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을 이야기 까칠봉이 까맣게 일어섰고 깃대봉은 하늘과 맞닿았다. 점점이 흩어진 우람한 산맥이 푸른 파도처럼 흘러내리고 미인송에 둘러싸인 작은 마을에는 국경 없는 새들이 모여 노래 불렀다. 꽃비 내리던 봄날 향기에 취하고 여름 장맛비는 그리움만 키우고 가을 단풍잎 곱게 염색할 때면 어린 소년은 숲길을 걸으며 꿈을 주웠다. 흰 눈이 처마까지 쌓일 때면 고립된 마을에는 산 노루가 가족이 되고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마을은 사라지지 않는 신기루였다. 제니스 진공관 라디오 한 대에 마을 아낙네 늦은 밤까지 모여앉아 라디오 연속극에 빠져 울고 웃었고 황금심의 노랫가락에 혼이 빠졌다. 종교인보다 더 선한 이웃이 숟가락까지 챙겨주며 모여 살았고 양심법 하나만으로 충분한 그 마을은 나의 이상향이었다. 2023.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