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 46

이팝나무 아래서

이팝나무 아래서 쌀밥이 복스럽게 쌓인 듯가로수마다 눈처럼 핀 새하얀 숨결거룩한 속삭임이 가지마다 매달려바람조차 조심스레 지나간다. 저토록 곱게 핀 것은 꽃이 아닌잊힌 기도요 이름 모를 눈물이다.햇살이 그 위에 하얗게 앉아영혼 하나를 씻기듯 빛을 붓는다. 저토록 흰빛은 삶을 견뎌낸 표식이며슬픔조차 경건하게 하는 침묵이다.누군가의 임종의 말처럼 맑아세상이 들으려 하지 않는 진실같다. 이팝나무꽃은 계절의 장례식이며동시에 새 생명의 축복이다.피었다는 사라지는 그 찰나에서우리는 조금씩 사람이 된다.2025,4,30

나의 창작시 2025.04.30

먼나무

먼 나무 서귀포 바닷바람 맞으며먼 나무 먼 하늘 바라보며 서 있다.붉디붉은 열매 별처럼 가지마다 깃들고바다 향기 품은 초록 숨결 사이로기도처럼 햇살이 내려앉는다. 아주 먼 데서 온 사연이 하도 많아이리도 붉게 맺혔는가.낯선 발길도 고운 손길로먼 나무는 하나같이 품어 안는다. 늦가을 등에 업고 천천히 흔들리며지난여름의 노래를 기억하고먼 추억도 가까운 꿈도붉게 물든 가지에서 잠들었다. 아득한 길 끝에 닿은 먼 나무 아래누구나 마음 한 조각 내려놓고머나먼 길 떠났던 마음들도살포시 돌아와 쉬어간다.2024,11,25

나의 창작시 2025.04.29

박태기나무 꽃

박태기나무 꽃 봄바람이 아직 차갑게 흐를 때핏방울처럼 엉겨붙어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등 뒤에서 크게 소리 지른다. 한겨울을 꿰뚫은 긴 기다림부서진 뿌리 밑, 서럽게 모은 약속꺼지지 않는 불길처럼지독히 아름답게 타오른다. 낯설고 촌스런 이름이지만제 속살을 찢으며 피워올린 고백이흩어져도 지지 않는 향기를당신을 향해 쏟아붓고 있다. 사랑은 이토록 눈물겹게저마다의 가슴에 숨겨 놓은첫 사랑, 첫눈물, 첫서약이꽃잎마다 되살아나는 것이다.2025,4,28

나의 창작시 2025.04.28

우리에게 최고의 가치(마22:34-40)

우리에게 최고의 가치(마22:34-40) (서론)미국의 한 청년이 어머니의 생일을 맞아 특별한 선물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애완 동물가게에 가서 주인에게 물어보았습니다.“이 가게에서 제일 비싸고 좋은 것을 주십시요.”주인은“앵무새 한 마리를 보여드리죠. 좀 비싸긴 해도 이놈은 주기도문도 거뜬히 외웁니다. 기분 좋은 날은 시편 23편, 고린도전서 13장도 그저 술술외웁니다.” 청년은“그것 참 훌륭하군요. 값은 얼마나 비싸든 상관이 없어요. 우리 어머니께서 이 새가 말하는 성경 말씀을 듣고 위안받으면 그것으로 만족할 테니까요.” 이 청년은 새를 사서 곧 택배로 보냈습니다. 며칠 후 아들은 전화했습니다. “어머니, 제가 보낸 새 받으셨어요?” 어머니“그래 받았다.” 아들, “어때요. 선물 맘에 들어..

2025년 설교 2025.04.26

어떤 나무

어떤 나무 너는 왜 거기 서 있느냐고바람이 묻고 지나간다.그러나 나무는 말이 없다.오래 묵은 침묵이 뿌리이다. 흙속에 천천히 들여다본빛의 뿌리들이 나무를 들어 올린다.봄에는 꽃을 여름에는 그늘을가을에는 열매를 겨울에 잠을 건넨다. 흐르는 시간 속에 나무는 변한다.그러나 한 번도 떠난 적은 없다.껍질로 감춘 수천 개의 상처그 너머로 바람이 머물다 간다. 나무가 지키느라 잃어버린 날들을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다.그러나 나무는 괜찮다고 한다.살아온 세월이 강하게 만들었으니까.2025,4,26

나의 창작시 2025.04.26

나의 향수

나의 향수 진분홍 진달래가 일제히 피면생강나무 노란 꽃잎 향기 뿌리고돌담에 기대앉은 햇살 한가로이 놀 때물레방아는 온종일 시간을 돌렸다. 보리밭 출렁이던 푸른 파도에종달새 노랫소리 한 줌 뿌리고꽃따지 풀 논밭에 물결 칠 때면내 마음 깊은 곳에도 그리움이 일었다. 풀꽃처럼 피어나던 순한 웃음들달빛 아래 손잡고 소녀와 함께 걷던 길풀피리 불던 동무의 붉은 입김은시간을 뚫고 와 내 가슴을 적셨다. 지절대며 흐르던 맑은 냇물과쏟아지는 햇살에 노닐던 송사리 떼뒷동산에 앉아 바라보던 세상은꿈길에 걷던 무릉도원이었다. 나의 유년은 몽유도 가운데 길그리움은 지금도 그 안을 걷는다.나의 향수는 떠나 온 동네가 아니라영원히 떠날 수 없는 마음의 집이다.2025,4,25

나의 창작시 2025.04.25

붉게 핀 그 이름

붉게 핀 이름 도시공원에 붉게 핀 영산홍봄의 심장을 찌르는 듯한 불꽃아침 햇살도 네 앞에서 얼굴 붉히고바람조차 너를 안고 뜨거워한다. 사랑은 기다림이 아니고뜨겁게 불타올라야 한다면서잎보다 먼저 핀 뜨거운 감정이내 가슴에 불을 지피고 있다. 뜨거운 사랑은 한 철의 불꽃이고잊지 못함은 지는 꽃잎의 슬픔이다.서늘한 저녁엔 그 향기를 쫓아아직도 네 그림자를 밟는다. 아! 꽃잎 떨어져도 남는 그 이름그 애상조차 아름다운 건우리의 사랑이 진심이었다는 증거다.나는 다시 피어날 너를 기다린다.2025,4,24

나의 창작시 2025.04.24

라일락 꽃

라일락 꽃 저녁 빛이 숨을 고르는 사이보랏빛 라일락이 꿈을 피워 올린다.짙은 향기 허공을 떠돌며시계바늘을 잠시 멈추게 한다. 내 기억의 끝자락에서당신웃음은 다시 피어나고그것은 꽃보다 먼저 핀 마음의 빛으로내 맘을 열게 했던 당신의 주문이었다. 라일락 꽃은 말이 없지만그 고요 속에 수천 마디 언어가 숨어 있고사랑한다고, 그립다고, 아직 기다린다고내 마음의 창문을 두드린다. 이 계절이 가면 다시 잊힐 걸 알지만나는 또 라일락 아래 서 있다.잊지 못할 이름을 조용히 부르면서한 송이 꽃처럼 당신을 기다린다.2025,4,23

나의 창작시 2025.04.23

멈춘 강

멈춘 강 한 때는 쉬지 않고 흐르던 강이었다.시간과 노을이 함께 떠내려가고젊은 날의 고백도 함께 흘러가던 강이다.언제 부터인가 시간은 멈추고기억도 제자리에 서서강물은 돌처럼 굳어버렸다.바람은 물결을 놓치고물새는 하늘만 바라보았으며강둑에 붉은 꽃잎도 숨을 죽였다.누군가의 이별이었을까.아니면 잊혀진 약속 때문일까.강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기억을 되새기고 있다.멈춘 강에 꽃잎 떨어져 떠 있고잔잔한 수면은 지난겨울을 떠올리게 한다.나는 멈춘 그 강가에 앉아흐르지 않는 강물을 슬퍼하고 있다.지금은 멈췄지만 언젠가는 흐를 것이다.그때가 오면 나를 떠난 너도강물 따라 흘러온 봄처럼내 곁으로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2025,4,23

나의 창작시 2025.04.23

봄 비 그리고 그리움

봄비 그리고 그리움 봄비가 오늘처럼 내리는 날에는시간은 조용히 뒤로 걷는다.기억의 시골길은 다시 젖고그 길을 맨발로 걷는 네가 보인다.내가 살던 곳 앞집 분이는늘 내 앞에서 웃었고내 옆에서 뛰어다녔지 비가 내리는 날에는작은 손에 빗방울 모으던 모습이 오늘도 유리창에 흐른다.우린 세상의 큰일보다사금파리를 모아 소꿉장난을 쳤고등하교 이십 리 길을찢어진 우산 아래 마음을 나눴지세월의 강을 여러 번 건넌 지금너의 이름은 낡은 책갈피처럼손에 닿지 않는 페지에 있고지도에서도 사라져버렸다. 그런데 봄비는 잊지 못하고오늘 내 가슴 깊은 곳을 적신다.그리움은 말이 없고세월은 되돌릴 수 없지만오늘 내리는 빗방울을 바라보며너도 어딘가에서 창밖을 바라본다면우리가 흘려보낸 그 시간을조금만이라도 기억해주었으면 한다.2025,4,22

나의 창작시 2025.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