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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작시 1409

연서(戀書)

연서(戀書) 연정도 연서도 옛이야기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곱게 쓴 연서에 우표 한 장을 붙여 붉은 통에 집어넣고 설레는 맘으로 뒤돌아섰다. 우연히 알게 된 소녀(少女)의 주소로 내 마음을 가지런지 엮어 보냈는데 뜻밖의 날아 온 분홍 봉투에 난 소스라쳤다. 자전거 탄 우체부가 달려 올 때면 튀어나온 눈알은 자전거 바퀴와 함께 돌고 내 이름이 적힌 편지를 받아 쥘 때면 온 세상이 내 품으로 달려들었다. 줄줄이 읽어 내려갈 때면 활자에 꿀이 흐르고 깊어지는 연정에 가슴은 발롱거렸다. 새빨간 고추처럼 익어가던 연서도 어느 날 전깃줄처럼 끊겼다. 젊은 날의 한 자락 행복한 추억으로 책갈피에 은행잎처럼 고이 간직한 채 세월은 자꾸자꾸 흐르고 또 흘러 연정도 연서도 빛이 바랬고 젊은 날 뛰던 심장 박동도 이제는 멎..

나의 창작시 2020.09.29

가을 밤

가을 밤 가을밤은 적막하다. 풀벌레라도 밤새 울어준다면 야윈 가슴 깊이 잠들 텐데 쥐죽은 듯 고요해 불현 듯 고독이 스민다. 철쭉꽃이 붉게 피어나던 봄날 나뭇잎이 흔들리며 커가던 던 여름 나는 꿈길에서도 새소리를 들었다. 토란대가 굵어지던 밤과 호박순이 담장을 넘어 암꽃이 피던 날 나는 근심을 잊고 잠들었다. 천둥과 번개가 전봇대에 심술을 부리던 밤 내 외로움은 전광이 빼앗아갔다. 풋대추가 발갛게 익는 소리와 밤알이 떨어지는 소리마저 닫힌 가슴에는 내줄 여백이 없다. 그나마 고개턱에 깔린 진홍 노을 한 섬 베어 가슴에 담아 두었기 망정이지 그마져 없었다면 가을밤은 지루했으리. 오늘 밤은 거의 여문달이 처연히 밝다. 2020.9.27

나의 창작시 2020.09.28

허무에 대하여

허무에 대하여 그토록 화려했던 진달래 철쭉꽃은 빈 가지만 흔들리고 치솟던 아카시아 나무 여름 바람에 맥없이 쓰러졌다. 불협화음 한 여름 풀벌레들 찬바람 일자 종적을 감추었고 일찍 뒹구는 나뭇잎들 허무하다. 행복은 늘 헛손질이었고 검버섯 늙어지니 한없이 허전하다 짙은 안개가 둘러 길은 어둡고 답 없는 문제지 들고 평생 풀어도 아까운 시간들만 길 위에 뿌릴 뿐 손에 잡히는 것 하나 없다. 두 개의 창문은 점점 어두워지고 천둥소리조차 희미한 쭈그러진 연골이 증폭기에 기대는 노인이 서럽다. 내 생애 남은 길 몇 리나 될까 발길에 나뭇잎만 허무하게 차인다. 파도에게 인생을 물어도 철썩이기만 하고 기러기에게 물었더니 고개만 젓는다. 철학서적 뒤적여도 구구(區區)하고 강물은 말없이 길만 따라간다. 상공에서 내려다보니..

나의 창작시 2020.09.27

돌배 익는 마을

돌배 익는 마을 거기 그 산 아래 산 벽 둘린 풀 냄새 가득한 마을 서낭당 옆 길 돌배 익는 향기 산머루 까맣게 익어가고 억새풀 꽃 파도처럼 일렁이면 누나 치렁거리는 머릿결 바람에 곱고 고구마 발갛게 익어 소쿠리에 가득 넘칠 때면 주름진 울 아버지 활짝 웃고 착한 황소는 마당가에서 입에 꼴을 물고 날 반기던 곳 온 종일 산비둘기 구슬피 울어대면 작은 내 마음도 구슬퍼지고 밥 익는 냄새에 허기를 느낄 때면 서천(西天)에 노을이 불타고 원인 모를 그리움에 곧잘 한숨짓던 그 시절 추억이 아련하다. 2020.9.27

나의 창작시 2020.09.26

내가 부를 노래

내가 부를 노래 나는 내가 부를 노래가 없었네. 가슴으로 부를 노래 내 영혼이 즐거워하며 부를 노래 그런 노래가 없어서 괴로워했네. 그대를 향한 그리움으로 한 없이 목말라 갈급함으로 내 영혼에 고여 있는 샘으로 목을 축이며 가슴이 터지도록 부르고 싶은 노래 그런 노래를 부르고 싶네. 눈물을 병에 담아 간직하고 날개를 달고 멀리 날아가고 싶은 세상 어둠이 앞길을 막아 방황 할 때 목 놓아 불러보고 싶은 노래를 찾고 있네. 이제는 그런 노래를 부를 수 있네. 그 노래는 누가 지어준 노래가 아니네. 내 영혼의 오선지에 그려져 있었네. 헛된 노래에 취해 그 노래를 잊고 있을 뿐이었네. 부르고 또 불러도 목이 쉬지 않고 매일 불러도 또 부를 수 있는 노래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노래 내가 그를 사랑한다는 노래이네...

나의 창작시 2020.09.26

큰 결심

큰 결심 그토록 붉던 꽃들은 내 눈 앞에서 사라진지 오래고 짙푸르던 여름 잎 새들도 한 잎 두 잎 사라진다. 숲을 가득 매웠던 풀벌레 소리도 오늘 아침에 들을 수 없고 내일이면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도 아침 안개처럼 떠날 것이다. 나는 오늘 크게 결심한다. 떠날 것들을 사랑하지 않으리. 곁을 두지 않는 것들을 구애하지 않으리. 그가 나를 떠나기 전에 내가 먼저 그를 떨쳐 버리리. 아쉬움이 약간은 명치에 남겠지만 눈물은 흘리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운운하지 않으리. 몰인정에 가슴아파하지 않으리. 내가 먼저 마음을 접으면 잊어야 할 것들은 잊을 수 있으니까. 2020.9.25

나의 창작시 2020.09.25

물봉선화 꽃

물봉선화 꽃 산새들 내려앉아 목축인 도랑가 배죽배죽 웃는 계집처럼 샛노란 꿀주머니 주렁주렁 매달고 무엇을 전해 주려나 날 기다린다. 가물거리는 옛 기억이지만 또렷하게 떠오르는 고운 네 모습 놓치지 않으려 애써온 보람에 너의 소식이 합격통지서만큼 기쁘다. 해는 서쪽하늘에 많이 기울고 가을 그림자는 산자락을 휘감는데 뒷산 잔디밭에 앉아 소곤대던 그 시절 아련한 추억에 젖어본다. 첩첩산중의 아늑한 마을에 저녁연기 희부윰하게 피어오를 때면 물봉선화 꽃 닮은 네 얼굴은 시름 하나 없이 언제나 고왔고 저녁 별빛은 네 얼굴로 내려앉았다. 오늘은 네 모습이 꽃잎에 스민다. 2020.9.24

나의 창작시 2020.09.24

고독(孤獨)

고독(孤獨) 가을바람이 오동나무 잎을 흔든다. 기운 잃은 햇살은 그림자를 길게 흘린다. 끝물 페튜니아 서러워 울고 란타나 꽃잎도 슬픈 베르테르다. 아는 노인이 내 곁은 스쳐간다. 중절모자가 헐겁고 허리는 구부정하다. 음영이 깃든 백발 노안에 늙은 사슴의 걸음만큼 둔하다. 짚수세미처럼 구겨진 얼굴위로 지독한 고독이 둥지를 틀고 한 움큼 잡힐 것 같은 허리가 어지러움증에 휘청거린다. 저 노옹 업적 빗돌에 새길 만한데 늙는 길 못 막아 처량하다. 서슬 퍼런 권세도 시간은 못 자르니 죄수처럼 끌려가는 목숨이 가엽다. 2020.9.23

나의 창작시 2020.09.23

바닷가에서

바닷가에서 양양 앞바다는 언제나 푸르다. 바닷바람이 해송(海松)숲을 휘젓고 나면 원두커피 맛 보다 더 진한 향기가 가슴을 적시고 찰싹 거리는 파도소리에 도시에서 쌓인 삶의 압력들이 산산이 부서진다. 거칠 것 없는 푸른 활주로가 태평양 아득한 저쪽으로 끝없이 열리고 나의 설렘은 그 위를 휘젓고 달린다. 가끔 찾아올 때마다 바다는 얼굴이 다르다. 설악산처럼 일어선 파도가 고독을 못 견디고 큰 소리로 날 뛰던 날 어미 잃은 사자들의 울음을 들었다. 오케스트라의 선율처럼 찰싹이던 날에는 침울했던 마음의 불순물들을 바다는 심장 언저리까지 씻어 주었다. 짙은 안개가 시야를 가리던 날 어머니 품처럼 상처받은 마음을 감싸주었다. 어둠이 장막처럼 덮은 밤에는 저 멀리 등대만 삶의 항로를 지시하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뱃고동..

나의 창작시 2020.09.22

KTA 열차

KTX 열차 서울에서 부산으로 달린다. 호젓한 날 우리 둘은 열차에 몸을 맡겼다. 미끄러지듯 한강을 건너 대낮에도 어둡게 살던 노량진을 스치며 눈 깜짝 할 사이 내 추억이 쌓인 안양을 벗어났다. 회고하면 나는 첫 울음을 울던 날에 운명 열차에 실려 어디론가 가고 있다. 동심(童心)의 들판은 꿈길이었지만 춘정의 시절부터 불안한 골짜기로 접어들었다. 가파른 협궤를 빠져나가던 시절 넌덜머리나는 증세에 바닥을 뒹굴었고 빠르던 속력은 사막폭풍에 주춤거렸다. 캐스케이드 산맥을 넘어 화산 지대를 지나 스네이크 강 유역 협곡과 폭포의 아찔한 풍경에서 비장한 현기를 느꼈지만 위험을 무릅쓴 모험을 떠났기에 오히려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내가 탄 열차는 평평한 들판이 아니었다. 황폐한 거리, 막막한 벌판 지루한 고원을 밤낮없..

나의 창작시 2020.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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