수줍은 치자 꽃을 닮았다. 이제는 아득한 기억이지만 샛노란 달맞이꽃 수줍게 피던 밤에 냇가에 마주 앉아 밤별을 헤아리던 너는 내 가슴을 사정없이 흔들었고 가끔 운석이 앞산에 걸릴 때면 별 빛에 상기된 네 두 볼도 볼그레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여름밤은 으스스했지만 불빛 없이 바라보는 네 눈빛에는 고운 치자 꽃 그리움이 여러 개 고였었다. 가까이 하기엔 네가 두려웠고 돌아서기엔 못내 아쉬웠지만 나는 너를 내 가슴에만 담아놓고 그 후 네 곁을 멀리 떠나야 했다. 치자 꽃이 하얗게 피는 밤이면 아직도 내 마음은 그 냇가를..

나의 창작시 2021.06.24

도시에 내리는 비

도시에 내리는 비 공지(空地)서 자라는 푸른 생명체들은 온종일 매연을 삼키며 폐병을 앓고 어쩌다 도시 꽃송이를 찾아 온 바보 같은 벌들은 빈 날개 짓만 한다. 나는 플라타너스 늘어선 인도 위를 걸으며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흠뻑 맞았지만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쏟아지는 비는 내 세례식 때 머리에 붓던 관수(灌水)만큼이나 성스러워서다. 먼지 구덩이에서 나온 차(車)마다 일시에 자동세차기를 통과한 듯 말끔한 모습으로 내달리고 빗길을 걸어가는 젊은 사람은 엷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고 무릎 위를 다 드러낸 여학생들은 멘 가방이 젖어도 깔깔대며 걷는다. 아무도 비를 탓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우산이 없어도 뛰어가지 않는다. 적당히 내리는 비는 가슴을 적시며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던 사람..

나의 창작시 2021.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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