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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작시 1407

여행 추억(1)

여행 추억 초록 빛 아드리아 해를 넘어 여객기는 자그레브 공항에 내려앉았다. 6월의 판토니아 푸른 평원은 처음 보는 꽃들이 파도처럼 일렁이고 발칸반도의 총성은 멎은 지 오래지만 내전의 흔적들은 총알구멍에 남아있었다. 자그레그 성당에 들어서니 성상의 예수님이 나를 반겨주었고 이름 모름 어느 시골 밤하늘의 크로아티아 별들이 피곤한 나를 덮어주었다. 스플리트에는 구준 비가 분위기를 잡았고 로마황제 디오클레디아누스 궁전에는 역사의 슬픈 노래만 흘렀다. 플리트비체 천길 폭포는 함성을 자아냈고 호수를 따라 걷는 발길은 구름을 밟고 있었다. 두부르니크 반예 해변에는 아드리아 해의 진주가 반짝거렸고 고성(古城)의 곡선미는 내 영혼을 빼앗아갔다. 트로기르의 중세 거리를 지날 때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에 압도된 ..

나의 창작시 2020.06.13

회고(回顧)

회고(回顧) 돌이켜 보면 참 멀리 왔습니다. 연골(軟骨)이 퇴행되게 걸었습니다. 뒤돌아보면 당신과의 출발점은 아련하고 속 뇌에서 불꽃놀이를 해도 가물거리는 삶의 줄거리들이 가을마당에 붉은 고추처럼 널렸습니다. 산야는 여전히 의구(依舊)하지만 세상은 처음 본 강물이 흘러갑니다. 수고의 이파리들을 수없이 피웠지만 남아있던 잎도 어디론가 흩날리고 빈가지만 덩그러니 뻗어있어 새들의 숲이 내게서 멀리 사라졌습니다. 아직도 천근(千斤)다리를 끌고 가파른 고갯길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당신의 부축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당당히 여기는 내 마음은 떠밀려 살아 온 부유물 나그네가 아니라 붙잡히기보다는 자유로운 걸음으로 고난도 감내하며 자신을 단련 한 일은 당신이 이끌어준 오직 은혜입니다. 자귀나무 꽃 잎 닭 벼슬처럼 ..

나의 창작시 2020.06.12

발자국

발자국 그 날이 오리라. 틀림없이 그 날이 오리라. 마지막 발자국을 찍는 그 날이 첫 발자국을 첫돌쯤 내딛을 때 박수갈채를 받았는데 마지막 발자국 소리를 듣게 될 곳은 나에게 감추어진 비밀이지만 눈물과 슬픔 속에 멈추게 되리라. 그 동안 남긴 족적(足跡)들이 탄흔처럼 여기저기 박혀 있다. 선명한 발자국과 희미한 자국들이 명암과 희비를 드러내지만 그 날이 오기 전에 모두 지워버리리라. 가파른 길에서 미끄러진 자국과 황톳길 걸어간 붉은 자국까지 썰물 빠져나간 백사장처럼 지우리라. 종횡무진 족적을 남긴 내 발아 앞만 보고 무한 질주한 가랑이야 꿋꿋하게 버티어 준 무릎아 내 어찌 고마운 너희들을 잊겠느냐 하지만 나는 지워야 하리라. 내 뒤에 걸어오는 사람을 위해 그 사람이 남길 발자국을 위하여 내 지나온 자국을..

나의 창작시 2020.06.11

나그네 길

나그네길 길이 있어서 그 길을 걸었고 거칠었지만 뒤돌아서지 않았다. 길이 사라질 때면 처음부터 다시 걸었고 어떤 길은 내가 닦으며 걸었다. 길은 끝이 있다는 걸 처음부터 알았지만 그래도 나는 그 길을 걸어야했다. 그 길 어디에 당신이 서 있다는 걸 알았기에 지루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이제는 신발이 다 닳았고 바짓가랑이가 모두 헤어져 너덜댄다. 오는 길에 수많은 갈림길이 있어 골몰과 갈등을 반복했지만 당신이 보내 온 낡은 편지 한통에 오고 보니 짐작이 맞은 듯하다. 고무신, 운동화, 신사화, 군화, 센달 265밀리 신발이 헌신짝이 됐다. 발바닥에는 굳은살이 두껍게 박이고 발톱은 닳아 너덜대지만 아직도 길에서 당신을 만나지 못했다. 이 길 어디쯤에서 당신을 만나려나. 맨발이 돼야 당신을 만나려나. 나그..

나의 창작시 2020.06.10

마을 교차로에서

마을교차로에서 빨간 사람이 차렷 자세로 서 있다. 그 사람이 서면 나도 따라선다. 파란 사람이 걸어갈 때 나는 그 사람처럼 흰 무늬 선을 밟고 건넌다. 하얀 선 앞에 선 차들은 눈만 멀뚱거린다. 길가 프라다너스는 춤을 추지만 중앙분리대 매연 뒤집어 쓴 페튜니아 가엽다. 어린 아기가 마스크를 쓰고 엄마 손에 매달려갈 때 창백한 얼굴이 측은하기만 하다. 앰뷸런스가 소란스럽게 신호를 어기며 달린다. 사람들이 수군대기를 삼거리 빌라에서 코로나 확진 자가 발생했다 한다. 나는 갑자기 신경이 날카로워지면서 느슨한 마스크를 끌어올린다. 내 옆에 선 사람이 두렵고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이 미워진다. 동네 교차로 신호등의 지시를 율법처럼 지키지만 오늘처럼 지루한 시간은 처음이다. 바람이 내 쪽으로 불어올 때 나는 반사..

나의 창작시 2020.06.09

고독(孤獨)

고독(孤獨) 하늘 저편에 낮달이 떠있다. 머나먼 허공 장천(長天)에 오직 홀로 말 벗 하나 없이 기나긴 세월을 무슨 생각에 저토록 골몰하나. 밤이면 더욱더 외로이 칠야(漆夜) 삼경에도 여전히 홀로 등대 하나 없는 무한궤도에 고독을 흘리며 어디로 가는가. 다 떠나간 허전한 뒷자리에 돌아보니 나 홀로 우두커니 서 있다. 각기 제 갈 길로 흩어지니 외로운 가슴에는 찬바람만 분다. 해와 별들도 바라만 볼 뿐 달의 고독을 달래줄 수 없듯이 가슴을 파고드는 이 쓸쓸함을 어느 누가 가라앉혀 주리오. 길 잃고 헤매는 한 마리 사슴처럼 어떤 날은 맘껏 울고 싶다. 2020.6.8

나의 창작시 2020.06.08

잔인한 6월

잔인한 6월 봄과 여름의 중간지대에 와 있다. 할당 된 몫의 꽃들이 절반 이상 다녀갔다. 그 비릿한 밤꽃이 순서에 따라 피던 때 역겨운 꽃냄새 대신 비말(飛沫)이 무서워 중상자(重傷者)처럼 구비(口鼻)를 틀어막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나는 계절에 끌려간다. 6.25전쟁만큼이나 잔인한 올해 6월은 총성 없는 전쟁에 매일 초조하다. 대구에서 첫 교전으로 대승을 거둔 코로나는 전국 방방곡곡을 게릴라처럼 습격했다. 이태원 발 확진 자 숫자가 전상자 소식처럼 퍼지고 부천 쿠팡 발 확진자, 인천 개척교회 발 확진자, 신림동 방문판매 발 확진자 발표에 모여 앉은 여인들이 핏대를 높여가며 분노한다. 우한 발 코로나의 반란(反亂)은 치명적 무기로 5개월 만에 지구촌을 점령 했다. 나라마다 빗장을 걸어 잠갔지만 폐렴은 새앙..

나의 창작시 2020.06.07

시간(時間)

시간(時間) 시간은 피었던 꽃을 하나하나 지우며 알 수 없는 어디론가 이동한다. 내가 처음 하늘을 보던 날 아직 자아를 의식하지 못했지만 시간은 꽃을 지우는 대신 나를 조금씩 키웠다. 내가 이드(id)를 의식하던 날에야 나는 시간을 먹고 자란다는 걸 깨달았다. 육십만 사천사백 시간이 목구멍을 거쳐 엉덩이 사이로 술술 빠져나갔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마실지 모르지만 시간은 어느 정점을 지나는 순간 나의 몸을 더 이상 밀어 올리지 못했다. 생성과 소멸의 프로세스는 시간이 주무르는 오토메이션일까? 뒤엉긴 시간의 안개 속에서 나는 할당 된 시간을 강물에 던지지 않았다. 시간은 살아 있는 것들만 상대한다. 여름에 피는 꽃밭에 날개달린 생물을 보내고 장마 비 쏟아지는 한여름 밤에도 천문대 시계는 멈추지 ..

나의 창작시 2020.06.05

한 송이 페튜니아

한 송이 페튜니아 저 생명의 신비를 보아요. 아스팔트도로와 경계석 사이를 비집고 그 가느다란 꽃 대궁에서 해맑은 꽃이 활짝 웃고 있어요. 흙 한 톨 없는 포장도로 틈에서 허공에 던져진 운명을 딛고 치열한 삶의 몸부림으로 기어이 한 송이 꽃을 피웠어요. 그 모습 가냘프고 애처로워 차마 바라보기조차 눈물겹지만 억척같이 살아남은 강한 의지에 나는 가던 길을 잠시 멈추었다. 흙바람 일으키는 찻길 옆에서 저토록 애잔한 한 송이 꽃을 꼿꼿한 자태로 피워냈을까 찬연한 의지에 할 말을 잊는다. 2020.6.4

나의 창작시 2020.06.04

당신께 가는 길

당신께 가는 길 느티나무 우거진 숲길을 벗어나면 보랏빛 하늘에 무지개가 뜨고 붕어 떼 한가로운 연못가에는 나를 기다리던 당신이 서 있었지요. 생각이 복잡한 산새들은 종종 걸음을 걷다 자기들 숲으로 사라지고 흰 살을 드러낸 자작나무들만 도열한 채 우리를 바라보았지요. 내 영혼은 늘 가난하지만 당신에 대한 그리움의 촉을 세우고 끈적거리는 황토 진흙 길을 몇 번이나 넘어지면서 달려왔지요. 나에 대한 당신의 사랑이 수수께끼 정답보다 더 궁금했는데 환한 당신의 모나리자 빛 미소(微笑)에서 안도(安堵)의 한숨이 나오네요. 당신께로 달려가는 길은 하늘에 높은 사다리를 걸치고 한 칸 한 칸을 조심스럽게 내딛으며 귀곡잔도를 걷는 기분이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모자람이 없어요. 봄꿈에 부풀러 오르는 가슴처럼 당신의 사랑이 ..

나의 창작시 202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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