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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작시 1375

회상(回想)

회상(回想) 새벽에 일어나 밖에 나서면 검은 하늘에 샛별이 반짝이고 강여울 물소리는 밤새 잠들지 않았다. 초가집 처마에 잠든 새들은 아직 먼동이 터오기를 기다리는데 집 잃은 산비둘기만 먼 산에서 울고 있었다. 산 아래 남포등 희미한 예배당에서 새벽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지는 종소리만 아직 꿈속에서 헤매는 농부들의 영혼을 낙원 입구를 배회하게 할 뿐이었다. 곧이어 짙은 어두움이 샛별과 함께 어디론가 떠나 버리면 자유로운 새들의 노랫소리가 진달래꽃 향기를 싣고 달려왔다. 나는 아직 사랑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나는 나를 한없이 사랑했다. 누구에겐가 내 마음을 편지에 담아 보낼 수취인은 아직 없었지만 그림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의 이야기를 내 마음의 서랍에 고이간직했다. 기나긴 세월의 징검다리를 건너뛰어 가끔 마음..

나의 창작시 2022.03.19

고질병(痼疾病)

고질병(痼疾病) 버들강아지 춤추고 개나리 줄을 서서 피어날 때면 하나가 아닌 그리움들이 가슴을 헤집고 돌아다닌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언덕에 앉으면 기억의 파편들은 폭탄 조각처럼 퉁겨지고 그리움이 깊게 흐르는 가슴을 묵직한 흔들바위처럼 흔든다. 그 그리움이 반드시 어떤 형식을 갖추고 다가오는 건 아니다. 살아오면서 엮어졌던 숱한 파일이 봄기운에 부팅되는 복잡한 양상이다. 사무치는 그리움을 가슴에 안고 높은 나뭇가지 위에 앉아 길게 우는 멧비둘기 중저음처럼 시들지 않은 가슴을 아무렇게나 휘젓는다. 내 삶의 깃털이 내려앉은 곳마다 깊이 묻어두었던 그리움을 일시에 불러오는 정체는 누구일까. 삭아버린 하얀 앙금 같았던 그리움은 해마다 봄날이면 도지는 고질병일거다. 약으로 낫지 않는 마음 병일거다. 2022.3.12

나의 창작시 2022.03.12

꽃망울

꽃망울 엄동(嚴冬)의 시간을 견디는 일은 제 살을 바늘로 찌르는 아픔이었지만 강가에 휘몰이 치던 북풍은 차가운 수은주를 데리고 떠났다. 털장갑 하나없이 떨어야 했던 시간들이 내 심장 근육에 평생토록 뭉쳐 있어서 내리쬐는 투명한 봄 햇살도 언 가슴을 녹여 내리지는 못한다. 연년이 춘삼월은 꽃망울을 피우고 멧비둘기 이른 아침 봄을 알려도 맨발로 겨울 벌판을 걸어온 경험들이 봄에 대한 경계심을 풀지 않는다. 내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선에는 황사 안개가 늦가을 아침처럼 쌓이고 이른 매화 꽃망울 희죽이 웃고 있어도 녹지 않은 가슴에는 감동이 없다. 꽃가지 마다 형형의 정체성을 따라 짙은 꽃향기를 분수처럼 내 뿜는다해도 실익(實益) 하나 없는 나에게는 홀연히 사라지는 유령에 불과하다. 한때 화려하던 꽃가지의 허무함에..

나의 창작시 2022.03.08

봄의 전령(傳令)

봄의 전령(傳令) 영하 십오 도의 수은주에서 가지를 붙잡고 살아남은 버들강아지가 봄 햇살에 일어서서 춤을 춘다. 노란 꽃망울을 가슴에 안고 얼음장 밑에서 잠자던 복수초도 고개를 내민다. 고엽(枯葉)에 붙어 겨울을 보낸 노랑나비는 봄 햇살을 타고 날갯짓하며 아무 언덕이라도 가볍게 날아오른다. 새봄을 맞는 온갖 뜰에는 끈질긴 생명이 살아 숨 쉬고 잔혹한 죽음을 딛고 일어선 목숨은 각양 꽃송이로 변신할 채비를 갖춘다. 봄은 아무 항변도 없이 지축을 울리는 아우성도 없이 조용히 너무도 조용하게 의병처럼 일어선다. 지난 늦가을 하나둘 꽃은 떠나고 붉게 폭발하던 단풍잎까지 낙하하던 날 내 가슴은 돌에 맞은 듯 아팠고 들길을 걷던 발걸음은 휘청거렸다. 내가 지독하게 싫어하는 겨울을 증오하며 도살장 앞에 선 염소처럼 ..

나의 창작시 2022.02.27

봄이 오는 소리

봄이 오는 소리 양지쪽 담장 아래 햇볕이 모여앉아 홍매화 나뭇가지를 주무르고 아파트 담벼락에 기댄 목련 나무는 긴 겨울 지친 몸을 추스른다. 뒤뜰 은행나무 가지에 까치 한 쌍이 매일 아침 집을 짓고 어치들 떼를 지어 도시 하늘을 날며 봄 노래를 창가에 뿌린다. 그 어느 해 보다 지독한 겨울이 신우대잎의 풀기를 죽일 때 봄을 기다렸던 나의 희망은 비에 젖은 흙담처럼 무너져내렸다. 아직 내 마음 응달에는 발목을 덮는 눈이 쌓여 있지만 스치며 지나가는 봄기운이 걸어 잠근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잔설 밑에서도 봄보리는 새잎을 치밀고 매화나무 꽃망울은 실눈을 뜰텐데 나도 닫힌 가슴을 활짝열고 새 봄을 맞으러 달려나가련다. 2022.2.26

나의 창작시 2022.02.26

오래 된 이야기

오래된 이야기 수평선 위에 가물거리는 고깃배처럼 오래된 기억이라서 아스라하지만 흐트러진 낟알처럼 주워 담으면 영롱한 진주 목걸이처럼 출렁인다. 가꾸지 않은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늘어선 강변 둑에는 세찬 바람이 휘몰아치는 겨울일지라도 내 발걸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얼어붙은 강물은 가끔씩 길게 울고 빛바랜 갈대는 물이랑처럼 넘실대도 눈동자가 살아있는 물새 나는 방향으로 정한 것이 없지만 늘 따라 걸었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눈송이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던 어느 날에는 내가 걸어온 발자국을 쓸어 덮어도 나는 하나도 서운하지 않았다. 그 많던 떼까치들도 깊은 숲으로 사라진 나 홀로 서 있는 거친 들판에는 차가운 고독이 상고대처럼 일어서도 우수의 강을 건너기만 하면 복수초 노란 꽃망울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도 그..

나의 창작시 2022.02.05

봄이여 오라.

봄이여 오라. 눈보라 휘몰아치는 산야에는 자유를 잃은 나무들이 두려워 떨고 그토록 역동적이던 생명체들은 빙저호안에 깊이 잠겨 있다. 흐드러지게 피던 고운 꽃송이들은 계절의 윤회에 소멸하였다 치더라도 늦가을 마지막 잎새까지 잔인하게 목을 친 칼바람의 폭력은 용서할 수 없다. 시답잖게 몇 차례 내려준 눈으로 돌아선 나를 돌이키려 하지 말라. 내 마음은 이미 스칸디나비아반도가 되었고 툰드라의 순록 떼가 더러 오갈 뿐이다. 봄이여 어서 오라. 나는 지긋지긋한 동한(冬寒)을 증오한다. 고로쇠나무에 단물이 오르고 복수초 노란 꽃송이가 얼음을 헤집으며 노랑나비가 서투른 날갯짓으로 아지랑이 사이를 쏘다니는 봄을 맞고 싶다. 종달새는 보리밭 고랑을 날고 버들강아지 목화송이처럼 피어나면 생명의 기운이 거친 대지 위에 약동..

나의 창작시 2022.02.04

겨울 산길

겨울 산길 가랑잎들이 길게 누워있고 바람이 불 때마다 꿈틀거린다. 겨울 햇살은 인색하여 응달쪽에는 오다가 가버렸다. 봄이면 일찍 피던 진달래 나무가 잔뜩 움츠린 채 떨고 있지만 가지 끝에 맺힌 꽃눈들은 혹한에도 당차고 야무지다 시간은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흐르고 그림자의 각도(角度)는 일정하다. 머리가 없는 나무들지만 이상하리만큼 계절을 잘 읽는다. 시련의 겨울은 당분간 지속하겠지만 봄이 올줄 산은 알고 있다. 스러지지만 않고 기다리다 보면 꽃피는 그날이 찾아 온단다. 새들은 어디론가 가버렸고 그 충만하던 향기는 사라졌지만 또다시 피울 꽃망울을 움켜잡은 생강나무 몇 그루 늠름하다. 2021.12.29

나의 창작시 2021.12.29

겨울 나목

겨울나목 길가에 일렬로 선 나목에서 삶의 고달픔을 읽는다 40년 만의 맹추위 앞에 존재의 의미까지 얼어붙었다. 언 가지끝에는 고독이 알알이 맺혔고 불어오는 바람에 꿈은 휘둘린다. 매연과 굉음을 견디면서 버티어 온 억척같은 의지도 참담한 추위앞에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린다. 거목의 꿈은 일치감치 접었다. 숲으로 돌아가는 소박함도 잊었다. 콘크리트위의 운명은 끈 끊어진 연이다. 처음부터 사나운 목숨이었다. 이렇게 혹한의 시련이 올 때면 극복해야 할 명분마저 잃고 존재하느니 차라리 스러지고 싶을 뿐이다. 초라하게 비치는 햇살은 역겹고 지줄대는 도시 새들의 노래도 귀찮다. 가로등이 켜지는 밤은 더욱 무섭다. 어쩌면 오늘 밤에 동사할 지도 모른다. 비쩍 마른 나목들이 애처롭다 2021.12.26

나의 창작시 2021.12.26

어떤 고독(孤獨)

어떤 고독(孤獨) 찬 바람 부는 동지섣달 앙상한 가지에 매달린 까치 집 하나 썰물 빠진 바닷가 낡은 배 한 척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배고파 지친 길잃은 고양이 망망대해에 떠있는 외로운 섬 하나 추운 밤 홀로 하늘을 지키는 반달 바람에 쓸려 다니는 찢어진 낙엽 힘겹게 손수레 끌고 가는 주름 깊은 노파 속이 썩어 시멘트로 싸맨 마을 어귀에 은행나무 한 그루 요양원에 갇혀 자식들 기다리다 먼 하늘만 쳐다보는 반 치매 걸린 노인 아내 잃고 헤매는 어떤 노신사 자신과 싸우며 달리던 어느 마라토너 내 눈에 비친 고독은 매우 서럽고 삶이란 우주를 떠도는 그 유성(流星)일까? 2021.12.25

나의 창작시 2021.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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