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잔인한 6월

신사/박인걸 2020. 6. 7. 18:19
반응형

잔인한 6월

봄과 여름의 중간지대에 와 있다.

할당 된 몫의 꽃들이 절반 이상 다녀갔다.

그 비릿한 밤꽃이 순서에 따라 피던 때

역겨운 꽃냄새 대신 비말(飛沫)이 무서워

중상자(重傷者)처럼 구비(口鼻)를 틀어막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나는 계절에 끌려간다.

6.25전쟁만큼이나 잔인한 올해 6월은

총성 없는 전쟁에 매일 초조하다.

대구에서 첫 교전으로 대승을 거둔 코로나는

전국 방방곡곡을 게릴라처럼 습격했다.

이태원 발 확진 자 숫자가 전상자 소식처럼 퍼지고

부천 쿠팡 발 확진자, 인천 개척교회 발 확진자,

신림동 방문판매 발 확진자 발표에

모여 앉은 여인들이 핏대를 높여가며 분노한다.

우한 발 코로나의 반란(反亂)은

치명적 무기로 5개월 만에 지구촌을 점령 했다.

나라마다 빗장을 걸어 잠갔지만

폐렴은 새앙 쥐처럼 성문을 뚫고 들어갔다.

2차 세계대전만큼이나 지루한 전쟁은

종전(終戰)의 예측이 오리무중이다.

그 고운 꽃잎이 천만송이 바람에 흩날리고

제 모양대로 생긴 나뭇잎들은 엽록소를 발산하는데

오만한 인간들만 바이러스에 쫓기고 있다.

걸어오는 사람마다 나에겐 적이다.

기저질환에 약봉지를 든 나는 한 방에 간다.

명분 없는 죽음이 가장 두려워서

오늘도 나는 비겁하게 몸을 숨기고 있다.

지루한 여름 장마까지 다가온다니

내 생애에 가장 인정 없는 6월일 것 같다.

2020.6.7

반응형

'나의 창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을 교차로에서  (0) 2020.06.09
고독(孤獨)  (0) 2020.06.08
시간(時間)  (0) 2020.06.05
한 송이 페튜니아  (0) 2020.06.04
당신께 가는 길  (0) 2020.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