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의식(意識)의 도주

신사/박인걸 2021. 12. 7. 22:07
    • 의식(意識)의 도주

  • 방향을 잃은 바람이 아무 데나 부딪치고
  • 길가 수양버들이 말 갈퀴처럼 나부낀다.
  • 겨울 노을은 보랏빛으로 스러지고
  • 맨발의 까치들 눈빛이 슬프다.
  • 끝까지 버티던 잡초들은 맥없이 쓰러지고
  • 강제로 탈의당한 나무들은 애처롭다.
  • 바람은 귓불을 숫돌에 문지르고
  • 수운주는 가슴을 얼음조각으로 채운다.
  • 오늘의 일은 데자뷔가 아니다.
  • 의식(意識)에 기대어 대상을 추상하는 마음이
  • 두려웠던 날을 여지없이 불러와서
  • 아무도 없는 메마른 들판에 내동댕이친다.
  • 이런 날은 그곳으로 도망치고 싶다.
  • 징검다리 가지런히 놓인 냇가에
  • 마른 갈대들이 물이랑처럼 너울거리고
  • 아직 어둠이 내리지 않은 하늘에서
  •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눈꽃 송이를 퍼부을 때면
  • 우윳빛 얼굴의 앞집 소녀가
  • 하얀 이빨을 반짝이며 눈웃음 짓던
  • 정겨운 마을이 마냥 그립다.
  • 2021.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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