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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작시 1400

자주 감자

자주감자 그곳엔 이맘때면 매실도 앵두도 살구도 없고 자줏빛 감자 꽃만 파도만큼 출렁이고 붉은 찔레꽃 푸른 바람에 휘날렸다. 햇빛이 쏟아지는 마당에는 어머니 물레질소리 고달프고 무겁게 실은 소달구지는 푸석대는 신작로 길로 굴러갔다. 보릿고개길 멀고 또 멀어 지친 아낙네와 아이들은 스러지고 멀건 죽 한 그릇에 아버지 지게 짐은 천근 어깨를 짓눌렀다. 황사먼지 뿌옇게 마을을 떠돌고 굴뚝 연기도 흔들거렸다. 감자 꽃 지려면 아직도 먼데 배고픈 아이들은 깻묵 한 조각에 잠이 들었다. 자주 감자 꽃 출렁이는 둔덕에서 서러웠던 시절에 발을 담근다. 2021.4.27

나의 창작시 2021.05.27

애수(哀愁)

애수(哀愁) 바람이 불지 않아도 꽃은 지고 닭이 울지 않아도 새벽은 오네. 구름이 가려도 달은 가고 빛나던 별들도 스러지네. 구슬피 우는 새는 무슨 사연이 있어 해지는 저녁까지 그토록 우나. 길 잃고 운소(雲霄)에 높이 떴나. 짝 잃고 막막해 한숨짓나. 웃자란 풀은 낫에 잘리고 청청하던 나뭇잎 바람에 찢기네. 뽑힐 잡초 신세 가련하고 버림받은 애완견 가엽구나. 세월이 가니 나는 늙고 바스러진 얼굴에 수심만 고인다. 삶은 꿈같이 허무한 이야기 붉게 지는 노을이 서럽다. 2021.5.25

나의 창작시 2021.05.25

그 이름

그 이름 이름만 남은 사람을 골짜기 입구에서 부르노라. 오래전에 걸어 들어간 사람을 불러도 못 올 줄 알지만 이름만 불러도 그리워 이렇게 목 놓아 부르노라. 그 때 부르던 그 이름을 해당화 핀 바닷가에서 부르노라. 찰싹거리는 파도를 밟으며 함께 걷던 아름다운 추억들이 반짝이는 모래사장에 얼비칠 때 너를 못 잊어 부르노라. 석양을 지고 가던 너를 서러워 서러워서 부르노라. 산비둘기 슬프게 우짖던 날 바람결에 떠나간 너를 끝내 못 잊어 불러도 바람결에 흩어지지만 죽더라도 못 잊어 부르노라 2021.5.24

나의 창작시 2021.05.24

백일홍

백일홍 신경에 거슬려도 그렇게 발걸음을 돌리시면 내 마음에 깊은 상처가 되어 오래오래 앓을 거외다. 뜬소문 듣고 흔들렸나요. 못 생긴 외모에 실망했나요. 아무 변병도 듣지 않으려하니 구차한 언쟁은 피할 거외다. 한 번 피었다하면 백일을 시들지 않는 백일홍이여 실낱같은 내 희망을 네 꽃송이에 올려놓는다. 감언이설도 두렵고 싸늘한 눈빛도 이제는 역겹다. 갈 테면 얼씬도 말고 가라. 나에게는 백일홍만 있네라. 2021.5.23

나의 창작시 2021.05.23

코로나 19 마스크

코로나 19 마스크 가면도 쓰고 살다보니 이제는 걸치지 않으면 오히려 허전하다. 처음에는 숨이 막혀 한숨을 토하며 지루한 시간과 마주서야 했다. 생명을 천 조각에 담보 잡힌 채 불안한 순간들을 매일 넘나들고 죽음이 두려워 벌벌 떨면서 자존심은 바이러스에 허망하게 무너졌다. 언제 죽음과 마주설지 몰라 살얼음판위에 선 얼굴은 초조하고 비말 한 방울의 위력을 목격하면서 저항 없이 코와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공동묘지에만 있는 줄 알았던 죽음이 길거리를 활보하며 표호 할 때 멀게만 느껴진 죽음이 자신의 호주머니에 있는 걸 깨달았다. 시신이 장작더미에서 소각되고 화장터가 망자들로 붐비는 일상에서 시체 타는 냄새가 화면을 뚫고나와 방안을 가득 채울 것 같아 무섭다. 아 마스크 한 장! 사망의 골짜기에서 나를 구해준..

나의 창작시 2021.05.22

넝쿨 장미 꽃

넝쿨 장미 꽃 봄이 가면서 그 많은 꽃들을 데려가고 여름이 찾아오면서 붉은 빛 장미를 데리고 왔네. 넝쿨장미 담벼락에 기대어 새빨갛게 빛을 토할 때면 내 눈동자를 빨아들여 잠시 눈을 감아야 한다네. 영영들의 뜨거운 피가 엉겼을까. 젊음의 사랑이 불붙었을까. 가슴을 달구는 저 빛깔은 세상에 진실을 알리는 웅변이네. 누군가를 사랑하면 저토록 심장은 붉게 달아오르고 오월의 태양 보다 더 뜨겁게 시들해진 가슴에 불을 피우리라. 2021.5.21

나의 창작시 2021.05.21

저녁 새

저녁 새 허공을 건넌 해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땅거미 염색물처럼 번지는데 아직 쉴 곳을 못 찾은 참새 떼들이 마로니에 가지앉아 법석을 떤다. 매양(每樣) 이맘때면 어릴 적 잃어버린 고향이 눈에 밟히고 꼴 짐 지고 언덕을 오르시던 가여운 아버지 어깨가 맘에 걸렸다. 큰 암소가 서걱대며 꼴을 삼킬 때면 못마땅한 눈짓으로 나는 소를 흘겨보았다. 저녁연기는 목적 없이 피어오르고 동네 개들은 눈치도 없이 짖어 댈 때면 지친 새들은 처마 밑을 파고들었다. 그 시절 핍절하여 좁쌀 한 줌이 아쉬운 나는 배고픈 새들에게 먹이 한번 못줬다. 이제는 저녁 새들이 앞마당을 서성일 때면 맘에 걸린 나는 빵가루를 훌훌 던진다. 그래야 내 맘에 새들이 날아오르고 귓가에 새들의 노래가 맴돌기 때문이다. 오늘은 집비둘기들도 날아왔다. ..

나의 창작시 2021.05.20

오월의 숲

오월의 숲 나무 그림자들이 꼿꼿이 서는 한낮의 숲은 바람도 잠들고 비탈을 덮은 이파리들은 따가운 햇살을 빨대처럼 빨아들인다. 꽃 진 자리마다 특유의 혹을 달고 숨 쉴 때마다 넝쿨들 향기를 토한다. 우거진 숲을 헤집으며 허름한 길을 따라 걷다보면 숲이 내뱉는 기(氣)가 내 정수리를 뚫는다. 촘촘히 매달린 나무 잎들은 악착같은 몸짓으로 해충을 쫒지만 방어에 실패한 잎들은 맥없이 땅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그토록 푸르른 오월의 숲이 이토록 치열할 줄 미처 몰랐다. 구멍이 숭숭 뚫린 이파리에서 고달팠던 내 삶의 흔적들이 보인다. 희망을 끈을 놓치지 않으려 귀를 곤두세우고 아등바등 하던 그 시절의 추억이 아련하다. 하지만 오월의 숲은 하늘로 일어선다. 생명의 빛깔을 마구 쏟아내며 거침없이 시간을 뛰어넘는다. 그래..

나의 창작시 2021.05.19

봄의 힘

봄의 힘 즐비한 가로수들이 전기톱에 참수를 당한채로 검은 허공을 떠받치며 전봇대처럼 서 있다. 몹쓸 병에 걸렸거나 극악한 죄를 지은 일도 없는데 전깃줄 밑에 서 있다는 죄로 하나같이 목이 잘렸다. 햇볕은 나뭇잎 위에서 놀고 바람은 이팝 꽃잎을 쓰다듬을 때 서 있는 나무통은 모든 꿈을 접은 줄만 알았다. 봄비 온종일 쏟아지던 날 굵직한 새순들이 버섯처럼 돋아났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있는 힘을 다해 순을 밀어 올리는 장엄하고 힘찬 함성이 들을 귀 있는 자에게만 들린다. 잔인하게 잘려버린 빈 장대 마디에 펄럭이는 생명을 촘촘히 매달아 원형을 재건하는 봄의 힘에 감탄한다. 나도 나무처럼 참수를 당하고 싶다. 2021.5.17

나의 창작시 2021.05.17

비오던 날

비 오던 날 봄과 여름의 경계선을 밟으며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흠뻑 젖은 나무들은 싱그럽지만 빗물을 밟으며 걷는 나는 우울하다. 어디 아픈 것도 아니고 가진 것들을 잃어버린 것도 아닌데 비오는 날의 무거운 아픔은 빗물의 수위처럼 쌓여 오른다. 삶의 연식(年式)이 깊어갈수록 내게서 떠나버리는 것들이 점점 많아 실망과 두려움은 심장을 흔들고 비애(悲哀)의 멍울은 가슴에 맺힌다. 재화, 친구, 기회, 건강, 일이 떠나고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도 언젠가는 그렇게 떠나갈 것이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이면 우산에 내 몸을 깊이 파묻고 허무함을 되뇌며 골목길을 걷게 된다. 엊그제 백신 맞고 훌쩍 떠나버린 그 사람이 슬퍼서 비가내리는 걸까. 때로 얼룩진 바짓가랑이를 끌며 내 발걸음은 어디론가 가고 있다. 오늘..

나의 창작시 2021.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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