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아스팔트위로 도랑물이 흐른다. 젖지 않은 땅이 없다. 비는 마음에 숨은 우수(憂愁)를 불러낸다. 얼마전에 핀 가로수 잎이 직격탄을 맞고 부러져내린다. 활짝 웃던 철쭉꽃이 떨어질 때 나는 안타까워할 뿐 도와줄 수 없다. 어릴 적 홍역 앓던 친구가 죽던 날 나는 붉은 철쭉꽃을 보며 울었다. 그 아이의 영혼은 비오는 날이면 눈물을 흘리며 옛집 마당을 서성이겠지 내가 키우던 말티가 늙어서 백내장에 걸려 시력을 잃고 복부에 생긴 유선종양으로 눈을 감던 날 비는 우리집 창문을 사정없이 두둘겼다. 봄비가 내리는 날이면 산골 마을에는 이상하게 초상이 났고 구슬피 우는 상주(喪主)의 눈물이 빗물에 섞이는 것을 보았다. 슬픈 일은 언제나 비오는 일어나고 비는 언제나 가슴 아픈 사람의 눈물을 자아낸다. 어제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