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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작시 1406

가을도 간다.

가을도 간다. 아파트 그림자가 한낮인데도 공원 전부를 점령한 채 퇴각하지 않는다. 참수를 당한 마로니에 나무는 황갈색 피를 뚝뚝 흘리며 죽어간다. 머리 빠진 모과나무는 몇 개의 알을 품고 미친 여자처럼 몸을 흔든다. 척추를 앓다 이사 온 소나무들이 황달에 걸려 옆으로 눕고 있다. 주차장에 사납게 뒹구는 가을 쓰레기들은 알맹이는 빼먹고 버린 껍질들이다. 빨갛게 익은 단감나무아래 얼굴을 알 듯 한 두 여자가 마주서서 무슨 말인지 지껄이는데 가을 무늬가 원피스를 도배했다. 단풍잎 떠내려 오던 시냇물에 맨손으로 빨래하던 어머니 차가운 손으로 냇가에 피운 모닥불에 구운 고소한 강냉이 먹던 가을이 떠오른다. 가을 기온을 태양이 무섭게 빨아드리고 밤이면 별들은 찬 공기를 내뱉는다. 한 해살이 풀들은 화단에 누우며 짧..

나의 창작시 2020.11.04

분신(焚身)

분신(焚身) 꽃 보다 더 아름다운 단풍잎이 차가운 바람에 흐느끼며 울고 있다. 간신히 붙잡은 가지가 흔들릴 때면 안간힘을 다해 지금껏 버티었지만 비온 뒤 아침부터 한 잎 두 잎 여윈 슬픔에 훌훌 뛰어내리고 젖은 가랑잎 흙에 엎드려 다시 한 번 진한 눈물을 땅에 묻는다. 지난봄부터 오직 한 마음으로 기진맥진하더라도 정성을 다해 보람을 퍼 먹으며 견디어 온 세월 찬바람에 버틸 수 없어 잡았던 손아귀에 힘을 접었다. 뛰는 심장을 하늘에 걸고 피보다 더 붉게 살리라 다짐 한 세월 온 몸에 새빨갛게 불을 지른 후 무엇을 위해 분신(焚身)하니 장엄하다. 오로지 무엇을 위해 그 길을 간다면 분신도 의로운 죽음이니 숭고하다하리. 2020.11.3

나의 창작시 2020.11.03

방황하는 나그네

방황하는 나그네 갈 빛 낙엽이 지는데 뒹구는 가랑잎이 버석거리는데 엉성하게 붙어 있는 나뭇잎 초조한데 서산 노을은 붉게 물듭니다. 가을 향기 진동하는데 끝물 보랏빛 구절초 출렁이는데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데 길 잃은 나그네 심란(心亂)합니다. 무서리 사정없이 내릴 텐데 코스모스 꽃잎 무참히 짓밟힐 텐데 짝 잃은 기러기 헤매일 텐데 가을은 깊어만 갑니다. 세 갈래 갈림길이 뻗어 있는데 나침판 잃은 나그네 어이합니까? 날은 점점 기울고 발걸음 무거우니 텅 빈 가슴 달그림자만 깃듭니다. 돌아갈 길은 벌써 문이 닫혔고 옆길은 너무 가파르고 곧장 그 길로 걸어가야 하는데 이제는 너무나도 지쳤습니다. 나, 이쯤에서 가던 길을 멈추렵니다. 2020.11.1

나의 창작시 2020.11.01

가을 슬픔

가을 슬픔 버려진 낙엽이 즐비하다. 진물단물 다 빨아먹고 쓸모없으니 내동댕이쳐졌다. 컨베어벨트 라인 박스에 앉아 동일한 유니폼을 철따라 갈아입고 낮이면 작열하는 태양아래 밤이면 오로지 별을 헤아리며 쉴 새 없이 일한 대가가 화장실 휴지조각 취급이다. 붉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천덕꾸러기 신세로 뒹구는 가랑잎들의 슬픔이 쌓여만 간다. 일시에 버림받은 낙엽들은 어디론가 바람결에 몰려간다. 잎 진 가지보다 더 쓸쓸한 오솔길에 붉은 노을마저 슬픔을 쏟아 부을 때 코로나 19에 해고당한 어떤 가장의 얼굴이 떠오른다. 2020.10.31

나의 창작시 2020.10.31

추색(秋色)

추색(秋色) 붓 없는 색칠에 산은 짙어만 가고 소리 없는 음향은 귀 있는 자만 듣는다. 바라본 뫼부리 경외감마저 느껴지지만 추색(秋色) 짙은 10월도 저문다. 한 시절 살아온 인생(人生)이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의 숲을 헤집으며 들 노루 마냥 뛰어 다니다보니 석양빛이 깊은 발자국에 가득 고인다. 앞마당 베고니아 붉은 꽃잎에 늦 나비 한 마리 가엽게 나풀거릴 때 다가올 운명의 시간을 못 읽는 어떤 노인 같아 참 가엽다. 내 조부 향년을 훌쩍 넘기도록 땅을 딛고 하늘만 우러러 보았으니 추색 깊은 산과 함께 익어가도 난 하나도 두렵지 않다. 가을빛이 가로수에도 깊이 드리웠다. 2020.10.30

나의 창작시 2020.10.30

늦가을

늦가을 산비둘기 멀리 떠나니 앉아 울던 나무 가지가 쓸쓸하다. 토종 까치들만 종종걸음 칠 때 붉 나무가 그 앞에 열매를 던져준다. 늦가을 접어드는 길목에는 서글픈 그림자가 점점 짙어지고 지천으로 뒹구는 가랑잎을 밟을 때 삶의 허무가 뼛속까지 스민다. 구름에 달이 천천히 가던 아주 오래 전 서리 내리던 밤 옥수수 섶 베던 아버지 낫질 소리에 연민(憐憫)이 치밀어 울었었다. 허리 졸라맨 어머니가 등잔불 밑에 앉아 가난을 꿰맬 때 불빛에 반사된 눈에 맺힌 눈물이 슬펐다. 늦가을 낙엽이 나부낄 때면 어머니 낡은 옷자락이 눈에 밟힌다. 2020.10.29

나의 창작시 2020.10.29

이상한 안개

이상한 안개 움푹 파인 동네에는 매일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온다. 하늘을 열어 놓았지만 안개는 도망가지 않고 눌러앉는다. 신나게 날던 참새들은 건넌 마을로 이사했고 남쪽으로 가는 새들도 매번 비켜간다. 안개가 내릴 때면 사람들은 귀를 막고 텔레비전 볼륨을 올린다. 온종일 태양이 밝게 비추지만 안개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다. 골목길까지 하얗게 지운 안개는 방안까지 깊숙이 파고든다. 견디다 못해 사람은 이중창을 겹겹이 쌓아 올렸지만 바퀴벌레처럼 파고드는 안개에 많은 사람들이 마을을 버리고 떠났다. 안개가 내리지 않는 동네는 고층 아파트가 치솟고 사람이 북적이지만 지독한 안개는 빌딩허리를 잘라먹었다. 안개를 뿌리는 주범을 오래전에 알았지만 마을 사람들이 상대하기엔 언제나 역부족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밀려오면서..

나의 창작시 2020.10.28

싸리 꽃

싸리 꽃 보랏빛 조록 싸리 꽃 고갯길 바람에 출렁일 때면 숲길을 걷던 우리는 언제나 아픈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너에게 다가서기엔 두렵고 멀어져 가기엔 너무 아쉬운 넘을 수 없는 굵은 철사 줄이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콩 꽃 보다 더 빛나는 꽃송이 따다 목걸이를 만들어 새하얀 네 목에 걸어주고 싶어 들뜬 마음 가라앉지 않았다. 싸리 꽃 몇 번 피고 지도록 우리는 그 길을 걸었지만 멀리 떠나버린 네 소식을 듣고 나는 선홍빛 눈물을 쏟았다. 지금도 그 비탈에는 여전히 싸리 꽃이 출렁이려나. 내 가슴을 심하게 흔들어 놓던 네 생각에 마음이 아려온다. 2020.8.20

나의 창작시 2020.10.27

고해성사

해성사 그토록 황홀했던 이파리들은 바람 불던 오후 어디론가 떠나고 거무칙칙한 가지들만 살풍경한 느낌에 불쾌하다. 겉모양에 그냥 반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는데 감쪽같은 위장(僞裝)수법에 속아 넘어간 내가 어리석었다. 연두 빛 드레스에 마음 설렜고 초록빛 투피스에 반했다. 샛노란 원피스에 가슴 부풀었는데 오늘 본 너는 가짜일 뿐이다. 황폐한 자신의 모습을 숨기려 온 몸을 칭칭 감고 나타날 때 마다 일말의 의심도 없이 믿어 준 혜안 짧은 어리석음을 후회한다. 하지만 가식의 옷을 훌훌 벗고 이제라도 있는 속살을 보여주는 나목들의 줄을 잇는 고해성사에 풋풋한 향기가 충만하다. 2020.10.27

나의 창작시 2020.10.27

가을 서러움

가을 서러움 나뭇잎마다 노을이 짙고 이미 스러진 풀잎은 덧없다. 그 화려하게 꽃피웠던 살구나무는 빈 가지로 헛손질만 한다. 이승에 미련을 못 버린 풀벌레는 처량한 울음으로 내 가슴을 흔들고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에 불면증은 독버섯처럼 돋아난다. 밤 깊도록 뒤척이는 가슴에는 차가운 달빛만 녹아내리고 허전한 마음 달랠 길 없어 허공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싶다. 가을은 이토록 쓸쓸한 것들뿐일까 하나 둘 내 곁을 떠나기만 할까 산다는 것이 왜 이리 쉽지 않을까 피는 꽃이다가 지는 낙엽이다가 밤새 슬피 우는 부엉새다가 힘없이 스러지는 고목이 아니던가. 아! 저무는 인생이 서럽다. 2020.10.26

나의 창작시 2020.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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