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나는 아직도 나그네이다. 뒤돌아보면 까마득한 길을 표락하며 낯선 이방 땅에서 서성이었다. 산천을 벗 삼아 유랑하지 못했다. 봇 짐 지고 남도(南島)를 떠돌지도 못했다. 협간에 흐르는 냇물에 발을 담갔다가 폭포수 노래하는 절경을 걷다가 새들이 속삭이는 숲속에 누웠다가 어느 주막에서 꿀물을 마시지 못했다. 줄자로 재면 뼘으로 잴 거리에서 커다란 쳇바퀴를 타고 여태껏 돌았다. 어느 가을 밤 풀벌레 소리가 나그네의 객수(客愁)를 불러일으킬 때면 길 잃은 나그네는 동공이 여러 번 풀렸고 어느 여름 햇볕이 정수리에 꽂힐 때 모래밭에 드러누워 담즙을 토했다. 인적 없는 바닷가에 섰을 때 성난 파도는 나그네의 슬픈 노래를 빼앗았다. 외로운 싸락눈이 발등을 묻을 때 바람막이 없는 벌판길을 걸었고 정거장 하나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