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소멸에 대하여

신사/박인걸 2021. 11. 8. 09:31

소멸에 대하여

 

결국 그길로 가는구나

소립자들이 모여 형체를 이뤘던 존재들이

영화 화면처럼 사라지는구나

여름에 발롱발롱피어나던 꽃망울들과

제 나름대로 생긴 열매들도

시효유예 없이 유배가 집행되었구나.

내 눈동자를 충혈되게 하던 단풍들도

일제히 낮은 곳으로 모여들고

보이지 않는 강물에 휩쓸려

기억의 외곽으로 떠내려가는구나.

철 따라 감미롭게 들려주던

조성(鳥聲)들의 무수한 색깔들도

잊어버려 생각이 아득한 숲에는

쓸쓸함이 소낙비처럼 쏟아지는구나.

길거리를 활보하던 주인공들이

어느 날 종적을 감추었고

영상화면을 도배질 하던 주인공들도

써거스어릿광대처럼 사라졌구나.

초겨울비에 함빡 젖은 나뭇잎 뒹굴 듯

예외 없는 소멸이 슬프기만 하구나.

202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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