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울 연가 고리울 연가 고리울 사거리 가로등 불빛 아래 다정한 두 사람 손을 맞잡고 밤 늦도록 사랑을 속삭이네요. 가을밤은 점점 깊어만 가고 찬바람은 옷깃을 스치는데 잡은 손 놓지 못해 아쉬운 마음 시간은 새벽으로 가네요. 고리울 사거리 인적도 드믄데 정다운 두 연인 마주보면서 헤어지기 못내 아쉬워하네요. 가게들 하나 둘 불이 꺼지고 신호 등만 외롭게 껌뻑이는데 마지못해 헤어지며 손을 흔드는 연인들 사랑이 아름답네요. 2020.9.10 나의 창작시 2020.09.10
들 꽃 들 꽃 바람 부는 들판에 여름비 내배도록 맞으며 누군가를 기다리며 들꽃 몇 송이 굳세게 서서 버틴다. 빗물은 가슴깊이 스미고 바람은 의지를 흔들어도 오로지 한 마음으로 흔들릴 지언즉 꺾이지 않는다. 벌판은 언제나 거칠고 비바람이 지저 밟아 자주 넘어지고 스러지지만 들꽃은 다시 일어선다. 지난 밤 그리움 삭히며 샛노란 꽃을 피웠는데 기다린 그는 오지 않고 비바람만 몰아치니 가엽다. 오늘만 지나면 하늘엔 태양이 뜨고 학수고대하던 그가 오리니 기다림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2020.9.9 나의 창작시 2020.09.09
여름이 간다. 여름이 간다. 귀뚜라미 구슬프게 새벽부터 울고 늦호박 꽃잎에 주름이 깊다. 한 낯 내리 꽂던 햇살도 풀이 죽었고 매미들만 아직 자지러지게 운다. 능소화 끝물도 맥없이 땅에 뒹굴고 배롱나무 꽃 피었던 길이 허무하다. 일에 미친 도시는 꽃이 지는지도 모른다. 차들은 앞만 보고 달리고 간판은 대낮에도 불을 켜고 이목을 끈다. 길거리를 왕래하는 자들은 일에 매달려 어디론가 끌려가고 빌딩 안에 갇힌 자들은 비틀거릴 뿐이다. 밤알이 가시송이에서 익어가고 고개 숙인 벼이삭은 참새 습격을 받으며 길가 코스모스가 가을 춤을 추는데 콘크리트만 밟는 사람들은 생명 없는 냄새만 짙게 풍길 뿐이다. 새벽이슬은 여름을 지우고 바람은 가을을 열심히 퍼 나른다. 내가 걸어간 오솔길에도 여름이 지나간 발자국이 찍혀있다. 여름은 꾸물거.. 나의 창작시 2020.09.07
9월 어느 날 9월 어느 날 봄에 아내와 거닐던 둘레 길은 에덴의 동쪽 한 모퉁이였다. 인간이 처음 뛰놀던 환상의 땅이며 내가 돌아가고픈 하늘 길이었다. 풀잎도 나뭇잎도 피어나는 꽃들도 온통 새것들로 가득 가득해 한 시간만 걸어도 나는 새 인간이었다. 여름이 지나간 가을 길목에서 찢기고 상한 이파리들과 고약한 태풍에 쓰러진 나무에서 숫한 상처의 신음이 들린다. 한 뼘도 안 되는 짧은 날이었는데 그 날의 정취는 흔적이 없고 빨래 줄에 걸린 헌 걸레조각처럼 후줄근한 잎들이 불쌍하다. 가을은 여문 알맹이들을 내 손에 쥐어주는데 그 열매들은 숲의 응고 된 진액이었다. 우연히 만진 어머니의 뱃살에서 바람 빠진 풍선을 보았는데 그 역시 내 탯줄이 빨아버린 모성의 껍질이었다. 개금 열매를 품고 있는 찢어진 잎에서 나는 어머니의 뱃.. 나의 창작시 2020.09.06
여행추억 여행추억 코로나 19는 하늘 길을 막았다. 추억을 사러가는 통로를 바이러스가 끊었다. 아내의 손을 잡고 공항 게이트로 들어 설 때마다 신천신지로 가는 설렘이었다. 구름 위를 날 때면 신선(神仙)이 부럽잖고 지구를 내려다 볼 때면 셋째 하늘에 앉은 기분이다.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자작나무 숲과 가도 가도 지치지 않는 귀리 밭 풍경아 비단을 풀어 놓은 듯한 피오르의 광경과 절벽에서 쏟아지는 만년설의 폭포들은 죽어서도 잊지 못할 영혼에 절어든 추억이다. 데살로니가 하늘에 저녁노을이 깃들고 내가 탄 버스는 베뢰아 들판을 달릴 때 한 옥타브로 연주되는 그리스 전통 민요는 황홀한 감정에 여행의 고단함을 씻었다. 마테오라 기암절벽에서 함성을 질렀고 파르테논 신전에서 여신 아테나는 못 만났지만 아레오바고 철인(哲人)들의 .. 나의 창작시 2020.09.05
추악한 세상 추악한 세상 하늘은 맑고 산은 푸른데 세상은 저토록 지저분하단 말인가. 평화는 산 너머로 도망치고 행복은 강풍에 찢어진 비닐처럼 나부낀다. 선악의 경계조차 뒤섞이고 의와 불의의 개념은 성서에서 잠을 잔다. 양심과 도덕은 이미 시궁창에 처박혀 억지와 생떼가 길거리를 점령했다. 승냥이의 발톱을 등 뒤에 숨긴 자들이 능청스런 가면을 쓰고 세상을 속일 때 넋 나간 우민(愚民)들은 돌고래 박수를 치며 자신들의 간을 빼먹어도 모른다. 낡고 붉은 깃발은 아직도 더럽게 휘날리고 흉측한 이데올로기 숭배자들은 낡은 이념을 개밥그릇처럼 끌어안고 코로나처럼 눌어붙어 자유를 갉아먹는다. 호모끼리 남색을 즐기며 레즈비언끼리 살림을 차린단다. 천사를 강간하려던 소돔의 남자들이 장님이 되어 그날 밤 유황불 세례를 받았다. 젠더퀴어들.. 나의 창작시 2020.09.04
마이삭 태풍 마이삭 태풍 검은 구름이 명랑해전 여울목처럼 돌다 융단처럼 펄럭이며 날아간다. 저수지가 터진 듯 물 폭탄이 쏟아지고 아스팔트가 순간 황강이 된다. 마을 옆 상수리나무 숲은 서귀포 앞바다처럼 출렁이고 전깃줄에 부딪친 바람은 귀신처럼 운다. 어둔 밤을 밝히는 번갯불은 어느 아파트 옥상에 처박히고 화난 천둥은 밤하늘을 사정없이 흔든다. 내 어릴 적 사라에 혼이 났고 매미, 루사, 볼라벤은 내 영혼에 상처를 냈다. 마이삭에 쫄았는데 다행히 도망쳤다. 이런 날은 어디서 사람이 죽고 지나가던 차가 넘어진 나무에 깔린다. 재수 없는 사람은 차에 갇힌 채 떠내려가고 떨어지는 간판에 맞아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잃기도 한다. 미친바람이 며칠간 난동을 부려대면 선량한 사람들은 혼비백산이다. 멀쩡하던 세상도 미친 사람 말한 .. 나의 창작시 2020.09.03
산(山)에서 산(山)에서 마이삭이 숲을 헤집고 다니며 벌레 먹은 나무를 사냥한다. 상처 있는 나무가 위험하다 했었는데 오늘 결국 넘어지고 말았다. 전기톱이 긋거나 도끼날이 닿지 않았는데 바람이 몇 번 흔들고 지나가자 힘없이 스러지는 모습이 가엽다. 연륜이 쌓인다는 것은 죽음의 계단을 높이는 일이다. 정점에 이르렀을 즈음 맨 밑에 고인 받침돌이 깨진다. 고목의 죽음에서 사람을 본다. 어느 날 홀연히 찾아 올 운명의 날이 가면을 쓰고 있어 안 보일 뿐이다. 벽에 걸린 초침은 지금도 돈다. 감긴 태엽이 풀리는 순간 유예가 없다. 죽음은 한 겨울보다 더 잔인하며 고약한 판사의 선고만큼 가혹하다. 새 봄이 와도 스러진 나무는 넘어진 채 흙이 될 뿐이다. 내가 오늘도 산을 찾는 이유는 벌레가 내 몸을 갉아먹지 않게 함이다. 2.. 나의 창작시 2020.09.03
여름 비 오는 저녁 여름비 오는 저녁 구름은 어둔 장막을 치고 산은 거대한 벽처럼 일어섰다. 가로등 불빛 희미한 도시에 여름비는 추적이며 내린다. 창가에 앉아 빗소리를 들으면 옛 추억들이 전등처럼 켜지고 잊혀 지지 않는 사람의 눈동자가 기억 속에서 곱게 껌뻑인다. 그 해 어느 여름날 오늘처럼 비가 가슴을 적실 때 우리는 어느 찻집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엮었다. 시간은 커피 잔에 갇히고 빗물은 우리의 가슴으로 흘렀다. 멈추지 않는 빗소리는 베토벤의 비창 소나타였다. 나는 그 때 그 찻집으로 달려가 따끈한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 그때처럼 빗소리를 들으며 오지 않을 그 사람을 기다리고 싶다. 2020.9.2 나의 창작시 2020.09.02
낙화(洛花) 낙화(落花) 배롱나무 꽃잎이 쏟아진다. 바람이 불어서가 아니다 질 때가 되어서 진 거다. 능소화도 허무하게 스러지고 귀뚜라미 노래마저 서글프다. 수명을 다한 마지막 모습은 산비둘기 노래만큼 처량하다. 석양 기러기도 갈 곳 찾아 날고 가을로 가는 뒷산 언덕에는 거칠던 바람결도 힘을 잃었다. 어릴 적 뛰놀던 악동(惡童)의 귀천(歸天) 소식에 하늘이 노랗다. 꽃은 차례대로 지고 나뭇잎도 순서대로 진다. 사람도 때가 되면 간다지만 가고 져야하는 운명이 슬프다. 2020.8.31 나의 창작시 2020.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