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폭설(暴雪)

신사/박인걸 2023. 2. 10. 06:17
  • 폭설(暴雪)
  •  
  • 그 해 겨울 눈이 처마까지 내렸고
  • 동네 사람은 동굴토끼가 되었다.
  • 굴뚝 연기로 신호를 보내며
  • 온종일 넉가래로 눈을 치워도
  • 구름 속에 갇힌 태양은 도와주지 않았다.
  • 처음 보는 세상은 두려웠고
  • 인적 끈긴 마을에는 정적만 흘렀다.
  • 믿음직한 아버지는 여물을 쑤고
  • 부엌의 어머니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 전화가 없던 그시절
  • 동네 친구 소식이 궁금했지만
  • 그림이 된 마을에서 나는
  • 동화 속을 걷는다고 생각했다.
  • 유난히 눈이 크던 암소와
  • 나만 따라다니던 누렁이
  • 근심 하나 없는 부뚜막 고양이를
  • 오랜 세월 잊고 살아 미안하다.
  • 그 시절 그토록 퍼붓던 눈이
  •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 한 번쯤 나는 폭설에 갇히고 싶다.
  • 202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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