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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작시 1407

낙화(洛花)

낙화(落花) 배롱나무 꽃잎이 쏟아진다. 바람이 불어서가 아니다 질 때가 되어서 진 거다. 능소화도 허무하게 스러지고 귀뚜라미 노래마저 서글프다. 수명을 다한 마지막 모습은 산비둘기 노래만큼 처량하다. 석양 기러기도 갈 곳 찾아 날고 가을로 가는 뒷산 언덕에는 거칠던 바람결도 힘을 잃었다. 어릴 적 뛰놀던 악동(惡童)의 귀천(歸天) 소식에 하늘이 노랗다. 꽃은 차례대로 지고 나뭇잎도 순서대로 진다. 사람도 때가 되면 간다지만 가고 져야하는 운명이 슬프다. 2020.8.31

나의 창작시 2020.08.31

비눈오는 날의 일기

비눈 오는 날의 일기 겨울비가 그대를 붙들려했지만 떠나가는 길을 막지 못하자 진눈깨비로 앞길을 가로막는다. 돌아서는 사람을 붙잡는다는 것은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는 것처럼 힘들지만 핏물보다 진한 사랑이라면 하늘도 도와주시리. 만약 당신이 나를 버리고 소식이 닿지 않는 곳으로 떠나간다면 사랑했던 날들의 추억들이 한 평생 가슴에 숯불을 피워 삶이 아니라 죽음이겠지요. 가지 마오. 떠나가지 말아 주오. 당신이 떠나가도 지울 수만 있다면 이렇게 목메지는 않을 테지만 두고두고 나를 괴롭힐 텐데 티 없이 맑은 당신의 눈동자와 엷은 미소의 당신 입술과 햇솜 보다 더 부드러운 당신 마음이 밤이면 하늘에 낮이면 허공에 눈감으면 아픔으로 가슴을 찢을 텐데 안 돼요 가지 말아요. 빗물처럼 눈물로 호소할게요. 그래도 당신이 떠..

나의 창작시 2020.08.29

예감

예감(豫感) 어느 날 내 곁을 스치는 너의 바람결과 우연히 마주친 너의 눈빛 여러 번 벨이 울린 후 착신번호를 읽으며 마지못해 수화기를 들고 겸연쩍은 수식어로 머뭇거리는 대답에서 마음이 떠났음을 예감한다. 한편의 영화 장면처럼 스크린을 가득 채울 스토리가 가슴 깊은 곳에 따스한 온기로 가득한데 식어가는 난로처럼 임계거리를 벗어나 도주거리를 걷는 너의 발자국 소리는 내 심장에 동침(銅針)을 꽂는다.

나의 창작시 2020.08.29

환란당한자의 기도

환란당한자의 기도 주님 늦여름 초가을 문턱에 섰습니다. 코로나 19에 이제는 너무 지쳤고 초유(初有)의 장마에 경악했으며 바비까지 스쳐가니 재앙입니다. 도시는 중병에 흔들거리고 가정마다 재액에 휘청거리며 기업은 큰 환란에 도산되오니 민심은 흉흉하고 술렁입니다. 수줍은 산나리 꽃 근심하나 없는데 언덕에 달맞이꽃 파도치는데 유독(唯獨)인간세상만 이토록 가혹합니까? 주여! 이 땅을 굽어보소서. 인간의 탐욕과 교만이 하늘을 찌르고 오만과 방종이 도를 넘어서 주님이 설정한 선을 넘었다하더라도 이제는 징계(懲誡)를 멈춰주소서. 기울어진 담처럼 위태로우며 어미 잃은 아이처럼 불쌍하오니 지독한 코로나만 없애 주셔도 이전처럼 웃으며 살겠나이다. 마주치는 이웃이 사자(師子)와 같고 KF 94 마스크도 마음 안 놓여 하루하..

나의 창작시 2020.08.29

진노랑 원추리 꽃

원추리 꽃 진노랑 원추리 꽃에 고추잠자리 꽁지를 뻗치고 아슬아슬 앉아 눈알을 굴리다 짓궂은 바람에 어디론가 도망친다. 베고니아 빨갛게 타오르고 큼직큼직한 달리아 꽃 화려한데 어쩐지 수줍은 원추리 꽃 뒷마당 한 구석에 무척 외롭다. 아무데서나 흔하게 자라 데쳐서 무쳐먹던 봄나물이더니 운 좋게 뒷마당 감나무 아래 다소곳이 피었으나 겸연쩍다. 이름도 촌스런 원추리 꽃 시시해 눈길 한 번 안주었는데 어느 날 도로공원 떼 지어 핀 왕 원추리 군락에서 나는 반했다. 혼자는 외로워 가냘프지만 뭉치니 아우러져 구경거리더라. 샛노란 햇살에 곱게 익은 내 마음 사로잡는 원추리 꽃 2020.8.28

나의 창작시 2020.08.28

광풍(狂風)

광풍(狂風) 바비가 올라온다기에 마음 조였다. 볼라벤의 트라우마가 아직도 지워지지 않아서다. 옹진반도에 상륙했다는 소식에 안도했다. 바람소리는 나를 언제나 긴장케 하고 전깃줄이 귀신우는 소리를 지를 때면 이불모서리로 귀를 틀어막는다. 철없는 시절에는 바람소리를 즐겼다. 거친 언덕에 올라 일부러 두 팔을 들고 달려드는 바람과 맞부딪치며 놀았다. 매미와 볼라벤이 가슴에 칼자국을 남긴 후 나는 바람소리를 지독하게 미워한다. 육십 척 철탑위에 맨손으로 매달린 채 파도처럼 달려드는 볼라벤을 떠밀며 까마득한 아스팔트길을 쳐다보며 느끼던 공포는 교수대에 선 죄수의 떨림이었다. 산위에서 불어오던 산들바람이나 강변을 훑고 지나가던 훈풍이 아니다. 징기스칸의 군대처럼 파죽지세로 덤벼드는 이름도 생소한 늦여름 광풍은 광기(..

나의 창작시 2020.08.27

인제 산골마을

인제 산골마을 하늘을 가득매운 황금 마차가 우리 집 마당에 사뿐히 내려앉아 늙은 황소를 태우고 하늘로 오를 때 꿈에서 깬 나는 아버지의 죽음을 직감했다. 가여운 아버지는 하늘나라로 가셨고 불쌍한 어머니도 뒤따라가신 무덤 곁에 남보랏빛 도라지 꽃 몇 송이 두 분 마음처럼 곱다. 구슬픈 찬송가가 메아리 되고 황토밭 모서리엔 까마귀 슬피 울던 날 비단만장(輓章)바람에 펄럭일 때 요단강 건너가신 양친이여! 복잡한 내 가슴 뒤적이면 담즙보다 쓴 눈물이 고여 있고 토해내지 못한 아픔이 갈비뼈 사이를 날카로운 송곳처럼 찌른다. 엉겁결에 이주해 온 낯선 마을에서 철새 깃털처럼 흔들리던 날 황망(慌忙)히 떠나버린 깊은 충격에 나는 그날 목 놓아 울었다. 이제는 양친 무덤 앞에서 나는 웃는다. 쓰디 쓴 설움을 씻어내고 지..

나의 창작시 2020.08.26

처서(處暑)

처서(處暑) 분꽃이 담장아래 붉게 피어 긴 장마 진 후 일광(日光)에 졸고 참매미 자지러지게 느티나무 숲을 흔든다. 지붕을 오르던 나팔꽃은 아침 햇살에 고개를 숙인 후 입을 다물고 뙤약볕에 괴로운 잠자리는 어느 장대 끝에 앉아 독백을 즐긴다. 조명처럼 쏟아지는 늦여름 햇살은 지친 아스팔트를 엿가락처럼 녹인다. 지독한 코로나가 무장공비처럼 출몰해도 금년 여름 늦더위는 레코드처럼 재현된다. 다만 성장하는 것과 늙어가는 것들 사이에 노인은 왜 점점 수척해 가는지 끝물 포도송이처럼 스스로 왜소함을 느낀다. 중천의 태양은 용광로보다 더 이글거리고 푸른 숲은 파도 되어 출렁이는데 기력이 쇠한 한 노인은 힘없는 부채질로 외로움을 쫓는다. 오토매틱 승용차들은 쏜살같이 질주하고 공항 여객기들은 추진력을 받아 하늘을 뚫는..

나의 창작시 2020.08.24

나의 당신

나의 당신 포동포동하던 살결과 해맑게 웃을 때 드러내던 치아가 희다 못해 진주처럼 빛나던 당신은 내가 사랑하는 처녀였지요. 첫눈이 나비처럼 날던 날 우리는 손을 꼭 잡고 붉은 카펫을 밟았지요. 세월은 그렇게 흐르고 또 흘러 뒤돌아보면 참 아득한 길을 걸어왔네요. 잠자다 살며시 당신의 얼굴을 살피면 소녀 적 당신의 고움이 그대로이고 볼그스레한 당신의 입술에서 설레게 하던 나의 감성이 아직 살아있어요. 내 가슴속에 세운 어떤 의지를 당신은 한 번도 꺾지 않았고 가녀린 두 손 모아 기도로 나를 힘껏 밀어 나 아직도 이 길을 가고 있다오. 상도동에서 어둔 터널을 걸었고 노량진에서 강바람에 시달렸지요. 봉천동 고갯길에서 지쳐 스러졌지요. 우리는 인천 구월동에서 다시 한 번 두 주먹을 불끈 쥐었지요. 당신과 함께 ..

나의 창작시 2020.08.21

벌판

벌판 끝이 안 보이는 벌판에 나는 서있다. 뒤를 돌아보아도 끝이 없고 앞을 내다보아도 아득하기만 하다. 지루한 걸음을 걸어 나 여기 서 있지만 이제는 지쳐 자신감을 잃는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여러 계절을 헤집으면서 걸어왔지만 나에게는 버겁지 않은 계절은 없었다. 더러는 낭만을 즐겼을 테지만 풀벌레 노래도 나에게는 소음이었다. 폭우가 내리던 한 여름의 지루함과 폭설에 길을 잃고 헤맸던 기억이 찢어진 천 조각처럼 눈앞에 나부낀다. 스쳐가는 사람은 있어도 동행하는 친구는 나에게 없었다. 밤하늘에 별을 세다 벌판에서 잠들었고 한 여름 어느 풀 섶에서 이슬을 맞으며 그날 밤을 보냈다. 나는 이제 벌판이 싫다. 지루한 내 발자국 소리도 듣기 싫다. 짚었던 지팡이마저 닳아 이제는 막대기도 나에게 짐이 된다. 비..

나의 창작시 2020.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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