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우(秋雨)의 배신
가을비가 쏟아진다.
곰삭은 은행나무잎이 폭싹무너졌다.
속살을 드러낸 나뭇가지들은
떠도는 바람을 휘젓고
도망치던 바람들은 전선(電線)에 걸려
원귀(冤鬼)들의 비명을 지른다.
아스팔트위로 뒹굴던 나뭇잎들은
빗물에 휩쓸려 어디론가 사라지고
차바퀴에 깔린 나뭇잎들은
비명도 못 지르고 산화(酸化)한다.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가을을
이토록 음산(陰散)하게 짓밟아야 하는가.
일시에 허물어트리는 폭력 앞에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꾹 참는다.
무너지는 가을을 바라보며
그때 배신당한 감정이 치솟는다.
체념이 삶에 일상화가 되었다해도
오늘 같은 날은 견디기 힘들다.
아무래도 구안와사가 올 것만 같다.
202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