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시간(時間)

신사/박인걸 2020. 6. 5.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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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時間)

 

시간은 피었던 꽃을 하나하나 지우며

알 수 없는 어디론가 이동한다.

내가 처음 하늘을 보던 날

아직 자아를 의식하지 못했지만

시간은 꽃을 지우는 대신 나를 조금씩 키웠다.

내가 이드(id)를 의식하던 날에야

나는 시간을 먹고 자란다는 걸 깨달았다.

육십만 사천사백 시간이 목구멍을 거쳐

엉덩이 사이로 술술 빠져나갔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마실지 모르지만

시간은 어느 정점을 지나는 순간

나의 몸을 더 이상 밀어 올리지 못했다.

생성과 소멸의 프로세스는

시간이 주무르는 오토메이션일까?

뒤엉긴 시간의 안개 속에서

나는 할당 된 시간을 강물에 던지지 않았다.

시간은 살아 있는 것들만 상대한다.

여름에 피는 꽃밭에 날개달린 생물을 보내고

장마 비 쏟아지는 한여름 밤에도

천문대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내 호주머니에는 시간을 잠글 자물쇠가 없다.

양손을 묶인 채 어찌할 도리 없이

시간이 걸어놓은 목줄에 끌려갈 뿐이다.

태양은 작년처럼 내 머리위에서 졸며

아픈 심장을 사정없이 단축시키고 있다.

아직 내 시간의 잔고(殘高)는 모른다.

202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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