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그곳

신사/박인걸 2021. 12. 2. 20:24
  • 그곳
  •  
  • 아무리 생각해도 그곳은 낙원이었다.
  • 내 첫울음이 하늘로 울려 퍼지던 날
  • 까마귀들이 하늘 높이 날며 우짖었고
  • 함박눈은 까칠봉을 하얗게 덮으며 다가와
  • 숲속 마을을 신천신지로 만들었다.
  • 연골이 여물지 않았던 나는
  • 진달래꽃 피던 날에 아름다운 세상을 보았고
  • 냇가에 앉아 버들피리 맘껏 불 때면
  • 피어오르는 아지랑이가 나를 잔디밭에 재웠다.
  •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 날이면 그리움을 좇아
  • 뒷산 언덕에 올라 꿈을 노래했다.
  • 찔레꽃이 필 무렵이면
  • 가녀린 소녀의 얼굴에 버짐이 피어나고
  • 핏기없는 소년은 찔레 꺾어 배를 채웠지만
  • 맑은 눈의 아이들은 흐느끼지 않았다.
  • 그곳에는 총검을 든 군홧발이 없었고
  • 술을 팔며 이상한 웃음을 짓는 계집이 없었다.
  • 도시에는 호외(號外) 신문이 뿌려지고
  • 파란 학생들이 붉은 피를 흘렸다는 소문이 들렸지만
  • 영웅도 열사도 없는 그곳에는
  • 노란 달맞이꽃만 가을까지 만발했다.
  • 어느 날 홀연히 아버지는 내 손목을 잡아 끌었고
  • 영문을 모른체 나는 그곳을 떠났다.
  • 나의 필림은 붉은 단풍잎이 쏟아지던날 멈췄고
  • 가끔 꿈속에서 나는 숲길을 걷는다.
  • 그곳 그곳을 나는 늘 그리워한다.
  • 20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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