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나의 창작시 1392

가을에 부치는 편지

가을에 부치는 편지 여보게! 마을이 단풍속에 묻히니 내 마음도 그 속에 파묻히네. 물감으로 칠할 수 없는 색깔들이 가을나무들을 휘감을 때면 작년 가을에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이 두근거리는 심장을 굵게 두드리네. 아직 된 서리가 내리기 전 청초한 들국화 높은 하늘을 쓸어 담고 고즈넉한 석양 무렵 고개를 숙일 때면 늦가을 저녁 바람마저 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채 서성이고 붉은 노을은 꽃잎에 입을 맞춘다네. 진노랑 은행잎이 뚝뚝 떨어질 때 까마득히 잊었던 삶의 뒤안길을 돌아보며 곱게 늙어가리라 다짐했던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아직 덜 여문 내 마음을 꺼내어 붉게 물든 단풍나무에 걸어 놓는다네. 여보게! 이 가을마져 그 동안이 얼마남지 않아 쫓기는 듯함 아쉬움이 주위를 서성거리네. 어둑한 하늘을 나는 철새의..

나의 창작시 2021.10.29

불안

불안 짙게 떠돌던 구름들이 일제히 모여들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새파란 하늘이 점점 깊어지면 차가운 수은주가 도시 빌딩숲으로 내달린다. 11월 중순에나 볼 수 있는 광경에 내 심장 곁으로 불안의 그림자가 서린다. 1980년 10월 어느 날의 기억이 제 1한강교 인도교를 걷는 발자국을 따라온다. 그 해 가을은 아직도 불안한 기억이며 확인되지 않는 병을 앓으며 응급실에 갇힌 조마조마함보다 더 컸다. 나뭇잎이야 지면 또 피면되지만 그 때 나는 막힌 길에서 울어야 했다. 갑자기 추워지면 심장이 쪼그라들고 얇은 옷 솔기를 파고드는 바람은 내 삶의 의지마저 담배꽁초처럼 짓밟힌다. 이 후 나는 추위를 못 견딘다. 수은주가 영하를 알릴 때면 어떤 복잡한 생각은 가시넝쿨처럼 얽히고 바늘방석위에 앉은 좌불안석이다. 코로나..

나의 창작시 2021.10.16

가을 어느 날

가을 어느 날 흩어졌던 햇살들이 함께 모여 서산을 넘는 저녁노을 붉게 타고 발갛게 익어가는 나뭇잎위로 금빛 곱게 칠하니 황홀난측이다. 태양은 매일 마지막을 맞지만 매년 이맘때면 가을 색깔을 토하니 경이롭다. 한 여름 내내 햇살을 먹으며 검푸르던 숲은 노을 빛 가을 옷을 입고 번뇌의 얽매임에서 벗어나려한다. 풍우대작의 시달림에 혼곤하던 던져진 삶의 운명 앞에 괴로웠으리. 주어졌던 시간의 끈을 끊어내고 자리를 비울 시간을 확보하고 있다. 태양이 던져준 황금빛 옷으로 갈아입고 일제히 쏟아지던 나뭇잎을 나는 기억한다. 작년 가을 어느 은행나무아래서 삶의 표리와 본질을 꿰뚫었다. 나는 한 때 절망의 골짜기를 헤매며 한 줄기 빛을 찾아 몸부림쳤다. 지나 놓고 보면 그것도 과분한 은혜였지만 나도 어느덧 인생의 가을마..

나의 창작시 2021.10.10

가을 비 오던 날

가을비 오던 날 하염없이 내리는 가을비는 복잡한 세상을 차분하게 하고 무덥고 지루했던 여름의 열기를 단번에 삭히고 있다. 지나간 1년의 시간들은 입사경쟁만큼 치열했고 복잡했다. 코로나 19와 싸우느라 정신은 혼곤하고 몸은 곤비하다. 안연했던 때의 비오는 가을엔 그리운 사람 한 없이 그리워하며 빗방울만큼이나 많은 추억을 찻집 창가에 앉아 되새겼는데 이렇게 가을비가 곱게 내려도 좀처럼 감성이 휘둘리지 않는다. 파김치마냥 늘어진 몸을 사우나에 깊이 담그고 싶을 뿐이다. 2021.10.9

나의 창작시 2021.10.09

한 그루 나무

나무 한 그루 발과 다리가 있어야 걷는 것만은 아니다 세월 위를 걸어가는 나무는 수족이 없다 한 알의 씨앗으로 떨어진 자리가 운명의 발부리가 되어 죽는 날까지 그 자리에서 서 있지만 시간과 함께 부지런히 걸어간다. 여린 두 닢이 땅을 헤집고 나오던 날 아마도 거목을 꿈꾸었으리. 만고풍상을 겪느라 등은 굽고 껍질에는 소똥딱지가 앉았어도 우람하게 치솟고 뻗어나가 우러러봐야 하는 연륜의 흔적이 쌓였다.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향해 가는 존재는 아름답다. 쏟아지는 폭우와 깃든 노을과 가지를 밟으며 부르는 새의 노래와 하얗게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나무는 오직 한 자리에서 걸었다. 세월을 밟고 가는 존재들이 모두 성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떤 의식의 세계를 소유할 때만 성장한다. 가을의 길목에 한 그루..

나의 창작시 2021.10.08

10월 한 낮

10월 한 낮 리첸시아 고층아파트가 거만하게 서 있고 그 아래는 낮은 아파트 숲이 겸손하다. 외국산 마로니에는 여름인 듯 짙푸르고 플라타너스 가로수 그늘 아래 새파란 학생들이 버스를 기다린다. 가을빛은 나뭇잎 위에 앉았지만 벽돌에 부딪친 햇살의 파편은 따갑다. 도시 매미들 어디론가 떠난 마을 공원에는 적막이 흐른다. 늦 배롱나무 그 곱던 꽃잎도 아름다웠던 추억만 남긴 채 초라하고 긴팔 소매 옷을 입은 행인들에게서 원숙한 가을 색깔이 풍긴다. 노란 색 유치원차는 계절이 없고 빨간 우체통 역시 한 자리를 지킬 뿐 씨방까지 비워버린 하찮은 잡초들도 멀리 사라질 시간을 읽고 있다. 책가방을 맨 소녀의 발걸음을 가을 정취가 따라가고 있다. 2021.10.5

나의 창작시 2021.10.04

지나간 날들의 기억

지나간 날들의 기억 ‘나는 자연인이다.’를 시청하는 이유는 결코 자연을 동경해서가 아니다. 자연으로 돌아가서 살고 싶어서도 아니다. 어릴 적 자연을 밟으며 살아온 잊혀 지지 않는 기억들 때문이다. 산 속에 둘린 작은 마을에는 절망이 송곳처럼 곤두섰고 밭고랑에 출렁이는 자주 감자 꽃에는 애처로운 아이들의 아픔이 고여 있었다. 바람에 파도치는 강냉이 밭에는 꿈을 잃은 소년들의 절규가 메아리쳤고 소고삐를 잡고 풀밭을 헤매던 소녀는 다음날도 학교를 가지 못했다. 온종일 호미질을 해도 가난의 굴레를 좀처럼 벗어날 수 없어 찢어진 베적삼에 속살을 드러내야 했던 어머니의 삶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찬 서리 내린 오솔길을 무거운 나뭇짐을 지고 비틀거리던 비쩍 마른 아버지 숨소리가 아직도 내 가슴 한 편을 도려낸다. ..

나의 창작시 2021.09.28

가을 애수(哀愁)

가을 애수(哀愁) 치열했던 시간들은 갔다. 시련의 아픔들도 세월에 묻혔다. 태양이 발광(發狂)하던 한복판에서 비지땀을 쏟던 시절도 갔다. 이제 가련한 코스모스와 아직은 인연을 끊지 못한 백일홍만이 가을바람에 흔들릴 뿐 우거진 푸른 숲은 이제 힘을 잃었다. 시간의 흐름을 끊어내지 못한 생명체들은 하나같이 잔뜩 겁을 먹고 스스로 죽는 연습을 하며 계절의 운명을 말없이 받아드린다. 자신과 닮은 염색체의 정보를 형형(形形)의 기밀 용기에 담아둔 채 싸늘한 기운에 아무 저항 없이 멀리 떠날 채비를 차린다. 마지막 노래가 황금 음률을 타고 바람결에 실려 출렁 인다. 그럴수록 가슴에 스며드는 쓸쓸함이 저녁노을에 길게 걸려있다. 2021.9.25

나의 창작시 2021.09.25

시간의 성화(聖化)

시간의 성화(聖化) 까마득한 시간의 기억들이 아직은 공백 건망증에 갇히지는 않았다. 산도토리들이 우박처럼 쏟아지던 질맷재 길을 걸어 넘을 때 무릎연골이 여물지 않아 보폭이 좁아도 늙은 자작나무 굽어보는 정상을 향해 작은 아이는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그 후 보폭이 길어진 나는 아주 오랜 세월의 풍상을 밟으며 황사바람 부는 세상을 쫓아다니는 동안 반반하던 이마에 주름은 깊고 청아하던 발음에 바람이 새는 소리가 난다. 두 손에 움켜쥐었던 시간들이 지금은 내 영역을 벗어나 따라잡을 수 없다. 꽃잎에서 풀잎으로 그리고 단풍잎으로 잔나비처럼 뛰어다니는 시간은 알맹이는 몽땅 쓸어가고 온갖 죽정이 들만 내 발 앞에 던졌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삶의 껍데기들만 차곡차곡 시간의 무대에 쌓였다. 시간을 성화시키지 못한..

나의 창작시 2021.09.23

또 한 번의 가을

또 한 번의 가을 한가위 들녘에는 못다 핀 꽃들이 일제히 일어선다. 쑥부쟁이 용담초 산국 꽃 향유 투구꽃 찬바람 저 멀리서 걸어오고 있음을 예리한 촉으로 알아차려서다. 그래선지 길가에 늘어선 코스모스는 가을 하늘아래 유난히 애잔하다. 이제 곧 나뭇잎마저 붉은 꽃이 되면 지나치게 익어가는 나는 작년 보다 더 여윈 뺨에 서럽고 시월 찬 서리 무참히 짓밟을 때면 그 곱던 흰 국화마저 스러지면 어쩌나 아! 이렇게 또 한 번의 가을이 시간의 징검다리를 건너뛰면 늦게 핀 꽃들마저 어디론가 사라지고 아지랑이 붉은 꽃 피는 봄날을 맞이하리라는 나의 꿈은 바람에 가물거리는 등잔불이 되겠지. 떨리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저녁노을이 오늘은 더더욱 서글프다. 2021.9.19

나의 창작시 2021.09.19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