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마을 교차로에서

신사/박인걸 2020. 6. 9. 15:04

마을교차로에서

 

빨간 사람이 차렷 자세로 서 있다.

그 사람이 서면 나도 따라선다.

파란 사람이 걸어갈 때

나는 그 사람처럼 흰 무늬 선을 밟고 건넌다.

하얀 선 앞에 선 차들은 눈만 멀뚱거린다.

길가 프라다너스는 춤을 추지만

중앙분리대 매연 뒤집어 쓴 페튜니아 가엽다.

어린 아기가 마스크를 쓰고 엄마 손에 매달려갈 때

창백한 얼굴이 측은하기만 하다.

앰뷸런스가 소란스럽게 신호를 어기며 달린다.

사람들이 수군대기를 삼거리 빌라에서

코로나 확진 자가 발생했다 한다.

나는 갑자기 신경이 날카로워지면서

느슨한 마스크를 끌어올린다.

내 옆에 선 사람이 두렵고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이 미워진다.

동네 교차로 신호등의 지시를 율법처럼 지키지만

오늘처럼 지루한 시간은 처음이다.

바람이 내 쪽으로 불어올 때

나는 반사적으로 가로수 뒤에 숨었다.

아름다운 6월 하늘이 어둡게 보이고

아는 이웃이 반갑지 않다.

달리는 차들만 아무것도 모를 뿐

교차로에 선 사람들 감정은 출렁거린다.

길거리에 나서는 일이 두렵다.

202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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