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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작시 1407

감자 밭

감자 밭 사방을 둘러보아도 산은 겹겹이 일어섰고 바람도 탈출하기 힘든 궁벽산촌에는 해마다 이맘때면 감자 꽃이 파도를 탄다. 한 여름에도 서늘한 내륙 분지에는 초록 빛 감자가 흙속에서 꿈을 키우고 쏟아지는 6월 햇살은 호박꽃을 피우지만 밭이랑에 앉아 구슬땀을 흘리던 어머니의 한숨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온다. 소가죽 보다 더 질긴 궁핍에 눌려 잔인한 세월을 연명(延命)으로 버티며 호미 날이 다 닳도록 흙을 파시던 어머니와 가난의 무게에 눌려 진학을 포기하고 몸무게보다 무거운 생계를 짊어졌던 마을 소년 소녀들의 눈동자가 감자 꽃에 맺힌 이슬방울처럼 어른거린다. 영동고속도로 차창으로 스쳐가는 진부 감자밭 풍경에 짙은 낭만이 흐르지만 설움과 눈물로 감자 꽃을 피우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굶주림의 ..

나의 창작시 2020.06.23

작은 행복

작은 행복 자귀나무 꽃 공작 깃털같이 나부끼고 밤꽃 비릿한 냄새 야릇한데 느티나무 사열한 둘레 길을 걷노라면 시달리던 내 영혼이 행복에 겹다. 나무 그늘은 장막처럼 드리우고 숲에 세척한 바람은 상쾌하기만 하여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날 흙 익는 냄새에도 잔뜩 취한다. 칡넝쿨이 마구 엉겨 붙어 보랏빛 꽃을 피우며 영토를 확장하고 때 죽 나무 꽃 진 자리에는 비밀스런 열매들이 곡예를 두려워 않는다. 혼탁한 대기에 둘려 쌓인 여름 산은 심(甚)한 감기 몸살을 앓아도 도심을 벗어난 나는 자유를 누린다. 두드러지게 말끔한 후박나무 한 그루 잡목들과 비교된 풍경에 고무된다. 두 사람에게 나는 많이 속았고 세 사람의 위선에 진저리가 났는데 거래가 없는 숲에서 영혼이 맑은 숨을 쉰다. 어머니 자궁만큼이나 고요한 평화가 ..

나의 창작시 2020.06.22

마로니에 나무 그늘

마로니에 나무그늘 칠엽수라 부르는 마로니에 나무가 아파트 정원에 넓은 파라솔이 된다. 지난 가을 탱탱 여문 열매를 깨물 때 그 씁쓸한 맛에 단번에 뱉어냈지만 우아한 모습과 멋진 이름에 반한 나는 일본산이라지만 원죄를 묻지 않았다. 마로니에 그늘에 앉기만 하면 낙엽 지던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검은 눈썹의 껌뻑이던 그녀의 눈망울이 내 마음을 사로잡던 추억에 잠긴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잎이 흔들릴 때면 그녀의 고운무늬 치맛자락이 보이고 나뭇잎이 바람에 사각거릴 때면 소곤대던 그녀의 귓속말이 들린다. 누군가를 사랑한 고운 기억들은 세월이 지날수록 보석처럼 빛나고 어떤 날에는 가슴을 금빛 물감으로 물들인다. 이제는 그런 날이 다시 올 수 없겠지만 가슴깊이 묻어둔 젊은 날의 그리움을 아직은 꺼내 만지작거릴 ..

나의 창작시 2020.06.21

도고(禱告)

도고(禱告) 밤꽃이 피는 언덕에는 바람이 불고 내 마음은 나뭇가지처럼 조용하지 않았다. 청색 모자를 눌러쓰고 뒷산에 올라 뿌연 동네를 내려다보며 간절히 도고(禱告)한다. 그 손에 이끌려 들어온 이 도시에서 내 삶의 절반을 전제(奠祭)물로 살았다. 나의 간절함을 짓밟는 미워하는 눈동자와 목에 핏줄을 세우며 쏟아내는 외침을 애써 외면하는 낯빛에도 낙망하지 않았다. 나의 이름을 지저분한 발로 누르고 내 호소를 종이처럼 구겨 시궁창에 처박아도 태연한 미소로 얼굴을 붉히지 않았다. 초점 잃은 눈동자로 휘청거리는 사내들과 총명(聰明)을 잃고 밤새도록 배회하는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아이들이 떼창을 부르며 버리는 아까운 시간들을 날마다 쓸어 담으며 안타까워했다. 문질러 얼굴을 곱게 꾸민 계집들이 촘촘한 카페에 온종일 ..

나의 창작시 2020.06.20

금계국(金鷄菊)

금계국(金鷄菊) 뜨거운 여름의 천변(川邊)이 샛노란 금계국에 영토를 빼앗겼다. 파란 들판에 황금을 뿌린 듯 쏟아지는 햇살에 황홀하게 빛난다. 패랭이 꽃 보다 더 아름답고 가을 국화보다 더 찬란한 황금파도 출렁이는 꽃길을 걸을 때 나는 마음을 모두 도둑맞았다. 오직 한 가지 자신의 색깔로 불순물이 없이 살아가는 것이 내 꿈이었다. 때에 따라 색깔을 분명히 하며 흔들릴지도 꺾이지 않으려 다짐했다.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며 꽃처럼 아름답다 하길 원했다. 짧게 피어났다 금방 지더라도 고운 추억을 주는 사람이고 싶었다. 옛 임금의 황도(皇道)보다 더 휘황(輝煌)한 황금 길을 천사도 홀림 당할 황홀함에 젖어 나는 한 마리 나비가 된다. 2020.6.19

나의 창작시 2020.06.19

그 길

그 길 나 혼자 걷는 나만의 길이 있다.마음으로 걸어가는 불가견의 길이다.스스로 시작한 모험의 길이기에결코 후회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시작했다. 가시덤불 돋은 거친 광야(廣野)를필사의 각오로 행장(行裝)을 꾸렸지만호락호락하지 않아 난마(亂麻)처럼 갈등했다.겨울바다처럼 펼쳐진 험로(險路)에격렬하게 요동쳐도 스러지지 않았다.힘에 부칠 때는 돌베개를 붙잡았고넘어질 때면 주저앉아 울었다.소낙성폭우가 길을 모조리 지우던 날나침판을 잃고 안개 속을 헤맸다. 죄 값도 아닌 형극(荊棘)의 길을원념(遠念)을 곰삭히며 헤쳐 나가노라면그가 지고 간 골고다 길과는 견줄 수 없어오히려 송구함에 고개를 숙인다.나 아직 갈 길 아득한 메마른 길이지만 끝닿는데 까지 걸어야 하리.듬성듬성 돋은 가시를 지져 밟으며해 뜨는 쪽을 바라보며..

나의 창작시 2020.06.18

어머니의 눈물

어머니의 눈물 밤꽃이 필 무렵이면 자주 감자 꽃 비탈 밭에 출렁이고 흙먼지 자욱한 밭이랑에 앉아 삼베 적삼이 흠뻑 젖게 김매시던 어머니 뭉툭한 호미 끝으로 억센 잡초 뿌리 툭툭 털어 흙에 묻고 저린 가슴 신세한탄 슬픈 가락 읊조리며 여름빛에 까맣게 그을던 얼굴 춘궁기 배가고파 칭얼대는 자식업고 온 종일 고된 일에 곤드레 밥 배고프고 풋 감자 납작 보리밥 돌아서면 허기지고 또 배고파하던 낡은 앞치마 끈 졸라매고 베 길쌈 물레바퀴 설움을 돌리시며 한 많은 노랫가락 눈가에 맺힌 눈물 그 곱던 어머니 핏기 없던 얼굴 아 가련한 어머니의 세월 아 고달픈 여인네의 운명이여 피다가 떨어진 돌배나무 하얀 꽃처럼 서럽게 사라지니 뜸부기도 운다. 2020.6.17

나의 창작시 2020.06.17

삶의 반추

삶의 반추 이쯤에서 자신을 뒤돌아보니 눈에는 안 보여도 기억에는 보인다. 전방(前方)응시는 매 눈이었으나 후방 관찰은 박쥐 눈이었다. 삐뚤거리며 살아 온 허점투성이의 걸음을 짚어보기조차 민망해 얼굴을 붉힌다. 어떤 발자국들은 지우고 싶고 세워놓은 탑(塔)들은 모조리 허물고 싶다. 먹잇감을 찾아 포유동물처럼 체면 없이 강동강동 뛰어다녔다. 기와집 다섯 채를 구름위에 지어놓고 고층 빌딩을 강물위에 세우며 살아왔다. 나는 벌거숭이 두더지가 되어 어두운 세계를 헤집고 파내내면서 내 젊음은 냉장고에 급속 냉동시켜 시간의 침투를 불승인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전원이 끊겨있어 내 얼굴은 이미 임계 치를 도둑맞고 누에 번데기들이 스물 거린다. 주름살이 거미줄처럼 화망구성 되어 연한의 종점 직전에서 서성인다. 애당초에 잠..

나의 창작시 2020.06.16

여행추억(3)

여행추억(3) 사라예보에서 울린 총소리로 세계 1차대전이 발발한 장소에 나는 서있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라틴 다리를 건너던 때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당긴 방아쇠에 프란츠 페르디난트 부부는 볏단처럼 쓰러졌단다. 프린치프의 권총은 유럽을 불구덩이 몰아넣었고 이권과 감정에 엉겨 붙은 세계 1차 대전은 1천 만 명의 영혼이 황천길로 가게 했다. 1992년 세르비아군대와 맞서 싸웠던 보스니아 청년들의 혈흔이 벌집 같은 탄흔에 고여 있고 내전(內戰)의 상징인 스타리모스트 다리는 그날의 아픔을 간직한 채 말이 없다. 인종청소의 피비린내 나던 네레트바 강물은 과거를 덮은 채 아름답게 흐르지만 강 양편의 이슬람과 기독교 세력의 갈등은 날선 도끼만큼이나 날카로웠다. Bosnia and Her..

나의 창작시 2020.06.15

여행 추억(2)

여행 추억(2) 슬로베니아의 6월은 천국 아랫마을이다. 하늘에는 푸른 유리바다가 출렁이고 담숭담숭한 가로수 잎에는 태양 빛이 앉아 논다. 영롱한 에메랄드 빛 블레드 호수에는 고기떼가 원죄 없는 자유를 누리고 방금 결혼한 청둥오리 한 쌍이 진한 애무로 신혼여행을 즐긴다. 그림으로 보던 알프스 전경에 소스라칠 때 어릴적 듣던 예배당 종소리가 추억을 되살린다. 호수 가운데 그림 같은 예배당 뜰에는 예수 성상이 인자한 웃음을 띠고 작은 예배당에 들어서자 내 집 같아 평온하다. 절벽 위 중세 성에는 어느 영주의 탐욕이 배어있고 로마네스크 양식의 완전한 석암 요새도 영주의 생명을 지켜주지는 못했다. 동양 나그네는 카르스토 동굴 행 열차에 올라 석순과 종유석 숲을 헤치며 달렸다. 기기묘묘한 지하세계는 고대 황제의 별..

나의 창작시 2020.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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