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시 63

목자들아

목자들아 목자들아 일어나라 먼동이 텄다. 양을 몰아 푸른 풀밭 찾아 나서라 긴긴 밤 허기지친 양떼들에게 이슬 맞은 푸른 꼴을 먹여주어라. 목자들아 막대기로 양을 몰아라. 어리석고 우둔한 양 바로 이끌어 사나운 맹수에게 잡히지 않게 평탄하고 안전하게 인도하여라. 목자들아 눈을 들어 앞을 보아라. 드넓은 풀밭과 맑은 냇물이 배고프고 목마른 양 기다린단다. 지체 말고 양을 몰아 그리로 가라. 목자들아 가로놓인 비탈을 보라 발걸음을 옮길 때면 숨이 막히고 가시밭길 지날 때면 찔려 아파도 어린 양떼 생각하며 참고 갈지라. 목자들아 서쪽 하늘 노을이 섰다. 뙤약볕에 지친 양을 불러 모아서 잃어버린 양이 없나 꼼꼼히 살펴 편히 쉴 장막으로 인도 하여라 목자들아 하루 종일 양을 치느라 지치고 상하여 쇠약해 져도 양을 ..

신앙시 2022.09.12

당신께

당신께 읊을 수 없는 호칭이기에 감히 당신이라 칭합니다. 이팝나무꽃이 하얗게 피어나고 늦봄 햇살이 신록에 쏟아질 때 당신의 영역 안에서 이뤄지는 생명의 신비함에 감탄합니다. 현란한 색채의 꽃들이 쏟아내는 짙은 향기가 가슴을 흔들때면 싱싱한 풀 내음에 훈훈히 취합니다. 나에게 날개가 있다면 세상 끝까지 날아서 당신의 솜씨를 더 많이 느끼고 싶습니다. 초여름 햇볕이 내리쬘 때면 뒤설레는 마음 주체할 수 없어 푸른 풀밭에 드러누워야 내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2022.5.7

신앙시 2022.05.07

봄 날의 기도

봄날의 기도 치미는 봄기운에 겨울은 저만치 물러섰고 어제 만지고 간 햇살에 홍매화 가지마다 꽃망울 붉습니다. 귀를 찢는 까치 노랫소리 옛 친구들 음성처럼 정겹고 재잘대는 새들의 날갯짓을 보며 닫아 두었던 내 마음을 활짝 엽니다. 지난겨울 긴 추위에 내 영혼은 얼음장 밑에 쭈그리고 앉아 잿빛 새봄을 학수고대했습니다. 산고랑에 흐르는 냇물소리에 무거운 겨울 신발을 벗어 던지고 봄빛 대지를 향해 달려가렵니다. 그런데 봄은 계약서처럼 어김없건만 내 생애 생명의 봄날은 당신의 생명책에 몇 번 더 남았습니까? 양지바른 언덕에 주저앉아 피어 오르는 아지랑이 추억할 때면 살아온 날들의 은총에 할 말을 잊으나 생명 계약일의 만기가 도래할 것만 같아 수각황망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벌떡 일어서서 다시 찾아온 봄..

신앙시 2022.03.09

감사절의 기도

감사절의 기도 봄볕에 보리밭 위로 날던 종달새들의 고운 노래를 들으며 올해도 풍년을 기원했던 마음의 기도에 주님은 무르익은 오곡백과로 응답하였습니다. 폭풍우 사납던 한 여름밤과 찌는 듯한 삼복더위를 지날 때 농사꾼의 피와 땀을 기억해 달라던 기도에 주님은 농부들의 환한 웃음으로 응답하였습니다. 허수아비 들판에서 졸고 참새들 낱알을 쪼아먹으며 재잘거릴 때 공중의 새들까지 먹이시는 조물주의 넉넉하심을 벼 이삭 무르익는 논둑에 보았습니다. 코로나 19는 모든 사람을 두렵게 해도 아침마다 해는 뜨고 저녁마다 별이 빛나며 비와 바람을 골고루 보내주셔서 우리의 일상(日常)을 돌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은 분요(紛擾)하고 위험하지만 어미가 자식을 사랑함 같이 아껴주시고 자신을 던져 세상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금..

신앙시 2021.11.19

섭리(攝理)

섭리(攝理) 오늘은 비가 오다가 그치고 햇볕이 한참 내리 쬐다가 다시 흐리고 가랑비가 내린다. 변덕을 부리는 여름 날씨는 대기의 불안함 때문만은 아니다. 고개를 돌리면 끝없이 짙푸른 여름빛을 유지하기 위해 지고한 섭리가 자주 뒤집어서다. 지상에 존재하는 어떤 물체도 자력으로 생존하지 못한다. 드러나지 않는 지존자의 손길이 오묘한 조화(造化)로 엮어갈 뿐이다. 피었다 지는 꽃 한 송이와 초식동물의 밥이 되는 풀 한포기도 자력갱생의 삶을 살수는 없다. 밝게 비추다 스러지는 저녁별과 장엄한 일출의 신비함도 스스로 존재하는 초월자에 의해 천체는 면밀(綿密)하게 움직이는 거다. 무량한 질서 속에 내가 나로 존재하는 초자아 역시 지배자의 손길에 끌려간다. 나는 지존자의 은밀함을 믿는다. 2021.7.11

신앙시 2021.07.10

우리교회 풍경

우리교회 풍경 붉은 십자가 늘 하늘에 떠있고 참사랑 빨간 네온은 밤새 명명(明明)하다. 아마 길 잃은 이들이 이 동네에 많아 밤마다 등대처럼 불을 밝히나보다. 예배 시간마다 찬양소리 흘러나와 길손의 가슴을 조용히 흔들고 꽃잎처럼 쏟아지는 피아노 선율은 지친 사람들 마음을 파고든다. 황토 빛 고딕 예배당은 쳐다 볼 때 마다 마음이 평안하고 예배당에 앉아 기도를 드릴 때면 환하게 웃는 하나님 얼굴이 떠오른다. 화단에 피어나는 앙증맞은 란타나 주일학교 어린이만큼 예쁘고 잘 다듬어진 주목 다섯 그루는 우리교회 청소년 미래를 보는 듯하다. 스테인 그라스에 웃고 있는 성자는 두 손을 들고 밤낮 축복하니 예배당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큰 복이 넘치리라. 2021.6.20

신앙시 2021.06.17

십자가

십자가 빨간 네온의 십자가가 밤이면 도시 하늘에 내 걸리고 샛별이 스러지는 순간까지 어두운 도시를 밝힙니다. 망망대해의 등대보다 등산로의 길표보다 더 많은 것은 인생항로에 길 잃은 이들이 많아 촘촘히 걸어놓은 듯합니다. 더러는 붉은 십자가를 쳐다보며 상업주의를 운운하고 양 눈에 쌍심지를 돋우기도 하지만 십자가는 방황하는 이들이 표지랍니다. 핏빛처럼 붉은 가슴으로 누군가를 진하게 사랑해 본 사람만이 밤마다 장미꽃처럼 피어나는 십자가의 의미를 알 수 있답니다. 누군가가 죽어야 누군가가 사는 영원한 대속(代贖)의 원리는 한 송이 새빨간 보혈의 꽃으로 피어 사람들의 가슴을 흔든답니다. 2021.6.11

신앙시 2021.06.11

부활절 소고(小考)

부활절 소고(小考) 작년에 진 꽃은 올해 부활했고 가을에 진잎들이 형형(形形)의 모양으로 부활했다. 자연의 승계는 영원히 이어질 부활이고 같은 종(種)의 보존과 지탱은 끊임없는 재생으로 생태계는 생존한다. 최초의 생명체가 각각 종류대로 시작하여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건너온 끈기와 소멸하지 않으려는 생명체의 강력한 복사력이 보물처럼 깊은 곳에 숨어있다. 자연의 부활은 영적 부활의 그림자일 뿐 성자(聖子)의 부활이 참 부활이러니 절망의 돌무덤을 헤치고 사흘 만에 살아난 그리스도의 부활은 잠자는 자들의 희망이다. 어떤 이는 도난설을 주장하고 어떤 이는 환상설을 주장했다지요. 기절설을 꺼내든 사람들도 있고 거짓 유포설로 사람들을 현혹하며 신화설로 부활을 조롱한다해도 나는 목격자들의 증언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

신앙시 2021.04.02

감람산의 기도

감람산의 기도 올리브나무 숲에는 달빛만 차갑고 베들레헴에 떴던 그별은 자취를 감추었다. 새들도 어느 처마에 밤잠을 청하고 달그림자마저 깊은 침묵에 빠졌다. 아몬드꽃 달빛에 창백하고 감람 나뭇잎만 향기 짙은데 인기척 없는 동산에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고요했다. 늦은 밤 허름한 옷을 입은 한 젊은이가 차가운 바위에 꿇어 엎드려 흐느끼며 부르짖는 절규가 가슴 아팠다. 법치를 저버린 인간들마다 원죄의 굴레와 족쇄를 매단 채 처절하게 죽어가는 슬픈 운명을 서른세살 젊은이는 간과할 수 없었다. 타의에 의해 떠밀리지 않고 자의에 의한 숭고한 선택으로 십자가에서 죽어 인류를 구원할 마지막 결정이 고통스러웠다. “죽음의 이 잔을 마시고 싶지 않지만 신의 뜻이라면 달게 마시겠노라.”고 세 번이나 같은 말을 되풀이한 그는..

신앙시 2021.03.26

당신의 사랑

당신의 사랑 그 해 거기서 당신은 날 불렀고 나는 거절할 수 없어 답했습니다. 내가 보내는 곳으로 가라 할 때 몇 번이고 사양(辭讓)했지만 당신의 손을 뿌리치지는 못했습니다. 강권하기보다는 결단을 촉구했고 멍에를 씌우기 보다는 스스로 짐을 짊어지게 했습니다. 내 어깨가 감당하기엔 아주 버겁고 무겁고 큰 짐이었지만 주저앉지 않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뒤돌아보면 험한 길이었고 앞을 내다보면 아직도 아득한데 지나온 날들이 이력이 되어 이제는 하나도 겁나지 않습니다. 당신의 음성은 늘 감미롭고 성품은 내가 처음부터 흠모했지만 내 마음을 사로잡은 힘은 당신의 아낌없는 사랑입니다. 나를 아끼고 귀중히 여겨준 당신의 아카페에 내 마음이 녹았습니다. 당신은 사랑의 화신(化身)입니다. 2021.2.14

신앙시 2021.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