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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서
양양 앞바다는 언제나 푸르다.
바닷바람이 해송(海松)숲을 휘젓고 나면
원두커피 맛 보다 더 진한 향기가 가슴을 적시고
찰싹 거리는 파도소리에
도시에서 쌓인 삶의 압력들이 산산이 부서진다.
거칠 것 없는 푸른 활주로가
태평양 아득한 저쪽으로 끝없이 열리고
나의 설렘은 그 위를 휘젓고 달린다.
가끔 찾아올 때마다 바다는 얼굴이 다르다.
설악산처럼 일어선 파도가
고독을 못 견디고 큰 소리로 날 뛰던 날
어미 잃은 사자들의 울음을 들었다.
오케스트라의 선율처럼 찰싹이던 날에는
침울했던 마음의 불순물들을
바다는 심장 언저리까지 씻어 주었다.
짙은 안개가 시야를 가리던 날
어머니 품처럼 상처받은 마음을 감싸주었다.
어둠이 장막처럼 덮은 밤에는
저 멀리 등대만 삶의 항로를 지시하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뱃고동 소리는
삶에 지친 나그네의 외로움을
단 번에 바다 속으로 밀어 넣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으려 찾아 온 날
갈매기 몇 마리 끼룩거리며 나를 환영하고
드넓은 백사장은 나를 주저앉힌다.
202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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