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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작시 1392

계절의 윤회(輪回)

계절의 윤회(輪回) 꽃이 피고 꽃이 지고 잎이 피고 잎이 낙엽으로 지고 해마다 윤전(輪轉) 되는 계절에는 희원(希願)과 허무(虛無)도 반복된다. 꽃밭을 뛰놀며 풀밭을 헤집던 연골이 무르익던 시절에는 계절의 되풀이와 생(生)의 관조에 둔했다. 혈기방장하던 내 젊음이 일흥과 도취에 동분서주할 때 이학(理學)의 원리와 법칙에 무관했다. 백발설염(白髮雪髥)의 희수(喜壽)에 이르니 비로소 계절의 윤회(輪回)를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독파하며 텅 빈 공중에 휘날리는 추풍낙엽에서 흥망의 덧없음을 알아차린다. 하지만 계절변동조절이 이뤄지면 동한(冬寒)의 계곡 끝에 춘절이 있다. 저 쏟아지는 낙엽 더미에 묻힌 새파란 맹아(萌芽)들의 촉수(觸手)가 대지(大地)를 찢고 개벽(開闢)하리라. 지금도 수레바퀴는 돌고 있다. 나 또한..

나의 창작시 2021.11.13

낙엽을 보며

낙엽을 보며 비바람이 휩쓸고 간 나무마다 달라붙었던 잎들을 몽땅 털어버렸다. 가지들은 비록 앙상해도 나무는 승리한 장수처럼 우람하다. 길거리에 흐트러진 나뭇잎들과 바람에 뒹구는 빛바랜 조각들은 녹색식물의 물질대사와 동화작용의 그 치열했던 싸움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던가. 의무로 징집된 병사들의 전쟁터에서 널브러진 시체들처럼 아무렇게나 버려진 낙엽에서 비애를 본다. 언제나 졸(卒)과 병(兵)은 버림받고 장(將)과 군(君)은 영웅이 된다. 헤밍웨이의 전쟁실화가 늦가을 길거리에서 재현된다. 한 시절의 새파란 꿈을 도둑맞은 낙엽지는 길거리는 마냥 어지럽다. 누가 낙엽을 아름답다 했던가 전사한 학도병처럼 가여울 뿐이다. 2021.11.11

나의 창작시 2021.11.11

저녁 江가에서

저녁 江가에서 박인걸 저녁노을은 긴 강에 그림을 그리고 강물은 보드라운 화지(畫紙)가 된다. 붉은 그리움이 물결 위에서 춤을 추다가 아무 말 없이 노을은 강에서 진다. 어두움은 미루나무 숲을 먼저 찾고 엷은 바람은 도시를 찾아 떠났다. 고즈넉한 풍경에 기댄 가슴위로 큰 위로가 살포시 내려앉는다. 뒤척이던 물결들도 양처럼순해지고 잎을 떨군 나무들은 아무 말이 없다. 산과 하늘에 선명한 선이 생기고 땅거미는 내 앞에서 세상을 몽땅 지웠다. 무정한 강물은 여전히 침묵하고 갈대들만 강가에서 작은 소리로 서걱댄다. 모든 시름을 강에 버린 나는 홀가분한 심정으로 강 언덕을 걷는다. 먼 하늘서 아롱대는 별빛을 따라 뒤는 잊고 새로운 꿈을 붙잡는다. 2021.11.10

나의 창작시 2021.11.10

추우(秋雨)의 배신

추우(秋雨)의 배신 가을비가 쏟아진다. 곰삭은 은행나무잎이 폭싹무너졌다. 속살을 드러낸 나뭇가지들은 떠도는 바람을 휘젓고 도망치던 바람들은 전선(電線)에 걸려 원귀(冤鬼)들의 비명을 지른다. 아스팔트위로 뒹굴던 나뭇잎들은 빗물에 휩쓸려 어디론가 사라지고 차바퀴에 깔린 나뭇잎들은 비명도 못 지르고 산화(酸化)한다.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가을을 이토록 음산(陰散)하게 짓밟아야 하는가. 일시에 허물어트리는 폭력 앞에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꾹 참는다. 무너지는 가을을 바라보며 그때 배신당한 감정이 치솟는다. 체념이 삶에 일상화가 되었다해도 오늘 같은 날은 견디기 힘들다. 아무래도 구안와사가 올 것만 같다. 2021.11.9

나의 창작시 2021.11.09

소멸에 대하여

소멸에 대하여 결국 그길로 가는구나 소립자들이 모여 형체를 이뤘던 존재들이 영화 화면처럼 사라지는구나 여름에 발롱발롱피어나던 꽃망울들과 제 나름대로 생긴 열매들도 시효유예 없이 유배가 집행되었구나. 내 눈동자를 충혈되게 하던 단풍들도 일제히 낮은 곳으로 모여들고 보이지 않는 강물에 휩쓸려 기억의 외곽으로 떠내려가는구나. 철 따라 감미롭게 들려주던 조성(鳥聲)들의 무수한 색깔들도 잊어버려 생각이 아득한 숲에는 쓸쓸함이 소낙비처럼 쏟아지는구나. 길거리를 활보하던 주인공들이 어느 날 종적을 감추었고 영상화면을 도배질 하던 주인공들도 써거스어릿광대처럼 사라졌구나. 초겨울비에 함빡 젖은 나뭇잎 뒹굴 듯 예외 없는 소멸이 슬프기만 하구나. 2021.11.8

나의 창작시 2021.11.08

자성(自省)

자성(自省) 내 가슴에 뚫린 한 길이 볼리비아의 융가스로드 같다며 자기 연민에 빠져온건 아닌지 어느 노숙자의 앞모습에서 깨닫는다. 창백하며 텁수룩한 얼굴과 깊게 드리워진 수심(愁心)에서 허공에 매달린 길을 걸으며 심하게 비틀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그는 눈앞을 지나가는 형형의 발자국소리가 들리지만 체념에 굳어버린 전쟁포로처럼 한 가닥 희망까지 동굴에 밀어 넣었다. 그 옆에는 남루한 동류들이 눈빛을 잃고 남극의 펭귄들처럼 온기를 나눈다. 햇살도 길을 잃은 지하도에 늦가을 바람이 살갗을 파고들 때 수치심마저 접어버린 삶에서 절망의 한숨 소리를 듣는다. 오히려 호강하며 살아온 내 얼굴에 뜨거운 숯불이 피어 오른다. 2021.11.5

나의 창작시 2021.11.06

가을로 가는 길

가을로 가는 길 그토록 푸르든 젊음은 떠났다. 싱그럽고 풋풋했던 시절도 빛이 바랬다. 꿈, 낭만, 패기, 열정도 뒤안길로 사라지고 찢어진 깃발처럼 빛바랜 잎들만 텅 빈 가지에 매달려 펄럭인다. 활화산처럼 타오르며 찬란한 색상을 자랑하던 단풍잎들이 살아온 삶의 이력서를 자랑했는데 찬 바람 몇 번 사정없이 훑고 간 뒤 감찰사의 눈에 난 벼슬아치들처럼 잎들이 졌다. 내가 평소에 꿈꿔온 마지막은 곱게 짠 비단에 한 마리 학(鶴)을 수놓아 붉은 노을빛에 깊이 담그는 일이었다. 지나온 길은 삭막한 황야(荒野)길이였으며 가도 가도 끝을 모를 안개길이었다. 때로는 길 잃은 한 마리 따오기가 되어 별빛마저 사라진 밤하늘을 쳐다보며 처량한 노랫조로 목이 메도록 울었었다. 그래도 가슴에는 희망의 불씨를 담아 놓고 갯벌에 정..

나의 창작시 2021.11.04

단풍을 보며

단풍을 보며 육교에서 마주 본 단풍잎은 쳐다볼 때와 다르게 눈부시다. 어디선가 쉬고 있는 바람 탓에 깨지지 않은 그릇처럼 오롯하다. 아스팔트 위에서 살아온 삶이 지치고 고달파 목이 멨어도 가볍게 비울수록 아름다워지는 불변의 진리를 잎들은 아나 보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짧은 한해살이의 가여운 삶이 꺼져가는 심지처럼 가물거려도 일제히 등을 밝히니 곱다. 곧 어디론가 사라질지라도 일어날 일에 대한 염려하나없이 지금을 가장 아름답게 꾸민 잎들의 고움에서 참 행복을 본다. 2021.11.2

나의 창작시 2021.11.02

낙엽

낙엽 바람이 부니 낙엽은 지고 떨어진 낙엽은 신세가 처량하다. 오동나무 큰 잎마저 힘없이 뒹굴 때 사나이 가슴은 텅 빈 큰 방이다. 애연하던 풀벌레들 어디론가 사라지고 철새마저 흐느끼며 멀리 떠나가고 산 그림자 길게 느러진 강가에 깊은 고독이 뿌옇게 드리운다. 단풍잎 황홀하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된서리에 폭삭 주저앉았더라면 그리운 이와 걷던 그 길에 은행잎 차곡차곡 쌓이지 않았더라면 허허한 이 마음 애달프지나 않으련만 지는 석양마저 붉은 울음을 토해내니 낙엽 지는 늦가을 길목에서 소리 내어 한없이 울고 싶구나. 2021.10.31

나의 창작시 2021.10.31

About loneliness

About loneliness 이제 꽃들은 사라졌습니다. 뒷산 나뭇잎의 절반이 비탈에 나뒹굴고 도시 정원의 고운 잎들도 수의로 갈아입었습니다. 사나운 바람이 휘저을 때면 암을 앓는 여인의 머리카락처럼 잎이 쏟아집니다. 도시 기러기들이 하늘높이 떠서 서글픈 음성을 허공에 뿌리며 북으로 갑니다. 앞마당에 서 있는 병든 마로니에 나무는 그 곱던 옷을 강제로 벗기우고 가자미 가시처럼 하늘에 내걸렸습니다. 내가 겪은 가을이 한두 번이랴마는 간담상조하던 벗이 떠난 마음보다 쓸쓸합니다. 늦가을 비라도 내린다면 내 마음은 낡은 담장처럼 무너질 것입니다. 저녁녘 고달픈 태양이 산 위로 스러지고 사납던 바람들은 도시빌딩 뒤로 숨었습니다. 일시적인 고요가 새벽 거리 느낌을 줄 때 쓸쓸함은 몇 배 더 밀물처럼 밀려옵니다. 해..

나의 창작시 2021.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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