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시 63

나만의 임금

나만의 임금 내 마음 한 가운데 옥좌가 있고 그 자리에 임금 한 분이 앉아있습니다. 그분은 나한테 한 번도 명령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분의 음성을 마음으로 듣습니다. 그는 나에게 자유와 평화를 주고 언제나 내 생각보다 앞서 나를 인도하십니다. 얼마나 겸손한지 나는 늘 머리를 숙이고 온화하고 부드러움에 감복합니다. 내가 나와 다툴 때에 항상 바른편에서서 빗뚫어진 생각을 호되게 꾸짖습니다. 내가 선한 일을 하면 활짝 웃으시고 나쁜 일을 하면 온종일 토라져 계십니다. 위험한 곳에 섰을 때 내 팔을 꽉 잡아주시고 억울한 일을 만났을 때는 달래주십니다. 여러 번 나를 진토(塵土)에서 건져주셨고 딜레마에 빠질 때면 지혜로 모면하게 하십니다. 나는 나의 의지보다 그분의 뜻을 따르고 그가 지시하는 대로 살기에 걱정이 없..

신앙시 2021.01.15

셋째 하늘

셋째 하늘 하늘 위 셋째 하늘에는 아름다운 언덕이 있고 그 언덕 너머에는 거룩한 도시가 있네. 이 세상에 없는 노래가 종일 흐르고 근심걱정하나 없어 웃는 사람들뿐이네. 하늘 위 그 하늘에는 수정 빛 강물이 넘쳐흐르고 그 강가에는 뿌리 깊은 나무들 즐비하네. 지상에는 없는 과일이 주렁주렁하고 옥보다 고운 풀에 구슬 꽃 출렁거리네. 유리 빛 바닷가 고요한 세상 진주 몽돌밭 눈이 부시고 황금길 보석마차 줄지어 달릴 때 부딪치거나 다칠 일 없으니 두려움 하나 없네. 진주 문 보석 성 찬란한 세상 꿈에도 그리던 이 세상에는 없는 나라 자유는 독수리처럼 날아오르고 정의와 공평이 강처럼 흘러넘쳐 다시는 눈물이 없는 나라이네. 나 여기 머물고 싶네. 다시는 지상으로 가지 않으려네. 옥좌에 앉으신 이가 날 오라 하네. ..

신앙시 2020.12.01

나의 당신

나의 당신 아주, 아주 오래 전 봄날 냇가에 서 있을 때 나는 당신을 만났소. 맑은 물에 비친 그대의 모습은 내 맘을 단번에 사로잡았고 노랗게 핀 생강나무 꽃향기가 풍겼지요. 잣나무 향기가 감성을 자극하던 여름 날 당신은 아침햇살로 내 등을 어루만졌지요. 황금빛 피나무단풍잎이 앞산을 감쌀 때 당신은 내 가슴을 뜨겁게 흔들었고 흰 눈이 황톳길을 하얗게 지우던 날 내 가슴에 오두막집을 지었지요. 떠나려는 당신을 나는 붙잡았고 그 날부터 우리는 둘이 하나가 되어 내 안에는 당신이 당신 안에는 내가 살지요. 나는 당신 앞에 자주 토라져도 당신은 내 마음을 매일 만져주고 별빛 같은 당신 눈빛에 내 가슴은 토담처럼 무너지지요. 시간은 바람처럼 물처럼 흘러 흘러 백 발 성성한 노인이 되었어도 당신은 여전히 나와함께 ..

신앙시 2020.11.23

감사절 감사

감사절에 감사 봄날의 햇빛은 내 가슴을 흥분케 했고 밤하늘의 별빛은 내 양심을 선하게 했습니다. 흐드러지게 핀 꽃들은 내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성서(聖書)이고 솔솔 불어오는 바람소리는 당신의 진솔한 속삭임이었습니다. 어둠을 걷어내고 매일 새 하늘을 열어 나에게 무한한 희망을 선물하고 울창하게 우거진 한 여름 숲속에서 당신의 장엄함을 보았으며 세계의 명경치를 걸어 다니다 당신의 위대함에 울어버렸습니다. 슈퍼에 진열된 과일 코너에서 감, 사과, 배, 대추, 바다 건너온 과일에서 나는 당신의 속성을 읽었습니다. 내가 의지하는 당신의 손가락은 지식과 지혜의 기묘이며 불가사이입니다. 저녁녘 단풍 곱게 든 오솔길을 걷다가 당신의 가슴속이 들여다보여 순간 발걸음을 멈추고 묵상에 잠겼습니다. 기름기 자르르 흐는 햅쌀밥..

신앙시 2020.11.14

가을 감동

가을 감동 새빨갛게 익은 붉 나무 아래서 진한 감동에 콧등이 시큰 거리고 복자기 나무 핏빛 단풍잎에서 삶의 절정을 온 몸으로 느낀다. 올해도 어김없이 수의를 갈아입고 억만의 만장(挽章)을 펄럭이면서 장엄한 찬미 속에 진행되는 장례미사의 성스러움에 감탄한다. 골고다 언덕에 높이 달려 숙죄(宿罪)의 덫에 걸려 허우적대는 타락한 중생(衆生)들을 살려내려 살신성인한 신의 아들만큼 고귀하다. 떠밀지 않았는데 오직 스스로 높은 장대 위에서 몸을 날려 한 마리 나비처럼 떠나버리는 그 고운 단풍잎은 붉은 넋이다. 우물쭈물 대거나 망설임 하나 없이 각각의 유언장 하나씩 품고 죽음에 도전하는 저 용기 앞에 가을바람도 숨을 죽인다. 2020.11.2

신앙시 2020.11.02

셋째 계절의 기도

셋째 계절의 기도 주여, 나도 영글고 싶습니다. 붉게 익은 수수가 고개를 숙인 것은 한 여름 뙤약볕을 온 몸에 칭칭 감고 된 바람에도 넘어지지 않아섭니다. 주여, 나도 진실하고 싶습니다. 산자락 새빨갛게 물든 오손 단풍잎은 살아 온 이야기를 하나도 숨김없이 사실대로 털어놓기 때문입니다. 주여, 나도 가난해지고 싶습니다. 산 까치 몇 마리 마른 정강이 드러내고 산열매 쪼아대는 눈빛에서 허리 굵은 내 모습이 부끄러웠습니다. 주여, 나도 곱게 늙고 싶습니다. 샛노란 은행잎이 허공을 맴돌아 바람에 나풀대며 미련 없이 떠날 때 지나치지 않게 늙는 방법을 보았습니다. 주여, 내가 가진 것 다 주고 싶습니다. 마지막 한 톨까지 쏟아낸 후 빈 가지를 흔드는 밤나무에서 나누어 줌의 행복을 보았습니다. 훌훌 옷을 벗어 버..

신앙시 2020.10.25

그 이름 예수

그 이름 예수 소년이 되기 전부터 안 이름이여! 내가 첫 울음을 울기 이전부터 내 이름을 안 기묘자여! 너무나 돋보여 부르기조차 두려운 이름이여! 빈궁할 때 채워주던 이름이여! 병들었을 때 고쳐 준 이름이여! 눌려 살 때 풀어 준 이름이여! 잡혔을 때 건져 준 이름이여! 불러도 불러도 또 부르고 싶은 이름이여! 아무리 불러도 싫지 않은 이름이여! 행복에 겨울 때 부른 이름이여! 슬픔이 북받칠 때 부른 이름이여! 그 이름 예수 그 이름 예수 파도는 산처럼 일어서고 산은 파도처럼 출렁일 때 부른 이름이여! 별 빛 하나 없는 그믐밤에 부른 이름이여! 내 평생 눈물로 부른 이름이여! 무릎 꿇고 두 손 들어 부른 이름이여! 솔밭 속에 갇힌 채 온종일 부른 이름이여! 내 자식보다 더 사랑한 이름이여! 내 목숨과 맞..

신앙시 2020.09.24

인동초 꽃

인동초 꽃 척박하고 그늘진 땅에 엎드려 한 겨울이 와도 항복하지 않고 한 송이 가녀린 꽃을 피우려 가슴 한 복판에 돌 제단을 쌓았다. 첫 눈에 빠져버린 사랑은 당신이 딛는 발자국을 따라 아무리 가파른 산길이라 해도 나는 거룩한 노래를 부르며 갔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여름비가 밤새 사정없이 내 의지를 시험할 때 나는 크게 흔들릴 지언즉 결코 당신의 약속을 잊지 않았다. 내가 그토록 피우고 싶은 사랑은 당신의 맑은 눈물을 마시며 한 마리 거룩한 꽃나비가 되어 당신 가슴에 포근히 안기는 일이다. 영특한 눈동자가 꿈을 꾸던 날 소년이 되기 전부터 당신에게 홀려 첫눈이 와도지지 않는 인동 초 꽃이 되어 눈시울을 붉힌다. 2020.9.23

신앙시 2020.09.23

내손 잡아 주세요

나를 잡아주세요. 1.절 갈 길은 아직 멀기만 한데 서산에 노을이 지고 외로운 들길 찾아 헤매는 불쌍한 이 나그네 살아온 그 길이 험했어라. 나 지금 광야에 헤매다 헤매다 로뎀 나무 그늘에 힘없이 쓰러져 잠든 다 해도 하늘의 만나 물- 한 모금 내게 먹여주세요. 2.절 시간은 흘러 날은 어둡고 별 빛마저 차가운데 갈 곳을 잃어 방황 하는 나 앞 길이 막막하네. 나 지금 두려워 떨고 있네. 루-스 광-야에 두려워 두려워 돌베개 베고 울다가 지-친 몸 잠든다 해도 하늘 사-닥다리 내주님 손 나를 잡아주세요. 하늘 사-닥다리 내주님 손 내손 잡아주세요.

신앙시 2020.04.14

주여 우리를 도우소서

주여 우리를 도우소서. 주여! 우한코로나가 파도처럼 일어나 온 세상을 집어 삼키려 하오니 우리는 두렵고 심히 두렵나이다. 코로나 전염병을 이 땅에서 없애주소서. 주여! 바이러스는 인종과 국적을 분문하고 성난 사자처럼 날뛰며 공격하나이다. 막아낼 힘이 없어 심히 무섭나이다. 사나운 전염병을 속히 물리쳐주소서. 주여! 확진 자 수는 점점 늘어만 가고 해외에서 날아오는 소식은 더욱 흉흉하나이다. 이 땅을 치유할 이는 당신밖에 없아오니 능력 있는 손을 내밀어 도와주소서. 주여! 교만하고 패역한 세대를 용서하소서. 자연을 훼손하고 생명을 경시하였나이다. 순리를 역리로 바꾼 죄 값을 치르오니 이제는 진노의 잔을 옮기시옵소서. 주여! 음란과 사치와 탐욕을 용서하소서. 분쟁과 살인과 악독을 용서하소서. 우매와 배약과 ..

신앙시 2020.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