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나의 창작시 1375

금왕지절(金旺之節)

금왕지절(金旺之節) 산골 마을에서 며칠 유숙한 뒤 어느새 도시를 찾아 왔다. 뒤늦게 핀 배롱나무 꽃잎을 떨구고 한들거리는 코스모스 꽃길을 걸어 아파트 정원에 서성인다. 짙푸르던 마로니에 잎이 안색이 변했고 그 곁에 플라다나스도 곁눈질한다. 늦백일홍 꽃잎이 눈을 감고 가을바람을 맞아들인다. 아침 내내 울던 귀뚜라미 소리에서 작년 이맘때를 떠올렸다. 어떤 여인의 늘어진 원피스 단풍잎 무늬에 가을이 졸졸 따라간다. 해마다 가을은 반갑지 않은 알레르기 비염을 내 얼굴에 뿌린다. 나에게 가을은 금왕지절이 아니지만 그래도 높디높은 하늘은 나의 마음을 힘있게 끌어당긴다. 올해도 가을은 이렇게 찾아왔다. 2022.9.6.

나의 창작시 2022.09.06

소음(騷音)

소음(騷音) 여기는 적막이라곤 없다. 한밤중에도 고무바퀴 마찰음에 짜증이 난다. 천장에 매달린 형광 불빛을 내려도 창문으로 간판 불빛이 도둑처럼 기어들어 온다. 앰블런스 119구급대 사이렌은 유리창문을 사정없이 흔들고 낮에 곤두섯던 신경에 끓는 물을 가끔은 퍼붓는다. 연실 화통 삶아 먹은 오토바이 폭발음은 고운 꿈길에 경기(驚氣)를 촉발하고 아스팔트를 긁는 발걸음 소리에 이불을 뒤집어 써야 잠든다. 도시에 산다는 것은 매연(煤煙)에 길든 비둘기처럼 도시(都市) 인간으로 진화해야 하고 여과 장치를 가슴에 매단 채 불편함을 몰라야 산다. 이맘때면 남쪽으로 흘러가던 은하수와 소리 없이 빛나던 북두칠성 검은 숲 위를 떼 지어 날던 반딧불이 적막에 둘러싸인 언덕 위 작은 마을 아련한 향수마저도 털어내야 한다. 나..

나의 창작시 2022.09.05

시간에 대한 불평

시간에 대한 불평 구름에 비는 잔뜩 서려 있고 바람은 무거운 구름을 숙명처럼 밀고 간다. 꽃가루처럼 나부끼던 어제의 햇살은 구름에 몸을 담근 채 잠들었고 태양이 사라진 땅에는 그림자도 도망쳤다. 어제보다 훨씬 낮아진 하늘은 작은 멧부리에 연실 부서져 조각나고 더는 피울 꽃 없는 베롱나무는 허무한 표정으로 아래를 굽어본다. 작년 이맘때 느꼈던 내 감정은 꺼져가던 모닥불처럼 되살아나고 일말의 동정심도 기대하지 않았던 나는 계절의 끝자락을 손으로 붙잡는다. 갈대꽃이 너울대는 강가에는 쓸쓸한 기운이 안개처럼 서려 있고 흐르는 듯 서 있는 듯 모호한 강물에는 누군가의 추억이 깊이 고여있다. 계절은 갈 때마다 나의 시간을 징수하여 일평생 내다보니 껍데기만 남았다. 나는 처음부터 시간을 계산할 줄라 징수원의 감언에 ..

나의 창작시 2022.09.04

무제(無題)

무제(無題) 손가락을 꼽으며 세월을 세어보면 어디쯤 세다가 숫자를 잊어버린다. 손가락 하나를 일 년으로 셀 때면 스쳐 지나가는 기억들이 나를 붙잡아서다. 아름다운 추억 못지않게 아픈 기억들도 지폐처럼 넘어간다. 갈피갈피 끼어 둔 기억의 엽서가 하도 많아 몇 해를 세어도 끝이 안 날 것만 같다. 나의 저녁 거리에는 그림자가 왕래하고 가물거리는 가로등에는 내 눈동자가 걸려있다. 빼곡하던 밤하늘 별들이 저 하늘가 어디론가 달아나버렸다. 내가 걸어온 길은 언제나 낯선 땅이었고 가파른 사다리 마지막 칸을 디딜 때면 언제나 미끄러지는 꿈을 꾸면서 어느 파도 위를 걷고 있다. 여러 갈림길에서 서서 한없이 방황하며 길을 물으려 사람을 찾아도 그 길에는 왕래하는 사람이 없다. 휴대전화기에 번호를 입력하지만 아무리 숫자를..

나의 창작시 2022.09.03

9월

9월 매미 울음도 그치고 귀뚜라미 소리만 새벽을 깨우네. 하늘은 더 높이 도망치고 풀 죽은 햇살은 들판에서 방황하네. 계절을 읽는 풀잎마다 어디론가 떠나야 할 채비를 하고 늦게 핀 홍 백일홍 꽃 잎 서늘하게 부는 바람결에 서럽다. 시간은 언제나 왼쪽으로 돌아 아름다운 이름들을 빼앗아가고 존재하는 생명체에 나이를 먹여 가을이라는 이름으로 떠나게 한다. 구월이면 이파리마다 황달이 들고 시월이면 산야는 각혈하며 스러지겠지 사월보다 더 잔인한 가을이 열차를 타고 전국으로 퍼진다. 2022, 9, 2

나의 창작시 2022.09.02

아! 가을

아! 가을 여름 장마에 물차오르듯 가을은 점점 차오른다. 배롱나무 분홍꽃을 서서히 지우고 물봉숭아 꽃잎에 차올랐다. 보랏빛 수국 꽃을 지우고 느티나무 그늘 맥문동 꽃으로 차올랐다. 귀 찢어지게 울던 매미 소릴 지우고 돌담 틈 귀뚜라미 소리 타고 왔다. 꽃이 떨어진 자리마다 엇비슷한 열매가 차오르고 교정 울타리 담장이 넝쿨 위로 가을 그림자 바람결에 출렁인다. 길섶 과꽃 고운 빛으로 내려앉아 지나가는 길손 발걸음을 붙잡는다. 앞마당 빨랫줄에 앉은 고추잠자리 아직은 일광욕을 즐기지만 백로(白露)로 가는 길목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깊이 고민한다. 아! 올해도 그 가을이 애연한 풀벌레 소리 데리고 차오른다. 2022.8.28

나의 창작시 2022.08.26

함박꽃 그늘

함박꽃 그늘 그리움 왈칵 고인 얼굴빛에 핑도는 눈물방울 이슬로 고인 간간이 피어난 꽃송이 숲에 산골짜기 물소리만 적막을 흔든다. 산들바람마저 나무 뒤로 숨고 푸른 햇볕 나뭇잎 위에 앉아 놀 때 행복에 겨운 이파리들 팔랑이는 한여름 풍경은 태초의 어느 동산이다. 멀리서 들려오는 꾀꼬리 노래와 악보 없이 지절대는 새소리 어떤 향기보다 더 짙은 나무 냄새 공해로 찌든 가슴이 뚫린다. 아무 흠도 없고 티도 없는 이슬보다 더 맑은 우리 주님의 눈망울이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던 원초(原初)의 흙냄새가 난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속으로 두 날개를 달고 날아 오르고 싶다. 합박꽃 망울이 내 눈으로 쏟아진다. 2022.8.

나의 창작시 2022.08.21

늦 여름

늦여름 팔월 열사흗날 아침 폭우 휩쓸고 간 거리는 상처투성이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참 매미는 느티나무숲을 옮겨 다니며 노래한다. 아파트 뜰에서 귀뚜라미 울고 붉은 왕잠자리 빙빙 돌 때 마로니에 나뭇잎 변한 색깔에서 가을이 문 앞에 온 것을 깨닫는다. 광복절 태극기는 펄럭이고 한낮 태양 빛은 아직 작열하는데 백일홍 소녀처럼 웃는데 계절은 응달로 기울어지는구나! 온통 초록빛에 빠져들어 짙푸른 생명의 파장에 감동하며 고동치는 내 심장 소리에 무한한 삶의 의미를 찾았는데 그 푸르던 여름이 가는구나. 새파랗던 시절이 흘러가는구나. 2022.8.13.

나의 창작시 2022.08.13

눈물에 대하여

눈물에 대하여 낡은 베적쌈에 때묻은 몸빼를 입은 어머니가 무딘 호미를 들고 밭고랑에 앉아 잡초를 쥐어뜯으며 한숨을 쉴 때 나는 모호한 슬픔을 느끼었다. 첫아들을 군대에 보내놓고 저녁해가 서산에 떨어질 즈음 자식에 대한 애끓는 그리움에 슬픔의 눈물을 치맛자락으로 닦던 아내를 볼 때 나도 슬픔이 북받쳤다 산다는 것은 슬픔을 마주하는 일이며 때로는 구곡간장을 녹이듯 지울 수 없는 시름에 깊이 빠져 안개 짙은 새벽길을 걷게 하는 일이다. 그런데 눈물은 아픈 상처를 치유하고 뼈아픈 고통을 덜어주며 내가 약할 때 다시 일어서게 하는 눈에서 흘러내리는 신비한 치료제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슴 어디에 맑은 눈물주머니 하나씩 매달아 놓았다. 2022.5.15

나의 창작시 2022.05.14

철쭉꽃

철쭉꽃 올해도 눈부신 빛깔로 도시공원에 부활한 철쭉꽃 불빛처럼 토해내는 빛깔에서 문자 없는 사랑을 읽는다. 누구를 얼마나 사랑하기에 핏빛보다 더 진하게 피는가. 그리움이 가슴에 사무치면 설움에 겹도록 붉어지나 보다. 선홍빛 철쭉 흐드러질 때면 숨겨놓은 숙질(宿疾)은 덧나고 라일락 아무리 눈짓해도 나의 눈빛은 너에게로만 향한다. 바람은 신록에 갇혀 잠들고 햇빛은 꽃잎에 앉아 노는 꽃 향기 진동하는 날에는 모질게 마음 먹어도 흔들린다. 2022.4.30

나의 창작시 2022.04.3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