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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작시 1375

상처(傷處)

상처(傷處) 매연이 출렁이는 길가에서도 검푸른 잎을 자랑하던 플라터나스 한 그루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새벽길을 걷다 보니 쓰러졌다. 한순간 무너져 내린 밑동은 세월이 갉아먹어 썩고 있었다. 잎은 무성하고 가지는 푸르렀는데 그것은 무너지지 않으려는 의지였을 뿐 아무도 모를 병을 홀로 앓고 있었다. 바람이 불던 밤에도 으젓했고 별이 스러지던 날에도 달빛에 빛났다. 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에는 우산이 없어 그늘에 피한 적이 있다. 어디 나무뿐이랴 화려한 옷차림에 온화한 미소지으며 아무런 근심 없어 보이는 사람도 마음에 깊은 상처 한두 개 끌어안고 겉으론 내색을 않을 뿐이다. 쏟아져 내리는 풋감처럼 바람에 힘없이 쓰러지는 갈대처럼 상처가 덧나는 날에는 스러질거다. 아무렇지도 않았던 저 나무가 쓰러진 건 역시 ..

나의 창작시 2022.09.15

모월(某月) 모일(某日)

모월(某月) 모일(某日) 하늘은 깊이 흐렸지만 비는 아직까지 구름에 갇혀있다. 바람은 나뭇잎 위에서 잠들고 봄 가뭄에 말라죽은 회향목 서럽다. 어디론가 가고있는 사람들의 행렬과 목적없이 배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어디쯤 왔는지 알지 못한다. 베롱나무 꽃이 마지막 잎을 떨어트리던 날 불자동차는 싸이렌을 울리며 달렸고 검은 연기가 기둥처럼 일어서서 무너지려는 구름을 떠받친다. 순간순간 일어나는 삶의 장면들이 어릴적 의미 없이 관람하던 활동사진처럼 펼쳐지고 이유도 없이 치미는 부아를 참으며 바람에 꺾인 오동나무 아래 나는 잠시 머문다. 못생긴 달팽이 한 마리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이사를 한다. 나의 생애에 스무 번 넘게 이삿짐을 싣고 부스러기를 흘리며 다닌 내가 가엽다. 아직은 코스모스가 곱게피어 위로가된다..

나의 창작시 2022.09.14

귀뚜라미 울음

귀뚜라미 울음 가을 새벽 귀뚜라미가 끈질기게 누군가를 부른다. 잊혀지지 않는 연인을 부르는지 집을 나간 자식을 부르는지 아니면 지치고 고달파 우는지 처량하다. 새벽하늘은 아직 어둠을 끌어안고 별들은 조용히 속삭이는데 귀뚜라미 무슨 사연 그리도 많은지 가을 나그네 가슴을 파고든다. 계절은 점점 추분으로 가고 몇 잎 남은 꽃잎도 색이 바랬는데 그리움에 대한 목마름으로 이른 새벽까지 울고만 있는가. 이제는 그만 울음을 그치라. 소원이 간절하면 하늘이 감심(感心)하고 애절한 눈물은 인심을 흔든다. 눈물을 닦아 내고 별을 쳐다보라. 며칠째 우는 네 목소리를 알아듣고 날이 새기 전에 그가 달려 오리라. 2022.9. 13.

나의 창작시 2022.09.13

나의 달

나의 달 100년 만에 슈퍼 문이 떴지만 힌남노가 뿌려놓은 구름에 가려 성에 낀 거울 속의 얼굴처럼 보인다 샘골에서 처음 만난 추석 달은 온종일 나를 따라 다녔고 셋 터 수양버들 가지에 걸렸던 달은 그리워했던 소녀의 얼굴이었다. 줄곧 산으로만 걸어야 했던 포사 고갯마루에서 길을 잃고 방황할 때 나는 오로지 하늘에 뜬 달에 희망을 걸었다. 까마득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보름달이 문득 앞서가는 방향을 따라 상도동 한 칸짜리 셋방에 누웠을 때 서글픈 얼굴로 창가에 달은 서 있었다. 노량진 셋방, 봉천동 셋방 대성약국 다락방에서 세를 살 때 초라한 나의 모습에도 달은 웃어주었다. 은하수 따라갔던 인천 남동구 구월동은 내 생애에 바빌론 유수였고 단 한 번도 보름달을 쳐다볼 수 없었다. 고레스의 칙령도 없이 일어서..

나의 창작시 2022.09.11

힌남노 태풍

힌남노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 아래로 지나갔다. 매미 태풍 때 새까만 예배당 종탑에 매달려 펄럭이는 철판을 맨손으로 붙잡고 날이 새도록 씨름하던 기억에 오금이 떨린다. 절박했던 그날 밤의 일은 펀치점프대에 밧줄 없이 뛰어내린 두려움이다. 짧은 생애에 만난 여러차례 광풍은 간을 콩알만하게 졸여놓고 방망이에 맞은 시퍼런 멍처럼 가슴의 구멍은 긴 세월에도 메워지지 않는다. 태풍은 지나갔어도 뒷바람은 남아 여전히 미친 여자처럼 쏘다니며 도시의 간판이나 전선을 시끄럽게 흔든다. 이런 날에는 하지마비 증후군처럼 불안하고 가슴의 상처는 잉크 빛처럼 부어오르며 심장은 가슴에서 북을 친다. 먹구름은 가슴 언저리를 맴돌고 신경은 마리카락 끝까지 뻗어 오른다. 나를 붙잡아 줄 사람은 없다. 다만 두 손을 성경위에 얹을 뿐이다..

나의 창작시 2022.09.10

추석이 귀찮아

추석이 귀찮아 아! 제발 명절이 오지 않으면 좋겠어. 돈 쓸일도 많은데 이번 추석에도 한 두푼 가지고 쇠겠어. 고향도 가야지, 제사상도 차려야지, 시골에 가면 빈손들고 가남, 나이먹으니까 모두 귀찮아 애들 집에 찾아 오는 것도 귀찮아 다 귀찮아, 시장 입구에서 두 사람이 지껄인다. 재래시장은 오랜만에 발 디딜 틈이 없고 가게마다 추석상품 차고 넘치며 떡집 앞에는 송편을 사느라 장사진이다. 부침개 집 앞에도 줄을 섰고 고깃집, 과일가게에 온종일 들끓는다. 아내 심부름으로 송편 한 봉지, 장기지 떡 두 판, 식혜 세 병, 손주가 좋아하는 한과 두 봉지 고창 고추장 하나와 사이다 한 병, 시커먼 비닐봉지에 담아 들고 집으로 오는데 두 사람은 여전히 추석을 불평한다. 특가전 선물 세트 즐비한 골목 며칠 전부터 ..

나의 창작시 2022.09.09

도시의 추석

도시의 추석 고층 아파트에 갇힌 나는 십오층 유리창에 걸린 달을 본다. 고향 떠난 사람 못 잊어 달은 도시 빌딩 숲을 찾아왔다. 송편, 풋콩, 햅쌀밥, 알밤, 디딜방아, 대청마루, 사립문, 가을들녘, 황금 물결, 코스모스, 신작로, 초가집, 논둑 길 보름달은 늘 웃으며 굽어봤는데 아스팔트에 포위된 마을은 형형의 세단이 줄을 잇고 풋풋했던 이웃 정이 떠난 동네에 낯선 이방인이 왕래하며 온종일 돌아가던 물레방아 터에는 아련한 추억의 조각만이 뒹굴어 둥근 보름달도 시골 하늘을 버리고 어릴 적 반겨주던 얼굴을 찾아 밤길을 물어물어 여기까지 왔다. 나 비록 도시인으로 살아도 흙냄새, 익은 볏단, 빨랫줄, 낡은 지게 마당 가 작두, 쇠스랑, 돌담, 동구 밖 오솔길 나 어찌 잊힐리야 달맞이꽃 노랗게 피어나던 내 고향..

나의 창작시 2022.09.08

지금의 생각

지금의 생각 내 알던 사람들은 어디서 살까. 허무하게 흘러간 세월이여 의미있게 그리고 의미없게 헤어진 까맣게 잊고 살았던 사람들이여 때론 그리워한 이들과 잊고 싶었던 인연들까지 문득문득 떠오르는 저녁별처럼 이름이 기억나는 얼굴과 얼굴은 떠오르나 이름은 잊힌 그 무수한 이야기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를 비추던 태양은 서편에 많이 기울고 저녁 그림자는 바람을 껴 안는데 곧이어 밤별은 촘촘히 울타리를 만들고 긴 은하수는 꼬리를 잘라 먹을텐데 어느 언덕에 홀로서서 시간이 데리고 간 이름을 꺼내본다. 내 의식의 갤러리에 박재된 이미지는 전혀 맞춰지지 않는 퍼즐처럼 전혀 유추할 수 없는 인상(印象)으로 허무하게 교체되었을지라도 아무데서라도 좋으니 한 번 보고싶다. 비록 우리가 실망(失望)할 지라도 2022, 9,7

나의 창작시 202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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