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그해 불던 바람이 가끔 찾아온다. 마른 강 언덕에 섰을 때 사정없이 내 뿌리를 흔들던 젊은 날의 잔혹한 바람을 잊을 수 없다. 이 세상 그림자들을 몽땅 몰고 와 걸어가던 길을 캄캄하게 가로막았다. 10월의 태양이 빛났지만 사나운 바람을 이겨내지 못했다. 길가 은행잎은 황금빛으로 엉켜있고 오렌지 코스모스는 꽃물결 파도치는데 무수히 쏟아지는 열매들은 내 주머니에서 아주 멀리 도망쳤다. 서있는 것들은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움직이는 것들만 피난처가 없다. 그래도 나는 황달 든 풀잎에 걸쳐 있는 실오라기 같은 햇살을 보았다. 공포는 시간이 흐를수록 절망으로 바뀌지만 끝까지 버티는 마지막 잎 새에 희망의 끈을 살며시 붙잡아 매두었다. 끈기 없는 잎들은 이미 뒹굴고 죽기를 결심한 잡초들은 길가에 스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