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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성(城)
내가 눈을 떴을 때
아버지는 가파른 성에 갇혀있었다.
요각(凹角)이나 철각(凸角)에서 봐도 산이었다.
하루 종일 햇볕이 성안에서 놀다가
저녁이면 긴 노을을 남기고 빠져나갔다.
밤이면 별빛 달빛만 나뭇가지에 걸리고
구름 낀 날이면 성안은 그믐밤이 되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자유로웠다.
밤이면 등잔불이 아버지 마음을 지켰고
두꺼운 돋보기는 혼자만의 세계를 보는 눈이었다.
그 돋보기는 성구(聖句)를 확대했고
성구는 노끈처럼 아버지 눈으로 들어갔다.
깊은 성에 갇힌 아버지의 도구는
낫과 도끼와 호미가 전부였다.
그 땅은 불안한 성이어서
사람들은 하나 둘 도망쳐버렸다.
나는 그 성(城)을 탈출하자고 부추겼지만
아버지 신념은 말뚝에 매어있었다.
고집 센 노인은 스스로 찾아 간 성을 좋아했고
거기서 결국 눈을 감았다.
그 성에는 사시사철 고운 꽃이 핀다.
나도 그 성에 갇히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20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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