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회상(回想)

신사/박인걸 2020. 5. 10.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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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回想)

 

참 먼 길을 걸어왔다.

그 딱딱한 버덩길이 힘에 겨웠고

안개 낀 골짜기는 극도의 초조였다.

한 겨울 새벽 한강교를 건널 때는

마지막 자존심을 뽑아 강물에 던졌다.

숫한 서울거리에 나의 젊음을 깔았고

낮은 변두리 좁은 골목길에서

나의 영혼은 매일 눈물을 쏟으며 서 있었다.

수수가 붉게 익는 길가 밭에서

허수아비를 붙잡고 논 기억이 씁쓰름하다.

비온 후 무지개가 가슴에 서릴 때가

아마도 가장 행복한 설렘이었던 것 같다.

걸어 온 발자국을 트럭에 담는다면

이 세상 차들이 모자랐을 것이다.

들 노루처럼 어떤 비탈을 뛰어다녔지만

매일 뒤숭숭하고 조마조마 했다.

내가 가장 잘 한 일 하나는

모색(貌色)이 은은한 한 여인과 산일이다.

조문객이 저녁 길에 왕래하더라도

나는 아직도 내 영혼을 책속에 가둔다.

구준 비가 종일 내리는 날엔 회상이 어둡다.

20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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