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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작시 1390

의식(意識)의 도주

의식(意識)의 도주 방향을 잃은 바람이 아무 데나 부딪치고 길가 수양버들이 말 갈퀴처럼 나부낀다. 겨울 노을은 보랏빛으로 스러지고 맨발의 까치들 눈빛이 슬프다. 끝까지 버티던 잡초들은 맥없이 쓰러지고 강제로 탈의당한 나무들은 애처롭다. 바람은 귓불을 숫돌에 문지르고 수운주는 가슴을 얼음조각으로 채운다. 오늘의 일은 데자뷔가 아니다. 의식(意識)에 기대어 대상을 추상하는 마음이 두려웠던 날을 여지없이 불러와서 아무도 없는 메마른 들판에 내동댕이친다. 이런 날은 그곳으로 도망치고 싶다. 징검다리 가지런히 놓인 냇가에 마른 갈대들이 물이랑처럼 너울거리고 아직 어둠이 내리지 않은 하늘에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눈꽃 송이를 퍼부을 때면 우윳빛 얼굴의 앞집 소녀가 하얀 이빨을 반짝이며 눈웃음 짓던 정겨운 마을이 마냥..

나의 창작시 2021.12.07

불측지연(不測之淵)

불측지연(不測之淵)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문자를 보내도 회신이 없다. 그는 나를 불측지연으로 몰아넣고 가시방석위에 앉힌다. 나의 짐작은 어렴풋하지 않아 기미와 낌새는 귀띔이 없어도 느낌으로 안다. 얼마전 그의 눈동자에서 틈새가 깊어진 마음을 읽었고 고백을 늦출 뿐 그의 마음은 내게서 떠났다. 내 마음속에는 찬 바람이 불고 검은 구름은 발등까지 덮는다. 이런 경험은 도붓장수처럼 이골이 났기에 더 이상의 설득은 시간 낭비이다. 고지식한 나는 아직도 괴로운데 그도 나로인해 괴로울까. 그가 나의 애인이었다면 벌써 잊었을터이나 그럴 수 없는 사람이기에 괴롭다. 만남과 헤어짐은 종이 한 장 차이지만 헤어짐의 이유가 몹시 아프다. 2021.12.5

나의 창작시 2021.12.05

그해 겨울

그해 겨울 그 시절 아주 긴 겨울을 보냈다. 캄차카반도에서 쿠릴열도로 이어지는 한겨울의 혹한보다 더 차가운 기운이 무섭게 내 심장을 옥죄었다. 입성마저 변변찮아 구멍 난 점퍼에는 바람도 춥다고 숨어들었고 혀를 길게 내민 신발은 발걸음을 집어삼켰다. 헤르바이트학파의 단계이론이 비록 추상개념이라 하더라도 그곳에 견주어 유사점과 차이점의 곡선이 너무 가파른 상황을 나는 수용하기 힘들었다. 빈손으로 출발한 트랙경기에서 아무리 내달린다 해도 가로막는 바람에 주저앉곤 했다. 종로 뒷골목 가득한 음식 냄새는 주린 배를 자극하며 입에 침이 괴어도 나에게는 여전히 그림의 떡이었다. 지팡이 없이 일어서는 일은 확률 미분방정식보다 더욱 어려워서 남대천으로 회귀하던 연어를 떠올렸었다. 도시 밤거리에 경쟁하는 헤드라이트 불빛처..

나의 창작시 2021.12.03

그곳

그곳 아무리 생각해도 그곳은 낙원이었다. 내 첫울음이 하늘로 울려 퍼지던 날 까마귀들이 하늘 높이 날며 우짖었고 함박눈은 까칠봉을 하얗게 덮으며 다가와 숲속 마을을 신천신지로 만들었다. 연골이 여물지 않았던 나는 진달래꽃 피던 날에 아름다운 세상을 보았고 냇가에 앉아 버들피리 맘껏 불 때면 피어오르는 아지랑이가 나를 잔디밭에 재웠다.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 날이면 그리움을 좇아 뒷산 언덕에 올라 꿈을 노래했다. 찔레꽃이 필 무렵이면 가녀린 소녀의 얼굴에 버짐이 피어나고 핏기없는 소년은 찔레 꺾어 배를 채웠지만 맑은 눈의 아이들은 흐느끼지 않았다. 그곳에는 총검을 든 군홧발이 없었고 술을 팔며 이상한 웃음을 짓는 계집이 없었다. 도시에는 호외(號外) 신문이 뿌려지고 파란 학생들이 붉은 피를 흘렸다는 소문이 ..

나의 창작시 2021.12.02

강물

강물 빛바랜 단풍잎이 아무 목적도 없이 강물에 떠내려간다. 수원과 목적지는 거기서 저긴 줄 알지만 강물도 강물에 실려 떠내려간다. 내 안에도 한 개의 큰 강이 흐르고 나는 그 강에 실려 떠내려간다.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는 시계바늘처럼 흘러간다. 처음 나는 작은 냇물을 따라가며 버들잎과 종이배를 띄웠고 장마비가 쏟아지던 그 어느 날 나룻배에 몸을 싣고 여기까지 왔다. 밤에는 별을 노래하였고 낮에는 구름과 태양을 찬미하였다. 무수한 두려움들이 머리위로 지나갔고 절벽을 뛰어내릴 때는 눈을 감았다. 도시 불빛이 찬란히 빛나는 언덕에서 밤새들의 노래를 가슴으로 들었다. 나는 한 번도 강물을 거스르지 않았고 내 몸을 강물에 맡겼다. 낯선 이 땅이 어디쯤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강물에 실려 떠내려갈 뿐이다. 20..

나의 창작시 2021.11.30

동목(冬木)

동목(冬木) 나무가 겨울에는 죽은 줄 알았다. 상고대가 옥죄어도 몸부림이 없고 메마른 바람이 할퀴어도 숨이 멈춘 나무는 울지 않는다. 모든 희망은 새들이 먹어버렸고 지난날들의 행복은 가랑잎에 묻혔다. 발가벗긴채로 마른 북어처럼 가파른 비탈에서 풍장(風葬)이 된다. 하지만 나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일제히 수도(修道) 중인 걸 알았다. 동한(冬寒)에 알몸을 드러내고 심신을 단련하여 환골탈태에 일념 한다. 극한(劇寒)의 경지에서 생존할 때 새로운 세상의 주인공이 된다. 허공에 내걸린 가지 끝에는 숨겨놓은 눈마다 촉을 곤두세우고 결전을 앞둔 병사들처럼 날카로운 칼을 갈고 있다. 돌아보면 나에게도 혹한의 계절이 있었기에 혹독한 단련에 내공이 쌓여 웬만한 시련에는 흔들리지 않는다. 내 안에도 동목(冬木) 한 그루서..

나의 창작시 2021.11.29

가정법(假定法)

가정법(假定法) 거리에는 빈차들만 달리고 우중충한 가로등도 졸고 서 있다. 아직도 나는 너를 기다리고 내신발자국이 보도블록을 뚫는다. 긴 세월 실망이 깊어지면 내 심장에 아픈 피가 고여 들고 혈관으로 흘러가는 한숨이 여울 물소리처럼 메아리친다. 소식조차 없는 너에 대한 미련에 나는 바람처럼 떠나버리고 싶었지만 모질지 못한 성격 탓에 허황한 꿈속에서 헤매는지 모른다. 설령 네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말뚝에 내 허리를 묶고 결전의 날 배수진을 친 병사처럼 별을 헤아리며 서 있겠다. 내가 한 말들이 가정법이라 하더라도 떠났던 철새들이 되돌아오듯 나는 네가 돌아온다고 믿는다. 그러한 까닭에 오늘도 이렇게 서 있다. 2021.11.28

나의 창작시 2021.11.28

노목고엽(老木枯葉)

노목고엽(老木枯葉) 세상의 모든 쓸쓸한 것들이 일제히 쏟아져 찬 바닥에 수북이 쌓였다. 따뜻했던 것들이 식어지면 황량하고 적적하고 스산하다. 붙잡고 살던 것들을 놓쳐버린 한 가닥 희망마저 끊어진 줄처럼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버린 모습으로 너의 앞에 서는 마음은 고통이다. 나름, 나무 끝에 앉은 새처럼 세상을 평정한 듯 우쭐대며 너를 딛고 내가 펄럭였음을 망각한 채 어느 날 추락할 줄 모르고 살아왔다. 내가 웃을 때 너는 울었고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너는 짙은 그림자 드리운 뒷 골목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줄 곳 걸었다. 푸르고 푸르렀던 젊은 날의 기상도 그날이 오면 일제히 허물어지고 아무렇게 뒹구는 처량함을 잊었었다. 나 비록 초라한 모습이지만 이제라도 따스한 네 곁에 눕고싶다. 2021.11.27

나의 창작시 2021.11.27

가을의 기도

가을의 기도 시간속을 걸어 참 멀리왔습니다. 내 인생의 알파가 있었듯이 오메가도 분명히 있습니다. 내 걸음이 어디쯤 왔는지는 나는 모르지만 그날이 가까웠다고 생각하면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됩니다. 사대육신이 자주 아픈건 그날의 징후들이며 나는 어느 느릅나무 아래 누울 것입니다. 이제 후회는 전혀 없습니다. 새들의 노래를 마음껏 들었고 하루해를 짧게 살았습니다. 선악과와 생명 나무 숲길을 걸으면서 금단의 열매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오늘처럼 낙엽이 뒹굴고 바람이 길을 잃은 날이면 원인 모를 두려움이 정수리에서 맴돌고 내 가슴 한 공간에는 등불이 꺼지는 느낌입니다. 아직은 내가 버리지 못한 욕망과 제욕설에 집착한 나머지 낙타도 통과한다는 바늘귀를 극복하지못할까 더욱 두렵습니다. 잔추(殘秋)와 초동(初冬)의 ..

나의 창작시 2021.11.26

동백(冬柏)꽃

동백(冬柏)꽃 해안 촌락 바람 부는 언덕에 동백 군락 한없이 푸르다. 황색 꽃밥 한 잎 물은 붉은 꽃잎에 나는 차마 할 말을 잊는다. 단풍은 지는데 동백꽃 피고 바닷바람 차가워도 활짝 웃는다. 국화꽃 매일 허물어지는데 어쩌자고 선혈처럼 번저가는가 삼동(三冬)은 이제부터인데 긴긴 겨울을 어찌나려는가. 드높은 파도 사나운 물보라 여린 저 꽃잎 어찌하려나. 꽃송이마다 천 개의 그리움을 안고 서로 부딪치면서도 사랑을 외친다. 내 가슴에도 동백꽃 붉게 피어나니 그리움 안고 찬 바람 견디련다. 2021.11.25

나의 창작시 2021.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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