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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작시 1407

정류장에서

정류장에서 서울 시청 앞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보슬비 내리는 정류장에는 전봇대 휘감고 오른 능소화가 요염하고 때마침 내리는 여름비는 아스팔트의 찌든 먼지를 핥아갔다. 붕붕대는 승용차들은 약을 올리듯 달아나고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들은 간대미 사거리 방향을 연실 기웃거린다. 마스크로 입과 코를 가린 사람들은 서로를 경계의 눈으로 주시하며 아무 말 없이 자유롭게 길표 앞에 서있다. 타고 내리고, 또 타고 내리고 그러고 보니 이 세상은 가고 오는 정류장이다. 흘러가는 시간을 타고 어디론가 쓸려 간다. 내 차례가 다가오면 누구나 가야한다. 나를 실은 버스는 최종목적지로 가고 내가기다리던 정류장에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또 기다릴 것이다. 내 인생의 마지막 버스는 어디쯤 오고 있을까. 보슬비가 지금은 굵은 비로 바..

나의 창작시 2020.07.05

반추(反芻)

반추(反芻) 잠이 오지 않는 날에는 삶을 반추 하는 버릇이 있다. 나의 중세(中世)에는 거친 사막을 걸었고 불 뱀을 만나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내가 감당하기 버거운 강적(强敵) 앞에서 맨손으로 덤벼들어야 했고 나는 그 날 이후 기적이 있다는 걸 믿는다. 도망치다 지친 몸으로 어느 깊은 동굴(洞窟)에 오로지 홀로앉아 며칠을 울었다. 얼어붙은 나뭇가지에 반달이 걸려 떨고 고독에 지친 별들도 허공을 뛰어 내릴 때 절망한 영혼은 생환(生還)을 간절히 구했고 기묘자의 손이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나는 한 마리 새가 되어 축지법 없이 큰 산과 더 큰 산을 넘었고 오아시스 없는 사막에서 꽃을 꺾었다. 나의 중세는 처절한 암흑기였지만 환희(歡喜)의 체험 이후 광명기로 바뀌었다. 우주론적 논증과 목적론적 논증 도..

나의 창작시 2020.07.05

나에게 쓰는 편지

나에게 쓰는 편지 오늘은 내가 나에게 편지를 쓴다. 고향 탈출 반 백년세월에 세상이 열 번 변했다. 비포장 뽀얀 먼지 길은 고속도로가 놓이고 산을 뚫어 뻗은 도로는 하룻길을 단(短)시간으로 줄였다. 굽이굽이 넘던 고갯길은 추억에 묻히고 초라한 길옆 오막살이 종적을 감춘 지 오래다. 금강운수 직행버스에 두 살 아들, 아내와 나는 그 해 2월 눈 쌓인 아홉사리고개를 넘었다. 미래를 향한 모험(冒險)은 몸짓을 굳게 했지만 희망을 향한 도전으로 맘을 바꿀 때 공중을 나는 한 마리 행복한 새였다. 고단한 서울 생활은 매일 지치게 했지만 가슴속에 담은 꿈이 있어 심장이 달궈져 있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고난의 길을 걸어가려 강산이 몇 번 변할 세월을 학문과 씨름하고 자주색 금색 술이 달린 박사모를 쓰면서 울먹였다...

나의 창작시 2020.07.04

후회(後悔)

후회(後悔) 그날 나는 본심(本心)을 잃었다. 앞뒤를 가리지 않고 쌓였던 감정이 폭발했다. 여러 번 인내할 것을 다짐했는데 꼭지 부러진 수돗물이었다. 입에 술을 대본 적 없는 나였지만 그날은 독한 술에 취한 듯 퍼부었다. 나의 그런 모습에 더러는 실망의 눈빛으로 혹은 동정의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어떤 부류의 싸늘한 눈총과 의도적인 거부가 내 마음에 낡은 서적처럼 포개졌었다. 낭떠러지로 나를 밀어낼 때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순간이었다. 어쩌면 그날 내 얼굴에 선 핏대는 추락하지 않으려는 절규였을 것이다. 내가 정을 주지 않은 사람이었다면 차라리 그가 내 원수(怨讐)였더라면 나는 분노를 꾹꾹 눌렀을 것이다. 하지만 이내 나는 깊게 후회(後悔)했다. 그것까지 참는 것이 옳았는데 젊을 때 덜 여물었던 내 모습에..

나의 창작시 2020.07.02

한 여름 숲에서

한 여름 숲에서 상수리나무 어우러진 숲에는 뻐꾸기 뚜엣이 긴 여운을 남기고 산나리 꽃 외로이 핀 산등성에는 뭉게구름 한가롭게 떠 있다. 짙은 색깔의 잎 새들 사이로 여름 햇살이 간신히 비껴들고 지향 없이 달려온 골바람도 여름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맨다. 이파리 빈틈없이 채워진 숲에는 포만감과 자긍심이 충만하고 싱그러운 생풀들의 짙은 향기가 향수 원액(原額)보다 농농하다. 젊은 시절의 활화산 같던 내 꿈은 물푸레나무 진액보다 더 끈적였고 뜨겁게 달구던 청춘의 사랑은 쪽 동백나무 잎보다 더 푸르렀다. 숲은 사춘기처럼 풋풋한데 노인은 병든 잎처럼 시들어가니 불끈불끈 일어서는 나뭇가지 아래서 고독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2020.7.2

나의 창작시 2020.07.02

우기(雨期)의 감정

우기(雨期)의 감정 6월과 7월의 출렁다리위로 시간이 살금살금 기어 건넌다. 어젯밤에 시작한 장맛비는 내 가슴에 눌어붙은 부유물까지는 말끔히 후벼 파내지 못하고 있다. 위로받지 못한 메마른 감정은 별 없는 하늘처럼 오늘도 흐려있고 먼지바람 일어나는 사막 같아 긴 목마름에 울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누적된 그리움은 켜켜이 쌓아 올린 벽돌 담 같이 가슴속에 하나의 성(城)이 되어 세찬 장맛비도 허물지는 못한다. 온종일 퍼부은 강수량은 발목에서 무릎위로 차올라서 말라죽어버린 내 감정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면 좋겠다. 2020.6.30

나의 창작시 2020.07.01

독경(讀經)

독경(讀經) 죽은 자들과의 만남은 경건하다. 비대면 대화이지만 면대면 이상으로 진지하다. 테이블에 앉아 활자 속에 걸어간 궤적을 면면히 살필 때면 초인(初人)의 얼굴이 보인다. 뱀의 감언이설에 홀딱 속아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선악과 꼭지를 상기된 얼굴과 떨리는 손으로 따던 이브의 심장소리가 들린다. 아무 말 없이 아내가 건네준 열매를 한 입 베어 물다 목구멍에 걸린 아담이 게워내며 왈칵 울던 양심도 보인다. 남용 된 자유가 짊어지울 죄의 벌이 두려워 벌거벗은 몸을 풀잎으로 가리며 신(神)의 낯을 피해 숲속으로 도망치던 원조(元祖)인간의 발자국을 나는 따라간다. 짙은 나무그늘보다 더 검은 그늘이 원죄(原罪)인간얼굴에 길게 드리웠다. 원망과 회한이 뒤섞인 눈빛에는 이제부터 일어날 비극이 고이기 시작한다. 죄가..

나의 창작시 2020.06.27

나의 소원

나의 소원 총구가 불을 뿜고 수류탄이 참호를 뒤집어엎으며 전투기가 지축(地軸)을 뒤 흔들 때 나는 어미 품에 잠들었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친족 더러는 전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더러는 불귀(不歸)객 되었어도 내 부모는 간신히 살아남았다. 나 어느덧 현거(懸車)가 되어 지난 세월을 뒤돌아보니 내 나라 내 강산이 자랑스럽고 이 땅에서 살아가니 큰 은혜이다. 조국 위해 산화한 꽃다운 목숨 자식을 나라에 헌신(獻身)한 우리 부모 피 흘려 이 땅을 지켜낸 덕에 나 한 평생(平生) 편히 살아 왔으니 나라위해 나 무엇을 할까. 조국위한 내 소원은 무엇일까. 휴전선이 사라져 하나가 되고 삼천리금수강산이 회복되는 것이라. 2020.6.26

나의 창작시 2020.06.26

고해(苦海)

고해(苦海) 잠시인들 잠잠하랴 미친바람 일어나 물결 솟구치니 나 편히 쉴 곳 어디 메랴 구름은 허공에서 한가롭고 밤별 소근 대던 때에도 만리 해(海) 끊임없이 사나웠네라. 전(前)에도 불안에 휩싸여 뒷기약 장담 못하였더니 오늘도 파도는 삼키려 덤벼드네라. 시야가 파묻힌 사경(四更)엔 절망의 그림자 더욱 드리우니 고독한 배 한척 몹시 가여우네라. 당황한 사공 희망은 어디메뇨 오직 하나 등대(燈臺)이니 고해에서 빛을 찾아 헤메이네라. 2020.6.25

나의 창작시 2020.06.25

혹서(酷暑)

혹서(酷暑) 아직 장마가 오지 않았다. 찜통더위에 가로수가지가 늘어지고 바람마저 놀라 달아나버렸다. 끓을 것 같이 달궈진 아스팔트 위를 마찰음에 비명을 지르며 자동차들이 달린다. 내 젊은 시절 격렬했던 꿈들은 길들이지 않은 야생마처럼 뜨거운 가슴으로 종횡무진하며 한 겨울에도 한증막 같았는데 그 열정은 백발과 함께 종적을 감췄다. 간단없이 달려 온 먼 길에서 일말의 후회 없이 젊음을 불태우며 어떤 때는 어금니를 악물고 물구나무서기로 여울목을 건넜다. 열사(熱沙)의 땅을 맨발로 지저 밟고 혹한의 벌판에서 주저앉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방망이질 하던 꿈들도 영화 화면처럼 까뭇이 사라졌다. 활화산같이 타오르던 열정(熱情)도 재만 남은 바닷가 모닥불이다. 혹서(酷暑)는 세상에 불을 지르는데 봉력(鳳曆)은 가슴에..

나의 창작시 202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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