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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작시 1409

점봉산

점봉산 왜 점봉 산인지 모른다. 그 산이 꼭 야생화 천국만은 아니다. 구름이 그 산을 넘을 때마다 부서졌고 떨어진 조각들이 아랫마을로 흩어질 때면 마을에는 비가 눈물처럼 내렸다. 가시철망이 촘촘한 산 아랫마을에는 머리를 짧게 깎은 아이들이 군가를 불렀고 사람들은 철조망에 갇힌 나를 군바리라고 불렀다. 얼차려에 혼이 빠져 점봉산 메아리가 되고 자갈 밭길을 무릎으로 길 때면 햇살도 사라졌다. 눈을 뜨면 언제나 가파른 산이 서 있고 계절마다 다른 색깔이 눈동자를 염색했다. 거기는 늘 바람이 울며 지나갔다. 잡초가 뒤덮인 황무지에는 갈대가 울었다. 불규칙한 골짜기에는 안개도 어지러웠고 붉게 타던 가을 산만 내 가슴을 끌어당겼다. M16 소총소리는 산과 산 사이에서 콩을 볶았고 놀러왔던 산 까치들이 깊은 숲으로 ..

나의 창작시 2020.05.14

철쭉 꽃

철쭉 꽃 불이 타네 불이 타 산허리 휘감고 타오르네. 바람 한 점 없는 저 언덕에 연기도 없이 불이 타네. 냇가에도 불이 타네. 시뻘건 불이 크게 번지네. 바직거리는 소리도 없이 낮밤 없이 불이 타네. 님이 그리워 속이 타나 그리운 님 떠나 속이 타나 속울음을 쏟아내며 애간장이 녹아내리네. 태워라 태워 까맣게 태워 먼 산 앞 산 다 태워라. 기왕에 태울 바에야 이 내 가슴도 붉게 태워라. 2020.5.13

나의 창작시 2020.05.13

낙화(洛花)

낙화(洛花) 지네 지네 꽃이 지네. 모란 꽃잎이 지네. 한 마디 신음도 없이 온 종일 가엽게 지네. 바람도 없는데 조용히 짙은 노을처럼 지네. 울리다 은은히 사라지는 종소리처럼 지네. 여인 입술 보다 더 붉게 젊은 피 보다 더 진하게 불덩이 되어 타더니 일순간 사라지니 허무하네. 지는 꽃 진다고 난 슬퍼하지 않을 테요. 지는 꽃 지더라도 피는 꽃은 또 필 테니까요. 2020.5.12

나의 창작시 2020.05.12

애상(哀想)

애상(哀想) 목단(牧丹)은 지고 없습니다. 흐린 하늘에 보슬비만 안개처럼 내립니다.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풀빛 짙은 오솔길을 걷고 있을 때 끊어버리지 못한 지난날의 조영(照影)이 내 발자국을 귀찮게 따라옵니다. 소만(小滿)추위에 늙은이 가슴이 시린데 차가운 바람에도 찔레꽃은 불타고 방금 떠난 여객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긴 울음만 토하며 관악산을 넘었습니다. 어물거리는 사이에 이런저런 기회는 떠나고 텅 빈 가슴 허전하고 우중충한데 짝 잃은 새마져 우니 가슴이 아립니다. 우울증이나 기분 장애에 꿰이거나 오래 된 사랑을 도둑맞지도 않았는데 비라도 내리는 날에는 마음이 슬퍼집니다. 그것은 아마도 가슴속에 숨겨져 있는 지우지 못한 편린(片鱗)들이 가시를 곤두세우고 심장을 찔러서일 겁니다. 오늘은 거꾸로 매달..

나의 창작시 2020.05.11

회상(回想)

회상(回想) 참 먼 길을 걸어왔다. 그 딱딱한 버덩길이 힘에 겨웠고 안개 낀 골짜기는 극도의 초조였다. 한 겨울 새벽 한강교를 건널 때는 마지막 자존심을 뽑아 강물에 던졌다. 숫한 서울거리에 나의 젊음을 깔았고 낮은 변두리 좁은 골목길에서 나의 영혼은 매일 눈물을 쏟으며 서 있었다. 수수가 붉게 익는 길가 밭에서 허수아비를 붙잡고 논 기억이 씁쓰름하다. 비온 후 무지개가 가슴에 서릴 때가 아마도 가장 행복한 설렘이었던 것 같다. 걸어 온 발자국을 트럭에 담는다면 이 세상 차들이 모자랐을 것이다. 들 노루처럼 어떤 비탈을 뛰어다녔지만 매일 뒤숭숭하고 조마조마 했다. 내가 가장 잘 한 일 하나는 모색(貌色)이 은은한 한 여인과 산일이다. 조문객이 저녁 길에 왕래하더라도 나는 아직도 내 영혼을 책속에 가둔다...

나의 창작시 2020.05.10

모란이 지던 날

모란이 지던 날 모란은 지고 멧비둘기만 우네. 지는 꽃 서럽다고 서글피 우네. 감나무 집 붉은 담 벽에 비스듬히 누워 풋 소녀 얼굴처럼 활짝 폈는데 봄비가 짓궂게 스쳐가던 날 맥없이 떨어지니 서글프기만 하네. 객혈(喀血)하던 소녀가 스러지던 날 울컥 쏟은 핏자국 너무 가여워 멧비둘기도 온종일 구슬피 울고 찔레꽃은 종잇장처럼 창백했는데 그토록 짧게 살다 갈 목숨이라면 차라리 붉게 또 붉게 피지나 말지 내 가슴 온통 흔들어 놓고 처연하게 가버리니 눈물이 난다. 망초 꽃 하얗게 무리지어 피는데 이팝나무꽃 눈처럼 쌓이는데 모란꽃만 떨어지니 허무하구나. 모란이 지더라도 난 안 울렵니다. 지는 꽃 지더라도 피는 꽃 또 피니까. 2020.5.8

나의 창작시 2020.05.09

모놀로고

모놀로고 그날 수목원 나무 벤치에서 우연히 나는 그의 독백을 엿들었다. 안경 속의 흐린 눈은 시름에 젖었고 온갖 번뇌가 그의 표정을 붙잡았다. 태양은 계수나무 끝에서 놀고 새들은 갈참나무 가지에서 지줄 대고 산철쭉 꽃이 분홍빛 웃음을 토해도 그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 '나의 행복은 냇물처럼 흘러갔다. 아름다운 꿈은 꽃잎 되어 흩날렸다. 할당 된 시간들을 누이처럼 믿었더니 놀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숨기지 않은 보물찾기에 골몰하다 빈 깡통 더미에 초라하게 파묻혔고 사라질 것들만 골라서 흠모(欽慕)하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에 목말라 헤매며 이유 없는 사람들만 미워했다. 홀연히 태고 적 원시림에 드니 만병초 꽃잎은 아픈 기억들 지우고 은은한 보리수 향에 허무함을 잠시 묻는다. 바다 빛 구상나무 ..

나의 창작시 2020.05.08

당신에게

당신에게 여보! 시간이 우리를 제트기에 싣고 달렸소. 눈 깜짝 할 사이에 처음 보는 세상에 왔소. 발끝을 세우고 아등바등하다보니 얼굴에는 외꽃이 가득 피었소. 싱싱했던 새순을 무참히 꺾은 시간은 지금도 저 상자에서 돌아가고 있소. 신속히 날아온 우리의 시간은 처음부터 짐작했던 아픔과 수고뿐이었소. 하루의 이십사 분의 일을 팔뚝에 매고 아무리 엄지로 시침을 눌러도 갈색 기름종개처럼 빠져나가고 있소. 우리는 유독 바람을 두려워했소. 여름 장마는 더더욱 공포로 짓눌렀소. 그런데 시간이 우리를 세워준 일은 결과가 빚은 부조화와 모순이지 않소. 누가 태양을 허공에 세우며 오랜 세월에 뒤틀어진 고목을 살리겠소. 가망 없는 회귀(回歸)는 접어치우고 남은 날을 붉은 펜으로 손바닥에 새기며 우리에게 할당 된 시간이 얼마..

나의 창작시 2020.05.07

아버지의 성(城)

아버지의 성(城) 내가 눈을 떴을 때 아버지는 가파른 성에 갇혀있었다. 요각(凹角)이나 철각(凸角)에서 봐도 산이었다. 하루 종일 햇볕이 성안에서 놀다가 저녁이면 긴 노을을 남기고 빠져나갔다. 밤이면 별빛 달빛만 나뭇가지에 걸리고 구름 낀 날이면 성안은 그믐밤이 되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자유로웠다. 밤이면 등잔불이 아버지 마음을 지켰고 두꺼운 돋보기는 혼자만의 세계를 보는 눈이었다. 그 돋보기는 성구(聖句)를 확대했고 성구는 노끈처럼 아버지 눈으로 들어갔다. 깊은 성에 갇힌 아버지의 도구는 낫과 도끼와 호미가 전부였다. 그 땅은 불안한 성이어서 사람들은 하나 둘 도망쳐버렸다. 나는 그 성(城)을 탈출하자고 부추겼지만 아버지 신념은 말뚝에 매어있었다. 고집 센 노인은 스스로 찾아 간 성을 좋아했고 거기서 ..

나의 창작시 2020.05.06

세종로에서

세종로에서 저 거리에서 그토록 펄럭이던 주장(主張)의 깃발들이 사라졌다. 연일 내뱉던 확성기소리는 도시 비둘기처럼 날아가 버렸다. 어떤 노인들의 핏대 세운 목소리도 맑은 하늘이 빨아드렸다. 말끔히 수리된 아스팔트 위에는 쏟아진 태양빛이 앉아서 논다. 며칠 전 내린 비에 가로수 함초롬하고 누군가가 심은 꽃이 요괴(妖怪)롭다. 푸른 사람들 신(神)오른 듯 내달리고 도시형 미인들 어깨에는 자신감이 넘친다. 이순신 장군은 어떤 사색에 빠졌고 세종대왕 너무 늙어서 난독(難讀)중이다. 꼬리를 맞문 차량들 엉금엉금 기지만 북적이는 도시가 활화산 가까이 선 기분이다. 오랜만에 지나치는 이 거리가 맘을 끈다. 인간을 풍요롭게 하는 서울이 난 좋다. 인류 최고의 발명품은 도시일거다. 대한민국의 심장(心臟)이 여기서 뛰고 ..

나의 창작시 20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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