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제(無題)
- 손가락을 꼽으며 세월을 세어보면
- 어디쯤 세다가 숫자를 잊어버린다.
- 손가락 하나를 일 년으로 셀 때면
- 스쳐 지나가는 기억들이 나를 붙잡아서다.
- 아름다운 추억 못지않게
- 아픈 기억들도 지폐처럼 넘어간다.
- 갈피갈피 끼어 둔 기억의 엽서가 하도 많아
- 몇 해를 세어도 끝이 안 날 것만 같다.
- 나의 저녁 거리에는 그림자가 왕래하고
- 가물거리는 가로등에는 내 눈동자가 걸려있다.
- 빼곡하던 밤하늘 별들이
- 저 하늘가 어디론가 달아나버렸다.
- 내가 걸어온 길은 언제나 낯선 땅이었고
- 가파른 사다리 마지막 칸을 디딜 때면
- 언제나 미끄러지는 꿈을 꾸면서
- 어느 파도 위를 걷고 있다.
- 여러 갈림길에서 서서 한없이 방황하며
- 길을 물으려 사람을 찾아도
- 그 길에는 왕래하는 사람이 없다.
- 휴대전화기에 번호를 입력하지만
- 아무리 숫자를 눌러도 신호가 가지 않는다.
- 밤별이 또 마당으로 떨어진다….
- 2022.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