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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작시 1406

겨울 길목

겨울 길목 선홍빛 단풍이 허물어지고 찬 서리에 주저앉은 국화 가엽다. 뒹구는 은행잎 가련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마지막 한 잎 불안하다. 시간은 총알처럼 빠르고 젊음도 순식간에 사라져가니 기대며 살아온 세월 덧없어 깊은 고독이 정수를 타고 오른다. 나는 오로지 너만 사랑했고 너 또한 나만 바라보며 살아왔는데 겨울로 가는 길목에 서니 밟히는 낙엽 같아 많이 서럽다. 너는 언제나 피어오르는 꽃이었고 조석으로 지저귀는 새였는데 너와 나의 눈썹에 백설이 가득하니 인생의 덧없음에 슬프다. 하지만 나는 주저하지 않으리. 겨울이 올 테면 얼마든지 오라하라. 흰 눈이 퍼부어도 떨지 않으리라. 2020.11.16 ​

나의 창작시 2020.11.16

가을 나그네

가을 나그네 아름다웠던 시간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달밤에 떨어지는 오동잎 되어 가을이 사리진 땅으로 걸어가리라. 무수한 잡념과 고뇌들이 내려놓지 못한 짐을 끌어당기지만 갈색 고운 단풍잎처럼 환하게 미소 지으면서 떠나가리라. 가다보면 내 발길은 거칠고 추운 지대를 만날지라도 천천히 걷는 짐승 한 마리 빌려 타고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리라. 납덩이같은 침묵이 내려앉고 가파른 언덕이 흰 눈에 덮일지라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소리에 내 영혼을 깨우며 달려가리라. 봄을 기다리는 나비 유충과 가지 끝에 움츠린 꽃망울처럼 겨울잠 자는 짐승을 불러 깨우며 나는 차가운 지대로 들어가리라. 2020.11.6

나의 창작시 2020.11.15

그해 겨울 밤

그해 겨울 밤 거칠게 부는 겨울바람에 뒤뜰에 뻗은 산사나무가지가 귀신소리를 낼 때면 무서웠다. 윗방 낡은 문틈으로 바람이 새면 문풍지는 늙은 목소리로 울고 아이는 두려움에 엄마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양말을 꿰매시던 어머니는 나를 먼 꿈나라로 데려가곤 했다. 그해 겨울 목침을 밴 아버지가 구슬픈 은율로 류충렬전을 읽을 때면 한(恨)이 구슬꿰미 같던 어머니는 옷소매로 연실 눈물을 훔쳤다. 무말랭이를 간식으로 먹었어도 가난이 서러운 줄 몰랐던 아이는 서울에는 초콜릿이 있는 줄 몰랐다. 제풀에 죽은 바람이 어디론가 떠나고 장작불에 구들장이 달아오르면 낡은 이불로 벗은 발만 덮어도 긴긴 겨울밤은 어머니 품만큼 따스했다. 이제 내 아버지보다 더 늙은 나는 아직도 그 해 겨울밤에 갇혀있다. 오늘밤은 별들이 바람에 스..

나의 창작시 2020.11.12

단풍(丹楓)

단풍(丹楓) 을수 골짜기를 지나던 날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소스라쳤다. 가지마다 훨훨 타오르는 꺼지지 않는 불빛에 발길이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자기들끼리 모여 사는 아나 뱁티스트들처럼 오로지 하늘만 향해 살아서인지 장미꽃보다 더 붉다. 절망에 빠진 친구를 위해 천만리 길을 단숨에 달려와 제 심장을 찔러 제단에 바친 젊은이의 피만큼 뜨겁다. 정적을 깨는 여울물소리와 떼 까치도 날개를 접은 시간 석양 햇살에 잠긴 단풍은 나를 피안(彼岸)의 땅에 세운다. 2020.11.11

나의 창작시 2020.11.11

풀잎 단풍

풀잎 단풍 나뭇잎만 단풍이 드는 줄 알았는데 풀잎에 든 단풍도 곱다. 밟히거나 스러지면서 살았어도 자홍빛 이파리들 새뜻하다. 허술한 지대에서 버티며 살아도 흙냄새 맡으며 산 사람은 아름답다. 허름한 옷에 찬바람이 술술 스며들고 낡은 신발에 고단함이 베었어도 하루 일당에 만족하며 골목길을 걷는 어떤 노동자의 발자국에도 보람이 가득가득 고인다. 시선이 닿지 않는 정수리의 삶이라고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니다. 풀잎처럼 뜯기고 찢기고 부러지며 애환과 눈물을 머금고 살아도 결코 두 마음을 품지 않고 겉 다르고 속 다르지 않게 살아온 삶은 풀잎처럼 곱게 익더라. 자신이 흘린 눈물에 자기가 익어 삶은 삼대처럼 향기 물신 풍기는 풀잎 단풍이 올 가을에는 유난히 짙다. 2020.11.10

나의 창작시 2020.11.10

늦가을 산

늦가을 산 산은 조용히 일어서 있고 옷 벗은 나무들 홀가분하다. 어저께까지 황홀하게 빛났으니 이별 앞에 슬퍼할 수는 없다. 바람마저 멀리 도망친 숲에는 너부러진 낙엽들이 눈부셔서 나는 네가 내 곁에 있지 않아도 하나도 쓸쓸하지 않다. 어차피 그 날이 오면 나는 혼자 걷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때에 꽃은 처연(悽然)한 그림자만 남기고 붉은 단풍은 종소리처럼 흩어지며 나는 외로운 눈물을 흘릴 걸 짐작했다. 가을 산이 공림(空林)으로 변할 때면 나는 아랫배에 살며시 힘을 주고 두 주먹 사이에 몽사(蒙死)를 각오했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날이 왔다. 새파랗던 시절의 달아오르던 사랑도 녹슨 나뭇잎처럼 사라지고 둘둘 말려 떠나가는 저녁노을에 그리움마저 휩쓸려 높은 산등성을 넘는다. 어둠이 구릉지로 걸어올 때 ..

나의 창작시 2020.11.09

소멸의 길

소멸의 길 흔들지 않아도 나뭇잎이 떨어진다. 소멸의 길을 찾아가는 존재는 슬프다. 각자 살아 온 뒤안길에는 털어 놓을 수 없는 무수한 사연들이 쌓인 낙엽만큼 많지만 모든 것을 고백할 수는 없다. 그래서 가슴은 누렇게 병이 들었고 어떤 명치끝은 빨갛게 타들어갔다. 나는 그 사연들을 밟고 지나간다. 아픔은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사정(事情)을 하소연고 싶어 하지만 나는 귀를 기울일 겨를이 없다. 내 속에 긁힌 상처도 많아 들어 줄 여유가 없다. 차라리 나도 낙엽이 되어 비탈진 어느 산기슭에 조용히 눕고 싶다. 바람이 술술 새는 숲 사이로 지나온 벽경(僻境)을 훔쳐보고 싶다. 고단하게 살아 온 이야기들을 엮어 예순 아홉 자 높은 나뭇가지에 걸고 싶다. 마침 구름이 바람을 몰고 왔고 바람은 지고 싶어 하는 잎들..

나의 창작시 2020.11.08

지는 잎

지는 잎 이른 봄 새순은 봄추위에도 꺾이지 않았다. 한 여름 지루한 더위에도 입술을 깨물며 가지를 붙잡았다. 자 벌레에 갉아 먹혀 앙상한 뼈마디로 달빛이 스며도 본분을 위해 자기 자리를 지켰다. 여름 가뭄에 목이 말라 빗물을 기다리다 까무러쳤어도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얼굴 빛 하나 변치 않았다. 다섯 번의 태풍이 쉴 새 없이 때려도 단단해 질 뿐 스러질 수 없었다. 대장장이 망치가 붉은 쇠를 때릴 때 비명을 지르며 그릇이 되듯 곱게 익은 단풍잎에서 상감청자 칠보무늬를 본다. 풍상을 이긴 후 스스로 지는 잎에서 꽃 보다 진한 향기가 퍼진다. 2020.11.7

나의 창작시 2020.11.07

가을 밤비

가을 밤비 자정 무렵 비가 내린다. 일부러 낮을 피해 잠들지 않은 나를 위하여 비는 깊은 밤에 내리나 보다. 오동 잎 뚝뚝 떨어지고 단풍잎 바스락거리며 뒹굴 때 쓸쓸함에 잠겨 우울했는데 밤비는 내 가슴을 어루만진다. 이런 밤에는 쏟아지는 비에 흠뻑 젖어 낮에 떨어진 은행잎을 밟으며 어둔 밤길을 혼자 걷고 싶다. 발길 닿는 곳까지 하염없이 걷고 또 걸으며 차갑게 내리는 빗물에 영혼의 소리를 섞어보고 싶다. 나만이 간직한 깊은 사연을 빗소리에 맞춰 중얼거리며 지우지 못한 서러움까지 낙엽처럼 훌훌 털어내고 싶다. 2020.11.6

나의 창작시 2020.11.06

가을에 내리는 눈

가을에 내리는 눈 가을 나무에서 눈이 내린다. 노란 색, 빨간 색, 황갈색 눈이 내린다. 며칠 동안 내리는 가을 눈은 산과 들에 지천으로 쏟아진다. 내가 사는 아파트 주차장에도 쏟아지고 코로나로 지친 사내의 가슴에도 쌓인다. 그 해 가을 새빨간 단풍이 쏟아질 때 고운 내 어머니는 눈물 뚝뚝 흘리시며 ‘가을에 내리는 오색 눈은 그리움을 안고 내린다.’하시었다. 그 때 걷던 그 산길을 곱게 쌓인 낙엽 밟으며 걸어갈 때 그리움 안고 내린다던 오색 단풍잎이 그 때처럼 내 가슴으로 쏟아진다. 오늘은 어머니가 많이 그립다. 2020.11.5

나의 창작시 20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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