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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아

바람아 기별도 없이 다가와내 마음을 흔들고 가는 바람아저무는 빛을 감아 안듯너는 언제나 늦게서야 찾아온다.때로는 네 침묵 속에얼마나 많은 말이 숨어 있는지이제야 나는 네 음성을 듣는다. 비탈에 외로이 선 나무도네 지나간 결에 몸을 맡기고잠시 잊힌 듯 깊이 흔들린다.너는 어쩌면 슬픔의 전령이었고어쩌면 잊혀진 기도의 메아리였다. 나는 오늘 조용히 눈을 감고네 거친 숨결을 품는다.살과 뼈를 넘어 마음 깊은 곳까지그 무언의 떨림으로 전해지는너의 진실을 나는 느낀다. 닿을 듯 멀어지며 스며드는말 없는 너의 이야기가더 아프게 다가와도네가 말하지 않아도나는 이미 다 알고 있다.2025,6,19

나의 창작시 08:26:49

밤 꽃의 계절

밤꽃의 계절 이 계절의 숨은 손길은흰 눈보다 더 하얀 꽃송이를 피워올리고여름 장맛비마저 감싸 안으며향기로 진실을 말하는 법을 가르친다.사람들은 꽃 향을 욕망의 잔향이라 부르며혹자는 더러움으로 덧칠을 하지만밤꽃은 비웃듯 조용히 피어나망설임 없이 자신을 내어준다.외설적 오해는 시간이 걷어내고수치라 말하던 입술도 조용히 닫히며솜처럼 포근한 그 꽃 아래한 해의 결실이 무겁게 익는다.향기는 비릿해도 벌나비 모여들어꽃보다 더 아름다운 결실을 보여준다.가장 낮은 곳에서 피어난 진실은언제나 높은 곳을 향해 열리고밤나무에 숨어 있는 두 얼굴의 진실은그 양극 사이에서 알밤이 심판한다..2025,6,18

나의 창작시 2025.06.18

개망초 꽃

개망초 꽃 흔해서 눈길을 주지 않고하찮아서 보살피지 않는 꽃여기저기 아무 데나 거름더미에서조차무리 지어 피어나는 천한 이름의 꽃이름조차 가난해 부를 때마다접두사가 붙어 다니는 민망한 꽃 여름 햇살은 하얀 꽃 위에귀한 무늬를 수놓았지만그늘진 마음 하나쯤조용히 비춰줄 정도로 마음은 곱다.새벽이슬에도 고개를 떨구고비가 오면 소리 없이 울지만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고밟아도 다시 일어서서 피는 생명력으로 누구도 기억 하지 않지만계절을 맨발로 먼저 맞이하고사람들 떠난 자리에도 홀로 남아가장 오래도록 기다리는 뚝심이여화려함이 아니라 잊힘 속에 피는그것이 조용한 생명임을 깨닫는다.2025,6,17

나의 창작시 2025.06.17

작약 꽃

작약꽃 붉디붉은 어느 심장 하나초여름 햇빛 아래 터져 피었다.청춘의 화염 같은 붉음에바람도 가던 길을 멈추었다.용암보다 더 붉은 맹세꽃잎에 새겨 품었으니그대는 피어 있는 기도요선혈로 번진 열정의 서사(敍事)다. 한 점 불꽃이 산을 태우듯젊음은 이 땅을 물들이고무너진 시간을 딛고 일어서는그 용기의 색이 붉다.꽃이 아니라면 어찌 저렇게 타오르랴.깊은 침묵 속에 외침으로포기마다 진리처럼 당당하게순결한 고통마저도 아름다우니그 붉음은 피가 아니라피를 초월한 성인(聖人)의 믿음이다. 빛처럼 번져 나가는 향기는방황하는 영혼을 이끌고젖은 땅 위에 거룩한 성소(聖所) 되어은밀한 중에 간절하게 기도 올린다.하늘조차 그 붉음을 거두지 못하고꽃을 닮은 별 하나 새벽에까지 사무치리라.2025,6,16

나의 창작시 2025.06.16

아내라는 이름

아내라는 이름 당신을 처음 여보라 불렀던 그 날첫눈이 우리를 축복했고내 입술에 머문 그 이름은 곧 기도였습니다.반백 년을 함께 걸어온 길 위에당신 이름은 언제나 꽃처럼 향기로웠고우리 둘이 세상과 맞설 때당신은 언제나 받쳐주는 지지대였습니다. 새벽마다 먼저 깨어나 기도로 하루를 준비하고저녁이면 내 지친 등을 포근히 감싸주었습니다.그 시절 혹독한 가난도 사랑이라 믿었고눈물조차 서로의 품에서 위로가 되었습니다.당신의 침묵은 언제나 따뜻한 기도였고고된 삶마저 품은 그 손은 성소(聖所)였습니다.아이들 웃음 곁엔 언제나 당신이 있었고지친 나를 다시 세운 건 말 없는 기다림이었습니다. 한 번도 나서지 않고 중심이 되어준당신의 그림자는 내 생의 기둥이었고당신의 흰 머릿결에 햇살이 비치면나는 당신을 처음 만나던 날이 떠..

나의 창작시 2025.06.15

여름 장맛비

여름 장맛비 올해도 장맛비가 찾아왔다.어머니 생일 즈음이면 늘 장맛비가 문을 두드렸고젖은 바람 사이로 내 이름을 부르시던어머니 목소리가 가슴 깊은 데서 살아난다.하늘길로 걸어가신 아득한 세월마지막 인사를 몰래 감추시고당신은 빗물처럼 조용히 그 강을 건넜고나는 아직도 찢어진 우산을 접지 못한 채무릎까지 차오른 그리움 속을 걷는다.장맛비는 어머니 눈물을 닮아서떨어지며 가슴을 적시고 흘러가며 잠든 내 그리움을 깨운다.구부정한 허리로 밥 짓던 뒷모습천식에 콜록대시며 새벽기도 걷던 발길고추밭에 고이던 어머니 하루가 떠오른다.오늘 시작되는 장맛비가 내 창을 두드릴 때그 속삭임이 혹시 어머니일까 싶어창밖을 바라보며 어머니 이름을 불러본다.장맛비가 그치면 나는 또 한 해를 살아야 한다.2025,6,14

나의 창작시 2025.06.14

내 인생의 도피성(수 20:1-9)

내 인생의 도피성(수 20:1-9) (서론) 아돌프 아이히만은 나치 독일의 SS 장교로, 유대인 학살 계획인 ‘최종 해결책’을 실무적으로 주도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그는 전범으로 기소 대상이 되었지만 도피에 성공했습니다. 그는 오스트리아와 독일 등지를 거쳐 가명을 쓰고 아르헨티나로 도망쳤습니다.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는 아이히만의 은신처에 대한 제보를 입수했습니다. 1960년, 모사드는 비밀 작전을 감행해 아이히만을 아르헨티나에서 납치했습니다. 납치 작전은 국제적인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이스라엘은 정의 실현을 강조했습니다. 아이히만은 이스라엘로 이송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1961년, 예루살렘에서 전 세계가 주목하는 공개 재판이 열렸습니다. 그는 자신이 단지 명령에 따른 하급자..

2025년 설교 2025.06.13

고향 땅

고향 땅 걷고 또 걸으며 흘러온 땅지문처럼 선명하게 눌러붙은 시간의 기억비슷한 경치마다 데자뷔처럼 스며드는아주 오래된 흑백 영화다. 잊은 줄 알았던 흙빛 언덕그 너머에는 잠들지 않는 숨결이 있고눈만 감으면 아직도 떠오르는형체 없는 어루만짐이다. 물감보다 더 오래가는 냄새그곳엔 옛 학동 하나 없고떠났기에 더 가득한 얼굴들기억의 빈 자리에 나는 앉는다. 어릴 적 밟고 지나던 풀잎에도묵은 정이 묻어나는 건그 땅에 내 탯줄이 흙이 됐기 때문이며내 숨소리가 바람에 실려 떠돌기 때문이다. 고향이란 말만 들어도 마음이 젖는 건돌아갈 수 없는 문 앞에 서 있기 때문이며내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중심은내 혼의 강력한 끌어당김 때문이다.2025.6.13

나의 창작시 2025.06.13

멍든 수국

멍든 수국 노을빛이 꽃잎에 스미던 날너의 눈동자도 잔잔히 떨렸다.아물지 않은 말들이 흘러나와보랏빛 수국처럼 가슴에 멍이 들었다. 사랑은 염색되지 못한 계절닿지 못한 입맞춤의 거리에 있다.가까웠기에 더 멀어진 시간 속에서우리는 끝내 서로의 그림자가 되었다. 한 송이 두 송이 바람에 무너지는슬픈 꽃송이처럼 망설이던 내 마음그 안엔 아직도 너의 얼굴이 남아 있고지울 수 없는 시간은 조용히 울고 있다. 오늘 저녁 수국 앞에 멈춰 선 나는묻지 못한 안녕을 한 손에 들고 서 있다.잊는다는 건 피는 법을 배우는 일멍든 아름다움으로 나는 다시 피어나련다.2026, 6, 12

나의 창작시 2025.06.12

여름 숲

여름 숲 진녹색 나뭇잎 사이로 붉은 햇살이 너를 비출 때나는 숲길을 따라 너에게로 갔다.숲은 말이 없었지만 모든 것이 고백 같았고바람은 우리의 이름을 엮어 주었다. 사랑은 아주 서툴렀지만젖은 이마에 땀방울처럼 빛났고우리의 손끝이 처음 닿는 순간가슴이 곤두박질치고물끄러미 서로를 바라본 채시간마저 숨을 죽였다. 서로를 위해 달리던 길 위에서계절보다 빠르게 피어난 두 마음내일이 항상 올 것처럼그해 여름 그 숲에서우리는 시간을 믿으며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잎사귀에 맺힌 기억은아직도 내 영혼 속에 지워지지 않고그 숲엔 아직도 너의 웃음이사방으로 울려퍼진다.우리는 떠났지만 사랑은 남아여름 숲 어딘가에 조용히 숨 쉬고 있다.2025,6,11.

나의 창작시 2025.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