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산길에서 오그라든 가랑잎 위로 첫눈이 솜처럼 내릴 때면 함박 웃는 그대가 눈이 온다며 달려올 것 같아 자작나무에 기대어 오솔길만 바라보고 서있다. 젊은 날의 추억들은 아득하게 멀어져 가지만 이렇게 눈이 내리는 날이면 꺼져가던 불씨처럼 살아나 그대가 올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기다리고 서 있다. 첫 눈이 내릴 때쯤이면 숲은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깊은 잠자리로 드는데 헛된 욕망을 가득 품은 나는 왜 여기서 서성이는 걸까. 가던 길도 지워지고 돌아갈 길도 지워지는데 기다림으로 떨고 있는 이 숲에 그대여 여기에 오려거든 온 천지 뒤 덮는 함박눈으로 찾아와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