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한 그루 나무

신사/박인걸 2021. 10. 8. 08:46

나무 한 그루

 

발과 다리가 있어야 걷는 것만은 아니다

세월 위를 걸어가는 나무는 수족이 없다

한 알의 씨앗으로 떨어진 자리가

운명의 발부리가 되어

죽는 날까지 그 자리에서 서 있지만

시간과 함께 부지런히 걸어간다.

여린 두 닢이 땅을 헤집고 나오던 날

아마도 거목을 꿈꾸었으리.

만고풍상을 겪느라 등은 굽고

껍질에는 소똥딱지가 앉았어도

우람하게 치솟고 뻗어나가

우러러봐야 하는 연륜의 흔적이 쌓였다.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향해 가는 존재는 아름답다.

쏟아지는 폭우와 깃든 노을과

가지를 밟으며 부르는 새의 노래와

하얗게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나무는 오직 한 자리에서 걸었다.

세월을 밟고 가는 존재들이

모두 성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떤 의식의 세계를 소유할 때만 성장한다.

가을의 길목에 한 그루 거목

흰 구름이 그 위에 앉아 놀고 있다.

202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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