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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작시 1390

새벽길

새벽길 목련 가지는 목을 움츠리고 가지에 낡은 낙엽은 아직도 과거를 못버렸네. 차가운 새벽공기는 목덜미에 파고들고 밤새 걷던 반달이 겨우 아파트 지붕에 서있네. 텅 빈 새벽 버스는 같은 길을 달리고 횡단보도 신호등만 사람을 기다리네. 내 인생은 평생 새벽길을 걸어왔네. 곤히 잠든 세상을 홀로보며 걸었네. 남이 보지 못하는 세상을 보았고 남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으며 걸었네. 남이 생각하지 않는 생각에 잠겨 남이 가지 않는 길을 이렇게 걸었네. 봄은 멀리 있지 않은데 겨울을 밀어내지는 못하네. 내 인생도 겨울에 묻혀 몸부림칠 때 언제나 봄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네. 그래도 나는 불평하지 않는다네. 견디다 보면 인생의 봄도 찾아온다네. 그래서 나는 포기하지 않으며 여전히 새벽길을 걷는다네. 2023.2.14

나의 창작시 2023.02.14

몽중방황

몽중방황 어젯밤 꿈속에 사나운 비바람 마음에 내려앉는 무거운 먹구름 갈 길은 아직 멀기만 한데 초조한 발걸음 두려운 산길 여러 번 겪었던 이상한 데자뷔 자주 나타나는 반갑지 않은 얼굴 미결의 그리움 하나 없는데 어디선가 부르는 또렸한 음성 뒤돌아서기엔 너무 늦었고 어느 강변까지는 마음이 바쁘고 돌아 보아도 아무도 없는 나 혼자 걷는 위험한 꿈길 전화를 걸어도 잡히지 않는 신호 둘러 보아도 낯선 풍경 길잃어 헤매다 지친 나그네 여전히 쏟아지는 탁류의 빗길 2023.2.12

나의 창작시 2023.02.12

폭설(暴雪)

폭설(暴雪) 그 해 겨울 눈이 처마까지 내렸고 동네 사람은 동굴토끼가 되었다. 굴뚝 연기로 신호를 보내며 온종일 넉가래로 눈을 치워도 구름 속에 갇힌 태양은 도와주지 않았다. 처음 보는 세상은 두려웠고 인적 끈긴 마을에는 정적만 흘렀다. 믿음직한 아버지는 여물을 쑤고 부엌의 어머니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전화가 없던 그시절 동네 친구 소식이 궁금했지만 그림이 된 마을에서 나는 동화 속을 걷는다고 생각했다. 유난히 눈이 크던 암소와 나만 따라다니던 누렁이 근심 하나 없는 부뚜막 고양이를 오랜 세월 잊고 살아 미안하다. 그 시절 그토록 퍼붓던 눈이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한 번쯤 나는 폭설에 갇히고 싶다. 2023.2.10

나의 창작시 2023.02.10

봄을 기다리는 마음

봄을 기다리는 마음 목도리를 두껍게 둘렀어도 바람은 여전히 차갑고 입춘을 지나 우수가 눈앞인데 새벽 냉기는 매몰스럽다. 힐끗 쳐다본 목련 꽃망울은 아직도 깊은 잠에 빠졌고 황사 바람 자욱한 도시에는 무표정한 얼굴만 왕래한다. 회양목 여린 새움은 기지개를 켤까. 귀룽나무 새싹은 돋고 있을까. 산지 그늘의 복수초 꽃이 수줍게 얼음장을 치미는지. 날개짓 서툰 노랑나비와 겨울잠 덜 깬 다람쥐가 생강나무 사이를 비켜갈 때 겨울을 밀어낸 봄에 감탄했었다. 장딴지 근육이 연하던 소년이 연골이 낡아 재생주사를 맞아도 대동강 얼음이 녹아내리는 봄을 기다리는 마음 여전하다. 2023.2.9

나의 창작시 2023.02.09

저녁 그즈음

저녁 그즈음 도시의 노을이 아파트 담벼락을 기어올라 긴 여운을 남기며 하늘로 흩어진다. 도시 빌딩과 하늘 사이에 직각 모형은 점점 선명해지고 하나 둘 간판에 불이 들어 올때면 또 다른 세상이 열린다. 매일의 삶은 고달프지만 누구나 불평하지 않고 받아드린다. 해와 달이 갈길을 가듯이 존재하는 것들은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온종일 밟고 다닌 거리에는 무수한 사연이 쓰레기와 함께 뒹굴지만 어머니 치마폭 같은 어둠이 내려와 들춰내지 않고 쓸어 덮는다. 오늘도 지친 내 영혼은 비망록에 하루의 생각을 새겨넣지만 내게 할당 된 운명의 시간은 저녁노을과 함께 멀리 사라졌다. 노을이 질 그 즈음에는 어떤 상념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2023.2.7

나의 창작시 2023.02.08

입춘

입춘 절기의 순서가 있기 전에도 태초부터 봄은 일어섰다. 까치가 나뭇가지 옛둥지를 찾아오고 고로쇠나무는 물을 자아올렸다. 복수초는 아직 눈 속에서 잠들고 강남 간 제비가 봄을 잊고 있어도 밤의 길이는 한 뼘 짧아지고 수은주는 발뒷꿈치를 들고 일어선다. 바다는 눈치 빠르게 길을 열고 숭어는 민물을 찾아 길을 떠났다. 내린천 얼음이 풀리는 날에는 천지에 새 계절이 오리라. 목련은 아직 깊은 잠을 자느냐? 매화 향기는 어디에서 맴도느냐? 나는 마당으로 달려나가 모퉁이 흙을 호미로 뒤집으리라. 2023.2.5

나의 창작시 2023.02.05

아내(畵)

아내(畵) 클래식 레이디 액자 안에 사뿐사뿐 걸어 나올듯한 여인이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이슬처럼 빛난다. 자수정 빛 블라우스에 수공예 벨트로 느슨하게 두른 가는 허리 안아주고 싶은 가녀린 어깨 봄 향기 물씬 풍기는 미소에 반한다. 흑색 유멜라닌 흡족한 머리카락은 물결치듯 어깨 위로 흔들리고 양 겹 초승달 눈썹이 이슬 맺힌 눈동자 위를 감싼다. 흠도 티도 없는 백옥 빛 얼굴 위로 명주실처럼 윤기 자르르 흐르고 미소 머금은 앵두 닮은 입술에 사랑이 철철 흘러넘친다. 그대는 갓 피어난 호접란 꽃잎에 앉은 한 마리 코발트불르의 물포나비 둥지를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극락조 한 마리라오. 2023.2.3

나의 창작시 2023.02.03

슬픈 눈(雪)

슬픈 눈(雪) 일렬로 서서 도시 거리를 비추는 가로등에 함박눈이 벌떼처럼 덤벼들고 두꺼운 패딩 주머니에 손을 넣은 사람들이 종종걸음으로 멀리 사라진다. 노량진역 앞길에 늘어선 플라터나스가 오돌오돌 떨던 그해 겨울에는 함박눈이 내가 탄 시내버스를 따라왔고 봉천동 달동네 재래식 화장실에 줄을 서서 순번을 기다리던 그해 밤에는 싸락눈이 나의 발등을 시리게 했다. 나는 지금 보도블럭에 내린 눈을 밟으며 아름답지 않았던 옛 추억을 떠올린다. 문풍지 파르르떨던 겨울 밤에 홋이불을 뒤집어쓰고 벌벌떨던 어린시절이 차라리 아름답게 다가온다. 가난한 사람이 사는 동네에 내리는 눈은 전쟁터에 쏟아지는 연막 연기다. 가루눈이 언덕길을 지우던 밤에 연탄가스에 죽은 옆집 소녀 소식에 흐르는 눈물을 하염없이 닦아야 했다. 어느 해..

나의 창작시 2023.01.28

봄을 기다리며

봄을 기다리며 눈보라가 휘젓고 도망치는 숲에는 두 눈을 지그시 감은 나무들이 서로를 껴안은채 말이 없다. 별빛이 차가운 언덕에 쏟아지고 달빛이 간간히 찾아와 말을 건네지만 나무는 바람에 흔들릴 뿐이다. 가지 끝에 매단 암갈색 움을 하나라도 잃지 않으려 몸부림치며 언 땅을 힘껏 뻗딛고 서 있다. 흰 눈이 정강이까지 차갑게 조여와도 이를 악물고 봄을 기다린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수시로 겨울한파가 휘몰아치지만 숲의 나무보다 강한 의지로 얼마든지 고난을 이겨내곤한다. 영하의 차가운 공기가 푸른 생명을 모두 앗아간 겨울에도 봄을 확신하는 사람들은 발을 꼼작거리며 봄을 기다린다. 제아무리 혹독한 동한(冬寒)이라도 봄은 가슴속에서 꿈틀거린다. 2023.1.27

나의 창작시 2023.01.27

눈 꽃

눈꽃 어느 별이 부서진 조각들이 구름에 실려와 쏟아진다. 하늘에서 내려와서인지 지상의 어떤 꽃보다 아름답다. 소나무 가지에 꽃을 피우고 은행나무가지에도 하얀 꽃을 피운다. 쓸쓸한 까치둥지와 바람에 넘어진 갈대 숲에도 꽃을 피운다. 오로지 새하얀 꽃을 눈 닿는 곳마다 피워올린다. 지나간 시절 지천으로 피던 꽃이 가을바람에 스러진 후에 몹시 메말라 건조한 땅에 가슴이 먹먹하여 울고 싶더니 일시에 피어나는 포슬눈꽃에 내 마음도 눈송이와 함께 하늘을 난다. 마음이 어두운 모든 이들의 가슴까지 하얀 꽃밭으로 만들고 싶다. 2023.1.26

나의 창작시 2023.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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