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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열차
서울에서 부산으로 달린다.
호젓한 날 우리 둘은 열차에 몸을 맡겼다.
미끄러지듯 한강을 건너
대낮에도 어둡게 살던 노량진을 스치며
눈 깜짝 할 사이 내 추억이 쌓인 안양을 벗어났다.
회고하면 나는 첫 울음을 울던 날에
운명 열차에 실려 어디론가 가고 있다.
동심(童心)의 들판은 꿈길이었지만
춘정의 시절부터 불안한 골짜기로 접어들었다.
가파른 협궤를 빠져나가던 시절
넌덜머리나는 증세에 바닥을 뒹굴었고
빠르던 속력은 사막폭풍에 주춤거렸다.
캐스케이드 산맥을 넘어 화산 지대를 지나
스네이크 강 유역 협곡과 폭포의
아찔한 풍경에서 비장한 현기를 느꼈지만
위험을 무릅쓴 모험을 떠났기에
오히려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내가 탄 열차는 평평한 들판이 아니었다.
황폐한 거리, 막막한 벌판
지루한 고원을 밤낮없이 달릴 때면
복잡한 수학문제 앞에 겯질린 표정으로
삶의 극한 함수를 자주 고민했다.
해맑은 가을날 코스모스 핀 간이역에
잊지 못할 추억을 새겨놓고
가끔씩 그 추억을 꺼내 보지만
단종의 운명처럼 존망의 위태로움은
도처에 지뢰처럼 언제나 도사렸다.
저기 부산역이 보인다.
내 인생의 종착역도 어딘가에 있으리.
202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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