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아버지의 성(城)

신사/박인걸 2020. 5. 6.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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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성(城)

 

내가 눈을 떴을 때

아버지는 가파른 성에 갇혀있었다.

요각(凹角)이나 철각(凸角)에서 봐도 산이었다.

하루 종일 햇볕이 성안에서 놀다가

저녁이면 긴 노을을 남기고 빠져나갔다.

밤이면 별빛 달빛만 나뭇가지에 걸리고

구름 낀 날이면 성안은 그믐밤이 되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자유로웠다.

밤이면 등잔불이 아버지 마음을 지켰고

두꺼운 돋보기는 혼자만의 세계를 보는 눈이었다.

그 돋보기는 성구(聖句)를 확대했고

성구는 노끈처럼 아버지 눈으로 들어갔다.

깊은 성에 갇힌 아버지의 도구는

낫과 도끼와 호미가 전부였다.

그 땅은 불안한 성이어서

사람들은 하나 둘 도망쳐버렸다.

나는 그 성(城)을 탈출하자고 부추겼지만

아버지 신념은 말뚝에 매어있었다.

고집 센 노인은 스스로 찾아 간 성을 좋아했고

거기서 결국 눈을 감았다.

그 성에는 사시사철 고운 꽃이 핀다.

나도 그 성에 갇히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20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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