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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작시 1390

오래 된 이야기

오래된 이야기 수평선 위에 가물거리는 고깃배처럼 오래된 기억이라서 아스라하지만 흐트러진 낟알처럼 주워 담으면 영롱한 진주 목걸이처럼 출렁인다. 가꾸지 않은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늘어선 강변 둑에는 세찬 바람이 휘몰아치는 겨울일지라도 내 발걸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얼어붙은 강물은 가끔씩 길게 울고 빛바랜 갈대는 물이랑처럼 넘실대도 눈동자가 살아있는 물새 나는 방향으로 정한 것이 없지만 늘 따라 걸었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눈송이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던 어느 날에는 내가 걸어온 발자국을 쓸어 덮어도 나는 하나도 서운하지 않았다. 그 많던 떼까치들도 깊은 숲으로 사라진 나 홀로 서 있는 거친 들판에는 차가운 고독이 상고대처럼 일어서도 우수의 강을 건너기만 하면 복수초 노란 꽃망울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도 그..

나의 창작시 2022.02.05

봄이여 오라.

봄이여 오라. 눈보라 휘몰아치는 산야에는 자유를 잃은 나무들이 두려워 떨고 그토록 역동적이던 생명체들은 빙저호안에 깊이 잠겨 있다. 흐드러지게 피던 고운 꽃송이들은 계절의 윤회에 소멸하였다 치더라도 늦가을 마지막 잎새까지 잔인하게 목을 친 칼바람의 폭력은 용서할 수 없다. 시답잖게 몇 차례 내려준 눈으로 돌아선 나를 돌이키려 하지 말라. 내 마음은 이미 스칸디나비아반도가 되었고 툰드라의 순록 떼가 더러 오갈 뿐이다. 봄이여 어서 오라. 나는 지긋지긋한 동한(冬寒)을 증오한다. 고로쇠나무에 단물이 오르고 복수초 노란 꽃송이가 얼음을 헤집으며 노랑나비가 서투른 날갯짓으로 아지랑이 사이를 쏘다니는 봄을 맞고 싶다. 종달새는 보리밭 고랑을 날고 버들강아지 목화송이처럼 피어나면 생명의 기운이 거친 대지 위에 약동..

나의 창작시 2022.02.04

겨울 산길

겨울 산길 가랑잎들이 길게 누워있고 바람이 불 때마다 꿈틀거린다. 겨울 햇살은 인색하여 응달쪽에는 오다가 가버렸다. 봄이면 일찍 피던 진달래 나무가 잔뜩 움츠린 채 떨고 있지만 가지 끝에 맺힌 꽃눈들은 혹한에도 당차고 야무지다 시간은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흐르고 그림자의 각도(角度)는 일정하다. 머리가 없는 나무들지만 이상하리만큼 계절을 잘 읽는다. 시련의 겨울은 당분간 지속하겠지만 봄이 올줄 산은 알고 있다. 스러지지만 않고 기다리다 보면 꽃피는 그날이 찾아 온단다. 새들은 어디론가 가버렸고 그 충만하던 향기는 사라졌지만 또다시 피울 꽃망울을 움켜잡은 생강나무 몇 그루 늠름하다. 2021.12.29

나의 창작시 2021.12.29

겨울 나목

겨울나목 길가에 일렬로 선 나목에서 삶의 고달픔을 읽는다 40년 만의 맹추위 앞에 존재의 의미까지 얼어붙었다. 언 가지끝에는 고독이 알알이 맺혔고 불어오는 바람에 꿈은 휘둘린다. 매연과 굉음을 견디면서 버티어 온 억척같은 의지도 참담한 추위앞에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린다. 거목의 꿈은 일치감치 접었다. 숲으로 돌아가는 소박함도 잊었다. 콘크리트위의 운명은 끈 끊어진 연이다. 처음부터 사나운 목숨이었다. 이렇게 혹한의 시련이 올 때면 극복해야 할 명분마저 잃고 존재하느니 차라리 스러지고 싶을 뿐이다. 초라하게 비치는 햇살은 역겹고 지줄대는 도시 새들의 노래도 귀찮다. 가로등이 켜지는 밤은 더욱 무섭다. 어쩌면 오늘 밤에 동사할 지도 모른다. 비쩍 마른 나목들이 애처롭다 2021.12.26

나의 창작시 2021.12.26

어떤 고독(孤獨)

어떤 고독(孤獨) 찬 바람 부는 동지섣달 앙상한 가지에 매달린 까치 집 하나 썰물 빠진 바닷가 낡은 배 한 척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배고파 지친 길잃은 고양이 망망대해에 떠있는 외로운 섬 하나 추운 밤 홀로 하늘을 지키는 반달 바람에 쓸려 다니는 찢어진 낙엽 힘겹게 손수레 끌고 가는 주름 깊은 노파 속이 썩어 시멘트로 싸맨 마을 어귀에 은행나무 한 그루 요양원에 갇혀 자식들 기다리다 먼 하늘만 쳐다보는 반 치매 걸린 노인 아내 잃고 헤매는 어떤 노신사 자신과 싸우며 달리던 어느 마라토너 내 눈에 비친 고독은 매우 서럽고 삶이란 우주를 떠도는 그 유성(流星)일까? 2021.12.25

나의 창작시 2021.12.25

그때 성탄절

그때 그 성탄절 삭풍(朔風)은 눈보라를 일으키며 함부로 마을을 휘젓고 언 강은 누가 그리운지 밤마다 길게 울었지만 시골교회 마당에는 아이들이 재잘댔다. 생소나무 몇 그루 참수하여 예배당 어귀에 세워놓고 엉성하게 엮은 색종이 사슬에 은빛 별들이 햇빛에 반짝였다. 목이 터지라 외치는 아이들 새벽 송은 불협화음에 입술이 얼어도 십리 길도 마다않던 않던 새벽 발걸음은 어떤 예배보다 더 거룩했다. 허름한 옷을 입은 맑은 눈의 아이들이 별을 따라간 동방박사들처럼 집집이 방문하며 부른 축복 송은 베들레헴에 내려왔던 천사들의 노래였다. 지금은 한낱 가슴에 메아리로 남아 성탄절이면 쓸쓸히 맴돌다 사라지지만 그 시절 부르던 아이들 노래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하늘나라 노래였다. 2021.12.24

나의 창작시 2021.12.24

2021 크리스마스

2021년 크리스마스 코로나는 점점 세력을 강화하고 픽픽 스러진 사람들은 은하수가 있는 길을 간다. 난리 소문보다 더 무서운 확진자뉴스는 연일 문자 메시지로 신경을 건드린다. 하늘은 눈 한 움큼도 인색하여 메마른 가지들은 오돌오돌 떨고 캘롤 한 곡 울려퍼지지 않는 거리에는 철 늦은 낙엽만 쓸쓸하게 뒹군다. 참으로 암담한 세상 별이 빛나지 않는 밤 하늘 가난한 이들의 한숨은 하늘을 찌른다. 기약없는 코로나와의 전쟁 싫어도 뒤집어써야 하는 마스크 겁먹은 표정으로 걸어가는 죄없는 눈동자들만 애처롭다. 하늘에는 호소 땅에는 눈물 밤보다 더 어두운 내일을 가로막는 좌절 체념과 실망이 일상이 된 거리에 성탄의 불빛은 파랗게 얼어붙었다. 절망의 땅에 찾아오셨던 아기 예수님 원죄(原罪)만큼 잔인한 코로나 19에서 우리..

나의 창작시 2021.12.23

어느 바닷가

어느 바닷가 아무도 없는 바닷가를 나 혼자 발자국을 남기며 걷고 싶다. 떠돌이 갈매기들은 하늘을 배회하고 바닷바람은 비릿한 냄새를 실어와도 파도가 하얗게 밀려드는 저녁녘 수평선 노을에 내 마음을 담그고 싶다. 바다 빛 어둠이 파도 위에 펼쳐지고 외딴 섬에는 등댓불이 깜빡이면 잦게 울던 고동 소리도 사라진 텅 빈 해변의 쓸쓸함에 묻혀보고 싶다. 복잡한 인간관계의 문명병을 앓으며 머리끝까지 차오른 스트레스를 출렁대는 바닷가에 홀로 서서 가슴을 훌렁 뒤집어 털어버리고 싶다. 내가 나를 옭아맨 올가미에 끌려 자유를 잃고 끝없이 헤매던 낡은 끈을 끊어 바다 한가운데 던져버리고 나는 한 마리 갈매기가 되고 싶다. 2021.12.13

나의 창작시 2021.12.13

연말의 기도

연말의 기도 나유타의 궤적은 불가사이지만 나의 시간은 내게 할당된 분복(分福)입니다. 입춘과 대한의 궤적을 따라 돌며 동지(冬至)를 밟고 처음 자리로 옮깁니다. 그러나 바이러스에 쫓기는 두려운 거리에서 일상의 반란을 꿈꿀 여유조차 없는 한해였습니다. 어쩌면 도살장으로 팔려간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목장에서 유유히 풀을 뜯는 한우나 발가벗긴 채 포장될 양계장의 닭들이 내일을 모르기에 더 행복할지도 모릅니다. 예측과 경험을 산출해내는 인간의 능력이 집단공포의 포로가 되는 것 같습니다. 백신을 사정없이 주사하고 촘촘히 엮은 마스크로 호흡기를 틀어 막아도 숨 막히는 불안과 근심은 먹이를 찾지 못한 겨울새보다 더합니다. 주여! 이곳에서 탈출하고 싶습니다. 앰뷸런스의 요란한 소리가 들리지 않고 확진자 통계가 송달되지..

나의 창작시 2021.12.11

눈에 대한 단상

눈에 대한 단상 잔뜩 흐린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 날이면 우울한 그때 기억이 소환(召喚)된다. 바람이 후퇴한 마을에는 이어서 화산처럼 흰 눈이 쏟아지고 아무런 대책 없이 서 있던 잡목(雜木)들은 체념한 채 순장(殉葬)된다. 가까스로 빠져나온 산새들은 집 없는 하늘을 배회하다. 슬픈 노래마저 잃어버린 채로 초가집 처마 밑에 몸을 숨겼다. 마을이 설국(雪國)이 되는 날이면 시마무라와 고마코의 슬픈 사랑의 노래는 눈꽃처럼 피었다지만 추위에 헐벗었던 우리의 그 시절은 한 문장으로 표현할 언어가 없다. 작은 꿈마저 앗아간 핍절한 삶은 눈에 묻힌 나무들처럼 고개를 숙이고 새봄이 오는 그날까지 움츠린 채로 체념해야 했다. 하얀 눈을 이고 서서 떨고 있는 나무처럼 짓눌려 주눅 들었던 우리는 오늘같은 날에는 가슴언저리가 ..

나의 창작시 2021.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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