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시 72

가을 기도

가을 기도 가슴에 단풍잎이 쌓입니다. 부러움도 가득 쌓입니다. 얼마나 진실하게 살았으면 이토록 고운 빛깔을 낼까요. 이른 서리 내리던 밤과 화덕(火德)같던 여름 햇살과 휘몰아치던 9월 태풍에도 주님이 돌봐 주셨잖아요. 주님! 저도 단풍잎처럼 저토록 곱게 물들고 싶어요. 오색을 모두 섞어서 황홀(恍惚)하게 물들여주세요. 나 비록 옳지 못한 생각과 바르지 못한 몸짓으로 살았어도 마무리해야 할 시간 앞에 아무런 욕심(欲心)이 없어요. 마음을 비우렵니다. 욕망의 비늘을 털어내겠으니 나를 바라보시는 주님눈에 고운 단풍(丹楓)으로 남게 하소서. 2019.11.9

신앙시 2019.11.09

그는

그는 그는 어느 날 홀연히 찾아와 어린 내 손을 끌고 간 유괴자이다. 골육(骨肉)보다 더 깊은 정애(情愛)로 한평생 품어준 앞가슴이다. 내가 만난 인(人)과 신(神)을 통틀어 유일(唯一)의 지선(至善)이다. 온종일 내 가슴속에 가라앉은 주먹만 한 황금(黃金)덩어리이다. 지칠 줄 모르고 밤낮 돌아가는 풍력(風力) 날개이다. 때론 돛에 바람을 받아 파도를 태우고 광활한 벌판에 홀로 세웠어도 스물 네 시간 돌아가는 불꽃 눈동자이다. 백로(白鷺)에 핀 백일홍 향기로 내 영혼을 맑게 하는 짙은 바람이다. 2019.9.10

신앙시 2019.09.10

바다에서

바다에서 나는 늘 바다를 그리워한다. 첫 만남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 푸른 물결은 내 가슴에서 밤낮으로 출렁거린다. 억억(億億)년을 자맥질 하며 자성과 뉘우침으로 갈고 닦아 희다 못해 성수(聖水)로 다가올 때 바다와 하늘은 하나였다. 소금물에 온 몸을 잠글 때 나는 침례(浸禮)수로 받아드렸고 다시 물위로 올라 올 때 하늘이 활짝 열리며 태양이 웃었다. 바다보다 더 넓은 주님 가슴은 작은 내 가슴을 은총으로 채워주었고 그 무한한 수평선 너머로 나의 소망을 돛단배를 실어 보내라했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바닷가에서 마음에 쌓인 짐들을 모두 내어던질 때 바다는 아무 말 없이 받아 주었고 내 마음은 고요와 평안으로 충만하다. 2019.8.17

신앙시 2019.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