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무정 텅 빈 하늘에 낮달이 떠 있고 어떤 뻐꾸기는 멀리서 울고 있었다. 뒷산 고운 선(線)은 여전했지만 그 때 푸르던 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매끈한 아스팔트위로 차들이 왕래하고 낯선 펜션들이 몫 좋은 자리에 간판을 걸었지만 나를 반겨줄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일렬로 서서 사열 받던 옥수수군단과 비탈 밭 일렁이던 자주 빛 감자 꽃 누렇게 익던 호밀 밭 풍경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오지만 볼록렌즈 두터운 안경을 써도 보이지 않았다. 흘러가는 냇물도 옛 물이 아니고 스쳐가는 바람도 그 때 그 바람이 아니었다. 내가 남긴 발자국들은 모르는 사람들이 밟아버렸고 내 마음에 담아놓은 고향을 누가 훔쳐버렸다. 그러나 흙은 그 때 흙이고 향긋한 시골향기는 아직 남아있었다. 앉아 놀던 칡소 바위에 걸터앉으니 함께 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