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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작시 1407

고향무정

고향무정 텅 빈 하늘에 낮달이 떠 있고 어떤 뻐꾸기는 멀리서 울고 있었다. 뒷산 고운 선(線)은 여전했지만 그 때 푸르던 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매끈한 아스팔트위로 차들이 왕래하고 낯선 펜션들이 몫 좋은 자리에 간판을 걸었지만 나를 반겨줄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일렬로 서서 사열 받던 옥수수군단과 비탈 밭 일렁이던 자주 빛 감자 꽃 누렇게 익던 호밀 밭 풍경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오지만 볼록렌즈 두터운 안경을 써도 보이지 않았다. 흘러가는 냇물도 옛 물이 아니고 스쳐가는 바람도 그 때 그 바람이 아니었다. 내가 남긴 발자국들은 모르는 사람들이 밟아버렸고 내 마음에 담아놓은 고향을 누가 훔쳐버렸다. 그러나 흙은 그 때 흙이고 향긋한 시골향기는 아직 남아있었다. 앉아 놀던 칡소 바위에 걸터앉으니 함께 멱..

나의 창작시 2020.06.02

밤비

밤비 비 없는 구름으로 수없이 많은 산을 넘었다. 바람이 불때마다 혼(魂)은 흩어졌고 칠흑 같은 어두운 밤이면 길을 찾지 못해 날이 밝도록 울었다. 어느 바닷가에서 밤이 맞도록 일렁이다 사나운 폭풍이 심장을 휘젓던 날 뜨거운 가슴은 견딜 수 없어 도망쳐야 했다. 자신을 뒤돌아보면 전혀 다른 몸짓으로 세상을 벅찬 가슴에 힘껏 품었다. 목마른 자에게 한 줄기 생수보다 더 갈급한 자를 찾아 나누어 주는 전제(奠祭)물로 어둔 허공을 공수대원처럼 뛰어내려 작은 몸은 산산조각으로 산화(散花)했다. 메마른 대지를 깨진 조각으로 덮으면서 밤비는 어떤 세상을 원했을까. 누구도 너의 영혼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자신을 아낌없이 땅의 뿌리로 밀어 넣는 걸까. 주룩주룩 울면서도 행복한 가슴으로 어미처럼 대지(大地)에 젖을 먹이는..

나의 창작시 2020.05.31

멧비둘기

멧비둘기 멧비둘기 처량한 울음소리가 나의 거실까지 날아들어 기어이 짊어져야 할 등짐처럼 무겁디무겁게 양 어깨를 짓누른다. 피를 토하는 듯 청승맞고 어미죽은 아이처럼 구슬프고 다시 못 볼 이산가족 눈물처럼 심장 언저리로 흘러내린다. 5월은 가고 6월이 오는데 아직도 풀지 못한 한이 있어 숫한 사연을 안고 달려와 내 여린 가슴에 깊이 꽂히는가. 세월은 가도 맺힌 아픔은 남고 하늘은 맑아도 한(恨)은 쌓여 꾀꼬리 노래는 해맑은데 멧비둘기 노래는 오늘도 구슬프다 2020.5.31

나의 창작시 2020.05.31

나의 꿈

나의 꿈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비눗방울처럼 부서질 아련한 꿈이 아닙니다. 구름처럼 부서지는 허무맹랑한 꿈도 아닙니다. 렌즈 속을 걸어가는 허상도 아닙니다. 비 뒤에 일어나는 무지개와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 같은 꿈입니다. 국가와 민족의 무궁한 발전을 기대하는 구호(口號)적 외침이 아닙니다. 분단 된 조국을 통일 하겠다는 영웅주의 적 발상도 아닙니다. 나의 꿈은 인간애에 기초한 소박한 꿈입니다. 철조망처럼 얽힌 도시를 탈출하여 아침 햇살이 제일 먼저 찾아오는 작은 냇가에 조그마한 집을 지어놓고 토종닭 서른 마리와 흰 염소 세 마리를 키우고 꿀벌 열통에서 내가 좋아는 꿀을 따며 줄 콩을 심어 현미밥에 섞어먹고 숲 속에서 키운 장뇌삼을 캐먹으며 내가 좋아하는 시(詩)를 맘대로 쓰다 기력이 쇠하여 조용히 눈을 ..

나의 창작시 2020.05.30

추억에 대하여

추억에 대하여 참 멀리도 왔다. 뒤돌아보면 아득한 길이다. 굽이굽이 맺힌 사연이 으름넝쿨 보랏빛 꽃송이 같다. 민들레꽃 밟으며 달리던 유소년시절은 오로지 어머니의 치마폭에 쌓였었다. 왕성한 혈기가 생선처럼 뛰던 애젊은 청춘에는 큰 꿈에 묻혔다. 앞만 보고 달리던 불혹에는 무섭지도 겁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막간(幕間)을 열고 들여다보면 서러움에 북받쳐 한없이 울고 좌절의 쓴잔에 몸서리쳤다. 오욕과 읍울 중간에서 헤매다 절망의 암초에 부딪쳐 내 인생의 삼분의 일이 깨졌다. 등대 없는 사막 길에서 두려움으로 마음을 욱조이고 어디론가 뻗어있는 가파른 언덕은 번번이 나를 미끄러지게 했다. 사람의 연수가 거북이만도 못한데 노고(勞苦)와 애통(哀痛)뿐이던가 삶이란 추억이 짧고 나쁜 기억만 길다. 단 그 시절(時節)의..

나의 창작시 2020.05.29

노인(老人)의 기도

노인(老人)의 기도 삶의 무게가 버거워 몹시 지치고 내 영혼 깊은 고통 중에 신음하나이다. 인생 길 돌고 돌아 광야 길 오다보니 붉게 타던 낙조(落照)같이 스러지나이다. 때론 괴로워 우울함에 맘이 아프니 나는 당신을 따오기처럼 부르짖나이다. 이젠 홀로 서서 이겨낼 힘없으니 견강한 두 팔로 나를 붙들어 주소서 든든한 당신이 나와 함께 걷는다면 높고 가파른 고갯길이 두렵지 않으며 내 배(船)에 당신의 그림자만 깃들어도 높은 풍랑이 두렵지 않으리다. 나 이제 너무 머나먼 길을 걸어와 골짜기 산비둘기 되어 심히 구슬프니 처량한 나를 내버려두지 마시고 우뚝 솟은 산처럼 위안이 되소서. 석양은 짙고 갈 길은 막막하여 낙목한천에 한 송이 꽃처럼 외로우니 당신의 그 억센 손으로 날 붙들어 갈잎처럼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나의 창작시 2020.05.28

허무함에 대하여

허무함에 대하여 꽃처럼 붉고 푸르던 젊음은 바람결에 떠밀려 어디론가 사라지고 늙은 누에 섶 기어오르듯 굼뜬 몸짓 서럽다 그믐밤 같던 머리카락 어디로 갔나. 흰 서리 가닥마다 내리니 늙은 내 아버지 판박이, 거울이 두렵다. 세월이 빼앗아 가버린 꿈은 죽은 나무 삭정 끝에 매달아놓고 두 주먹을 다져 쥐며 소리치던 용기도 쥐구멍으로 꼬리를 감췄다. 의욕은 아직 일어서는 산불 같지만 느린 몸동작은 연실 헛 페달을 밟는다. 장밋빛 보다 붉고 강낭콩만큼 푸르던 젊은 날의 뜨겁던 사랑도 이제는 타다 식어버린 잿빛추억일 뿐 남은 날들은 일력(日曆)처럼 한 장씩 줄어만 가고 하나하나 버려야 하는 순간들이 오래 된 빚쟁이처럼 다가온다. 석양 길을 걸어가는 내 발자국 소리에도 내 가슴이 아르르 저며 온다. 일생의 영욕이나 ..

나의 창작시 2020.05.27

보리수 나무

보리수나무 헉헉대며 오르는 절골 언덕에는 보리수 몇 그루 마주보며 지껄인다. 갈참나무 숲 사이에 외로이 서서 히끄무레한 꽃잎 진한 향을 내뿜으며 가녀린 바람에 여린 팔을 흔든다. 태생적 잡목의 운명이지만 나름 스스로 갈고 다듬어 소탈한 모습으로 삼림의 구색을 맞추어 존재감을 드러낸다. 인동 초 몸을 꼬며 기어오르고 찔레꽃 어설프게 바람에 나부끼는데 보리수나무는 의젓이 서서 하늘만 본다. 거목(巨木)의 꿈을 일찍 접고 겸손하기로 다짐할 때 오히려 단단했다. 바람에 심하게 흔들릴 지라도 강한 의지는 쉽게 꺾이지 않았다. 화려함이나 누구의 이목을 집중시킬 흠모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해도 고유한 자기 빛깔을 내며 사는 철학이 있다. 여기저기 키 작은 묘목이 쳐다보고 종목(種)木)은 꺾일 줄 모르는 의지가 있다...

나의 창작시 2020.05.26

비오는 날의 상념

비오는 날의 상념 오늘 또 비가 내린다. 주차장 곁 마로니에 나무는 연실 빗물을 털고 지고 있던 꽃잎이 무거워 스러진다. 아파트 발코니에서서 바라만 볼 뿐 나는 도와 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우산을 든 아이는 나무 밑을 걸어가고 우비를 입지 않은 여자가 어디론가 뛰어간다. 길고양이 한 마리는 배가 고픈지 울고 비에 젖은 비둘기 두 마리가 웅크리고 앉아있다. 비는 아무도 구분하지 않고 내린다. 가림 막이 없으면 누구나 비를 맞는다. 어느 해 큰 비가 쏟아지던 해 불어난 강물에 동갑내기가 떠내려갔다. 그 아이 아버지가 물살에 뛰어들었지만 아들의 손은 붙잡고 나오지 못했다. 다른 해에 억수로비가 내리던 날 다리가 끊겨 나는 집에 갈 수 없었다. 강둑에 앉아 건너다보며 마냥 울기만 했다. 비는 고운 추억을 ..

나의 창작시 2020.05.25

세월(歲月)

세월(歲月) 각양각색의 나뭇잎들은 이전에 피었던 잎들을 기억하지 못한 채 흘러가는 시간 속에 자신 있게 일어서고 있다. 맞붙은 틈을 벌리고 시간을 들여다보면 고뇌하는 늙은이가 슬픈 표정으로 서 있다. 눈물이 흐르는 강을 거슬러 땀방울이 쏟아지는 꿀을 빨아먹으며 어느 너덜겅 끝자락에 이르러 노인은 한 그루 고사목 되어 눕는다. 시간은 세월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첫 울음을 터트리던 날부터 소리 없는 스톱워치가 입력되어 회전기기에 구동된 채 피댓줄에 감겨 돈다. 연년(年年)은 빙글빙글 돌고 일월은 정신없이 뛰다 초시계가 서면 피댓줄은 끊어져 튕겨나가고 늙은이는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찔레꽃 향기 옛 추억까지 싣고 오는데 입력 된 내 시간의 비밀이 무척 궁금하다. 2020.5.24

나의 창작시 2020.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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