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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작시 1406

마음

마음 형상 없는 실존이며 실체 없는 존재이다. 물들인 낱낱의 줄로 짜여 지고 얽힌 무늬로 수놓은 복잡한 천이다. 신념과 이념을 수놓은 깨지지 않는 그릇이며 정조와 지조를 굽히지 않는 기둥이다. 깨지면 무서운 칼날이 되고 중심을 잃으면 무너지는 산(山)이 된다. 잔뜩 골이 나면 한 마리 독사가 되고 타락하면 흉측한 악마가 된다. 자기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선한 눈빛의 한 마리 암곰이다가 곤두세운 발톱으로 쫓기는 사슴의 목을 물어 제 새끼에게 먹이는 수사자(獅子)이다. 일월성신(日月星辰)을 담은 하늘이며 초목 무성하게 아우러진 숲이다. 열면 닫기 힘들고 닫으면 열기 힘든 문이며 퍼내고 퍼내도 줄지 않는 샘이다. 누구도 스스로 지키기 힘든 성(城)이며 매일 흔들리는 나뭇잎이다. 내 평생 살았어도 내 마음 아직..

나의 창작시 2020.10.05

대추

대추 자주 빛 대추가 올망졸망하다. 가로등 불빛에 대추나무 그림자 흔들릴 때도 가지 끝에 맺힌 열매는 말없이 익어갔다. 지난여름 강풍이 가지를 세게 흔들 때 알맹이들은 아우성치면서도 흩어지지 않았다. 여름 햇살이 웃통을 벗고 덤벼들 때도 대추는 이마로 들이 받으며 싸웠다. 피투성이 된 정수리 마다 붉은 누룽지처럼 딱지가 앉았고 밤이슬 하얗게 내려앉을 때 적(赤)진주 목걸이마냥 치렁치렁 엮었다. 잔칫상에 올랐던 쭈글쭈글 구겨진 대추는 벼락 칠 때 몸을 비틀면서 견디어 낸 불굴의 어떤 넋인 걸 알았다. 한 입 베어 물면 꿀맛 같은 그 향기는 평생의 노력이 담긴 한 권의 책을 읽는 맛이다. 오늘따라 가을 햇살에 대추가 빛난다. 2020.10.4

나의 창작시 2020.10.04

그곳

그곳 아주 오랜 만에 찾아간 그곳 앞 뒤 산은 여전히 두렵게 일어섰고 강은 움직이는 뱀 같이 구불거렸다. 비탈에 늙은 소나무 우람하고 나를 매일 반기던 느릅나무는 구부정하다. 성긴 눈발이 흩날릴 때면 언 발가락 꼼지락 거리며 걷던 고갯길은 썩은 낙엽이 내 발자국 모두 지웠고 포장된 아스팔트위로 달리는 차들은 유년 적 내 추억을 사정없이 밟아버렸다. 봄이면 꽃비 쏟아지던 갓 바위 터 소낙비 쫄딱 맞으며 달리던 여름 벌판 내 가슴까지 물들이던 가을 단풍에 취해 꿈길처럼 비틀거리며 걸었던 오솔길 첫눈 펑펑 쏟아지는 날에 분이 손 꼭 잡고 함께 건너던 징검다리 카카오 스토리마냥 저장되었는데 세월이 파헤치고 지나간 그곳은 별유곤건이고 사라져버린 그 때 그 사람들 이름만 내 입에서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린다. 흐르..

나의 창작시 2020.10.03

코스모스 꽃

코스모스 꽃 가을 이맘때면 도방(道傍)이 자기들 땅이다. 내 어릴 적 빨강, 분홍, 흰색 꽃이 영혼의 심방(心房)까지 염색되었더니 불명(不明)의 오렌지 코스모스도 가슴을 파고든다. 다른 꽃 다 질 적에 누구를 위해 찬바람 맞으며 한로(寒露)에도 피는가. 산자락 마다 단풍 곱게 물드는데 이토록 뒤늦게 어쩌자고 피는지 시골길을 가다 발걸음 멈추고 묻는다. 기러기 떼 고향 길 찾아 떠나고 귀뚜라미 여치도 겨울 온다고 가버렸는데 된 서리 올 줄 뻔히 알면서 뒤늦게 한들거리며 해죽해죽 웃는가. 아직도 이렇게 서성이는 건 타향살이 고달파 애끓는 그리움 고향철새라도 지나가면 물어 보려고 야위고 야윈 몸 긴 목 빼들고 꽃은 지고 검불이 되더라도 거기서 있겠단다. 2020.10.2

나의 창작시 2020.10.02

가을 바다

가을 바다 가을에는 산(山)만 익지 않는다. 바다도 아주 곱게 익고 있다. 통통하게 살찐 갈매기 떼 모래톱에 앉아 날 생각을 접고 연실 밀려오는 작은 파도는 그리움 모두 잊어버리고 해변을 거니는 어떤 연인들처럼 깊은 몽유(夢遊)를 즐긴다. 산처럼 일어서서 길길이 날뛰며 온갖 노여움을 해변에 게워내던 여름 역겨움과 더러움에 피했는데 가을날 읍양(揖讓)한 태도에 내가 놀란다. 저 멀리 작은 섬들 조용히 눕고 저문 하늘은 바다로 내려앉을 때 텅 빈 가슴으로 해변을 거니는 나의 포만지수를 머리끝까지 끌어 올린다. 저녁노을 물결에 쏟아지고 만선의 고깃배들 포구로 돌아 올 때 익은 유자 향 보다 더 진한 향기가 해안의 작은 마을을 가득 채운다. 2020.10,1

나의 창작시 2020.10.01

깃발

깃발 장대 끝이 자기 한계(限界)이지만 남의 주장(主張)을 온 몸에 문신하고 누군가를 위해 펄럭이다 사라진다. 매달린 한낱 헝겊쪼가리가 한 마리 새처럼 날 훨훨 날 때면 민족의 마음을 하나로 묶고 전사(戰士)들 사기는 하늘을 찌른다. 매달리는 순간 누구의 영혼이 되고 사라질 지언즉 영원히 죽지 않는다. 한 번 마음을 굳히면 닳아 없어지도록 단심(丹心)이다. 고팻줄 하나에 오르내리며 기세를 올려 소리소리 지르다. 끝내 허공에서 숨을 거두는 깃발이여! 2020.9.30

나의 창작시 2020.09.30

꽃이 되리라.

꽃이 되리라. 나 죽었다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면 붉은 빛 꽃으로 태어나리라. 맨드라미보다 더 붉게 당신 가슴을 달구는 붉은 꽃이 되리라. 아니, 계절마다 다른 색깔로 피어나 당신 발걸음 닿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나는 무릎을 꿇으리라. 꺾으시면 기꺼이 내 목을 내 놓고 밟더라도 절대로 소리 아니 지르리라. 낫을 휘둘러 맘대로 자른다 해도 나는 두 눈을 꼭 감아 버리리라. 혹여 당신의 정원에 옮겨 심는다면 고체향수보다 더 진한 향기로 당신 가슴을 괭이질 하리라. 2020.9.29

나의 창작시 2020.09.30

연서(戀書)

연서(戀書) 연정도 연서도 옛이야기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곱게 쓴 연서에 우표 한 장을 붙여 붉은 통에 집어넣고 설레는 맘으로 뒤돌아섰다. 우연히 알게 된 소녀(少女)의 주소로 내 마음을 가지런지 엮어 보냈는데 뜻밖의 날아 온 분홍 봉투에 난 소스라쳤다. 자전거 탄 우체부가 달려 올 때면 튀어나온 눈알은 자전거 바퀴와 함께 돌고 내 이름이 적힌 편지를 받아 쥘 때면 온 세상이 내 품으로 달려들었다. 줄줄이 읽어 내려갈 때면 활자에 꿀이 흐르고 깊어지는 연정에 가슴은 발롱거렸다. 새빨간 고추처럼 익어가던 연서도 어느 날 전깃줄처럼 끊겼다. 젊은 날의 한 자락 행복한 추억으로 책갈피에 은행잎처럼 고이 간직한 채 세월은 자꾸자꾸 흐르고 또 흘러 연정도 연서도 빛이 바랬고 젊은 날 뛰던 심장 박동도 이제는 멎..

나의 창작시 2020.09.29

가을 밤

가을 밤 가을밤은 적막하다. 풀벌레라도 밤새 울어준다면 야윈 가슴 깊이 잠들 텐데 쥐죽은 듯 고요해 불현 듯 고독이 스민다. 철쭉꽃이 붉게 피어나던 봄날 나뭇잎이 흔들리며 커가던 던 여름 나는 꿈길에서도 새소리를 들었다. 토란대가 굵어지던 밤과 호박순이 담장을 넘어 암꽃이 피던 날 나는 근심을 잊고 잠들었다. 천둥과 번개가 전봇대에 심술을 부리던 밤 내 외로움은 전광이 빼앗아갔다. 풋대추가 발갛게 익는 소리와 밤알이 떨어지는 소리마저 닫힌 가슴에는 내줄 여백이 없다. 그나마 고개턱에 깔린 진홍 노을 한 섬 베어 가슴에 담아 두었기 망정이지 그마져 없었다면 가을밤은 지루했으리. 오늘 밤은 거의 여문달이 처연히 밝다. 2020.9.27

나의 창작시 2020.09.28

허무에 대하여

허무에 대하여 그토록 화려했던 진달래 철쭉꽃은 빈 가지만 흔들리고 치솟던 아카시아 나무 여름 바람에 맥없이 쓰러졌다. 불협화음 한 여름 풀벌레들 찬바람 일자 종적을 감추었고 일찍 뒹구는 나뭇잎들 허무하다. 행복은 늘 헛손질이었고 검버섯 늙어지니 한없이 허전하다 짙은 안개가 둘러 길은 어둡고 답 없는 문제지 들고 평생 풀어도 아까운 시간들만 길 위에 뿌릴 뿐 손에 잡히는 것 하나 없다. 두 개의 창문은 점점 어두워지고 천둥소리조차 희미한 쭈그러진 연골이 증폭기에 기대는 노인이 서럽다. 내 생애 남은 길 몇 리나 될까 발길에 나뭇잎만 허무하게 차인다. 파도에게 인생을 물어도 철썩이기만 하고 기러기에게 물었더니 고개만 젓는다. 철학서적 뒤적여도 구구(區區)하고 강물은 말없이 길만 따라간다. 상공에서 내려다보니..

나의 창작시 2020.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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