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향몽(鄕夢)일기

신사/박인걸 2021. 7. 6.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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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향몽(鄕夢)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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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젯밤에 내가 또 그곳에 와 있었다.
  • 낡은 신작로에는 차 바퀴문양 하나 없고
  • 바위틈 해당화가 그때처럼 초라했다.
  • 어머니가 심은 강냉이 밭에는
  • 옥수수 개꼬리가 화분을 토하고
  • 꽃가루 뒤집어 쓴 벌들이 나를 반긴다.
  • 산과 산이 마주 일어 선 비탈 밭에는
  • 독일제 붉은 감자 꽃이 파도치고
  • 수수꽃 피려고 비를 기다렸지만
  • 냇가 모래밭에는 여전히 가뭄이 들었다.
  • 서낭당 신목(神木)은 속이 썩어문드러졌고
  • 털뿌리까지 쭈뼛거렸던 기억은
  • 꿈속에서도 왕거미처럼 따라붙었다.
  • 내가 딛고 올라선 인(人)바위는
  • 숲에 가리어 두 눈을 잃었고
  • 낡은 갓 바위 터에는 무서운 사람들이 왕래했다.
  • 아름다운 기억을 되찾기 위해
  • 그 집 앞을 온 종일 서성였지만
  • 얼굴과 이름을 잊어버려 쓸쓸히 돌아섰다.
  • 향몽 속 향가(鄕家)는 불속에 휩싸였고
  • 내 비밀을 아는 애강 나무만 그늘을 내주었다.
  • 202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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