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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回想)
참 먼 길을 걸어왔다.
그 딱딱한 버덩길이 힘에 겨웠고
안개 낀 골짜기는 극도의 초조였다.
한 겨울 새벽 한강교를 건널 때는
마지막 자존심을 뽑아 강물에 던졌다.
숫한 서울거리에 나의 젊음을 깔았고
낮은 변두리 좁은 골목길에서
나의 영혼은 매일 눈물을 쏟으며 서 있었다.
수수가 붉게 익는 길가 밭에서
허수아비를 붙잡고 논 기억이 씁쓰름하다.
비온 후 무지개가 가슴에 서릴 때가
아마도 가장 행복한 설렘이었던 것 같다.
걸어 온 발자국을 트럭에 담는다면
이 세상 차들이 모자랐을 것이다.
들 노루처럼 어떤 비탈을 뛰어다녔지만
매일 뒤숭숭하고 조마조마 했다.
내가 가장 잘 한 일 하나는
모색(貌色)이 은은한 한 여인과 산일이다.
조문객이 저녁 길에 왕래하더라도
나는 아직도 내 영혼을 책속에 가둔다.
구준 비가 종일 내리는 날엔 회상이 어둡다.
20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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